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돕는 배필 라헬과 레아(창30:14-24)
“14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15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15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17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19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21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22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레아의 첫째 아들 레아가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께 드렸다. 라헬이 레아게게 그 합환채를 달라고 합니다. 합환채는 임신을 촉진하는 묘약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것을 라헬이 레아에게 달라고 한다. 라헬은 빌하를 통해 단과 납달리를 얻었지만 계속하여 아이를 낳기 위한 고통의 삶을 살았다. 라헬이 빌하를 통해 두 아들을 얻자 레아도 그의 시종 실바를 통해 두 아들을 얻었다. 이렇게 야곱의 아들들이 8명이 되었을 때 라헬은 그의 남편 야곱을 독차지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레아는 라헬이 합환채를 달라고 하자 내 남편을 빼앗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라헬은 라헬대로 아이를 가지고 싶은 고민이 있었고, 레아는 레아대로 자기 남편이 자기에게 마음대로 오지 못하게 막는 라헬에 대한 불만이 있었다. 이것이 인간의 육체를 입고 있는 자들의 일상의 삶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 야곱도 라헬의 권세에 눌려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육체를 가진 돕는 배필들의 삶이 서로 화합하면서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한 사건이 합환채 사건이다. 이 합환채로 인해 라헬은 자신이 독차지하고 있었던 남편을 레아에게 돌려준다. 레아는 이로 인해 다시 임신하는 기쁨을 가진다. 레아는 자신이 네 명의 아들을 낳았고, 실바를 통해 두 명의 아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아이를 더 낳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아이를 더 낳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그런 레아의 열망으로 하나님은 레아에게 다시 아이를 낳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신 것이다.
레아가 합환채를 라헬에게 주고 아들을 낳았을 때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지었다. 그녀가 자기의 시녀에게 남편을 준 값이라 하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이는 아내들은 시녀에게 남편을 준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레아는 야곱의 아들을 낳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다. 레아는 이미 아들이 네 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녀에게 남편을 주었다. 이는 라엘이 한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라헬은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시녀를 통해 자기의 아들을 갖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지만 레아는 아들들이 있는데도 그렇게 한 것이다. 이에 대한 값으로 하나님은 레아에게 또 야곱의 아들들을 낳게 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뒤에 스불론을 낳아 레아는 총 여섯 명의 아들을 낳는 돕는 배필이 된다. 야곱의 네 아내 중 최고의 역할을 한 여인이라 할 수 있다.
실바가 아셀을 낳은 후 라헬은 야곱의 돕는 배필들이 아들들을 낳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합환채 사건으로 인해 푼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언니 레아하고의 경쟁에서 실바가 두 명의 아들을 낳자 더는 레아나 실바가 아이를 낳지 못하도록 막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합환채로 인해 라헬은 그가 막은 야곱의 막힌 물꼬를 터 주었다. 그렇게 하여 레아를 통해 두 명의 아들을 더 낳았다. 그 이후 레아가 디나라는 딸을 낳은 것을 보면, 라헬은 더는 남편을 독차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님은 레아에게 또 다른 야곱의 아들을 낳는 것은 허락지 아니하시