142. 사람의 분량과 막벨라굴(창49:28-33)
“28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30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31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32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33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이스라엘은 그의 열두 아들의 미래를 축복하였다.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는 요셉 지파가 본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지만 그에게 두 지파를 주신다고 하나님이 약속하였으므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가 들어간 것이다. 사실상 열세 지파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열두 지파가 하나님 나라에서 정한 수의 지파라면 이 열세 지파 중 하나는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들도 유다가 탈락하였을 때 맛디아로 열둘의 숫자를 맞춘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의 동서남북 열두 성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있고, 기초 석에는 열두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의 이름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 나타난다는 것으로 보아 열둘의 숫자가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다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선택된 자들이나,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로 선택된 자 중 탈락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는 육체를 입고 있는 선택된 자들의 삶에 따라 이스라엘 지파나 그리스도의 제자 반열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단과 유다가 그것의 대표적 실례이다.
이스라엘이 열두 아들을 축복할 때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 이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로 선택된 자들의 분량에 따른 축복이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로 선택된 자들에 대한 축복의 분량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각 사람의 분량이 크면 큰 축복을 받고, 작으면 작은 만큼 축복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는 세상에서의 하늘나라가 경영되는 법칙과도 같다. 엘리사 시대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에게 엘리사가 동네에서 그릇을 빌려다가 부엌에서 문을 잠그고 남은 기름병으로 기름을 그가 빌려온 그릇에 채우는 것과도 같다. 생도의 아내가 동네에서 큰 그릇을 빌려왔으면 큰 그릇에 채울 것이고, 작은 그릇을 빌려왔으면 작은 그릇에 채우게 되는 법칙이다. 하늘에서 세상에 내려오는 축복은 한계가 없다. 그런데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 때문에 한계가 있다.
선택된 사람들의 분량은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 남긴 자와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하신 말씀이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는 달란트 맡은 자, 즉 선택된 자들의 분량의 역동성을 보여준다. 달란트의 비유는 천국 비유로 세상에 임한 천국에서 사람의 분량을 키우는 방법을 보여주는 비유이다. 천국에서는 달란트를 받은 자는 장사를 하여 남기는 자가 분량이 커진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달란트를 준 주인의 마음을 자신이 판단하여 그것을 땅속에 묻어 두었다. 그런 자들은 그가 받은 그 한 달란트로 빼앗기게 된다. 그의 분량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 분량이 큰 자는 큰 축복을 적은 자는 적은 축복을 받는다.
그러면 달란트를 장사하여 남기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가? 하늘나라의 장사법의 제1법칙은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성령의 시대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첫 단계는 물세례이고 다음은 성령세례이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선택된 자가 되어 그에게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여 그에게서 하나님의 마음이 솟아나는 근원이 생기게 된다. 그 근원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솟아나 나의 마음에 전달되면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 마음이 하나가 되면 그 마음대로 살기만 하면 달란트를 남기는 장사를 하게 된다. 그러면 자연적으로 그의 분량도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경건의 훈련은 바로 이 분량을 키우는 훈련이다.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훈련이다. 내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이 하나가 된 자들의 일반적 행태는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 대표적인 인물은 다윗이다. 다윗은 오랜 기간 경건의 훈련을 통해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었다. 그는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였다. 그는 왕이지만 하나님의 꿰가 다윗성에 들어올 때 겉옷을 벗고 춤을 추었다. 그가 전장 터에서 골리앗을 만났을 때 주위에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하나님 마음으로 그를 단번에 죽였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마음으로 물 위를 걸었고, 마리아는 그리스도와 한마음으로 향유 옥합을 깨뜨려 그리스도의 장사를 예비하였다. 사람은 육을 입고 있는 존재이므로 언제나 육적인 생각으로 재고 계산하는 속성이 있다. 하나님과 한마음을 가지면 그 재고 계산할 필요가 없게 된다. 세상 법이 아닌 하나님의 법이 나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나에게 적용되어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하늘의 법칙이 적용된다.
29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스라엘은 그의 아들들에게 명령한다. 그가 죽으면 그의 조상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니 자신을 헷 사람 에브론의 밭, 즉 막벨라굴에 장사하라고 하였다. 이는 아브라함과 이삭의 무덤이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누구인가? 그들은 산 자들이다. 막벨라 굴은 산 자의 무덤이다. 이스라엘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이 산 자이므로 그 산 자들의 무덤에 장사하라고 하였다. 산 자들의 무덤은 곧 부활할 자들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무덤은 죽음의 무덤이 아니라 부활의 무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과 같이 부활의 무덤이다.
그러면 구약시대 산 자는 어떤 자들인가? 산 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이 그들에게 운행하는 자들이다. 타락한 자들에게 하늘의 생명이 들어간 자들이다. 타락한 육적 사람에게 하늘의 임한 자들이다. 아브라함 이후 물리적인 세상에 영적인 하늘의 축복이 내려오는 시대가 열렸다. 물리적인 세상에서 하늘의 영적 축복을 받은 자들은 자신의 분량에 따라 무궁무진하게 받을 수도 있고 아주 작게 받을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에 대한 축복은 이런 하늘의 세계의 법칙을 알려주고 있다. 유다와 요셉과 같은 아들들은 큰 축복을 받았고, 단과 같은 자들은 하늘의 축복을 받았지만, 그것을 빼앗기는 자가 되었다. 세상에 있은 하늘나라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성령의 시대 하늘의 축복을 무궁무진하게 받는 방법은 하늘의 것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이다. 그것 외는 어떤 다른 방법이 없다. 하늘의 것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면 그것을 차지할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가 약속하셨다.
아브라함 이후 천국이 사람의 마음에 나타났다. 아브라함은 그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서 의인이라 칭함을 받았다. 하나님은 구약시대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이 들어가게 하셨다. 아브람이 그의 후사가 없어 그의 후사로 종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을 세우려 하자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아가 그의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을 것이라는 약속을 하셨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 하나님이 이를 의로 여기셨다. 여기서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의가 된다는 새로운 개념을 알려주셨다. 노아도 당대의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자는 아브람이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은 것은 그의 힘으로 믿은 것이 아니다. 믿음은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람도 뱀에 물린 자인 타락한 아담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근본적으로 선이 없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자 그것을 의로 칭하셨다. 그러면 그를 의로 칭하게 한 그의 믿음의 출처는 어디인가? 그 믿음의 출처는 하나님이다. 믿음은 그 개념 자체가 세상이 아닌 하늘나라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믿도록 하는 그 마음, 즉 하나님의 마음을 불어 넣으신 것이다. 아브람은 사람으로서는 처음으로 하나님의 생각이 그의 마음에 들어와 그 생각의 인도를 받는 자가 된다. 이 아브람과 같이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와 그 생각을 따르는 자들을 산 자라 한다. 아브람의 마음에 들어온 그 생각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아브람 이후부터 하나님의 의지로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에게 전달되어 사람이 하나님의 생각을 가지는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런 자들을 의인이라 칭하고 산 자라 한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의 삶을 보면 하늘에서 온 생각을 따르는 산 자들이다. 엘리사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이 이런 자들로 하늘의 생각을 따라 산 자들이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그들의 혼 속에 하나님이 생각이 들어가 그들을 인도하였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생각이 사람들에게 들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이 그들 속에 직접 생각을 불어넣어 그들을 인도하셨다. 하지만 성령의 시대는 다르다. 성령의 시대는 사람 속에 살려주는 영을 탄생시키고, 그 영의 생각이 혼에 전달되도록 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인도하신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른다. 구약시대의 산 자들은 피조물이지만 신약시대의 성령으로 난 자들은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따라서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고대하였다(롬8:19). 하나님의 아들들은 곧 하늘인 자들이다.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이 솟아나는 자들이다.
세례요한 이후부터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점령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천국은 그것을 침노하는 자, 즉 빼앗는 자가 그것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천국은 어떻게 침노하는가?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 즉 살려주는 영의 사람들이 그들의 생각, 즉 그들의 혼의 생각으로 천국을 차지하겠다고 행동하는 자들이 천국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천국을 확장하지는 못하였다. 그들은 단지 하나님이 생각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신약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들의 마음으로 천국을 점령하고 싶다면 점령하면 그것이 천국이 된다는 것이다.
신약시대는 사람들의 마음을 성령의 검으로 점령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성령의 검을 가진 자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령하여 그들 가운데 천국인 하늘을 건설할 수 있다. 그들 가운데 건설되는 천국은 살려주는 영인 성전, 다른 말로 하늘이다. 성령의 시대 하나님이 아들들은 성령의 검으로 천국을 점령하는 자들이다. 거침없이 세상을 점령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이 아들들의 마음속에 천국을 점령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면, 점령하면 된다. 그러면 세상은 복종하여야만 된다. 사람들의 마음을 살려주는 영을 탄생시킴으로써 점령하는 자들이다.
신약시대 하나님 아들들의 마음은 언제나 그 본능이 천국을 점령하고자 하는 마음이 충만한 자들이다. 그것이 그들의 본능이 되었다. 그런 본능으로 성령의 검을 가지면 거침없이 천국을 점령할 수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무궁무진한 하늘의 것들을 그에게 공급하신다. 그래서 하늘에서는 그 사람의 분량대로 하늘의 것을 차지한다. 그 분량이 크면 큰 하늘을 차지할 것이며, 분량이 작으면 작은 하늘의 차지할 것이다.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차지한 그 하늘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때가 되면 각자가 세상에서 침노한 하늘이 그에게 나타나게 된다. 그것이 하나님이 아들들의 상급이며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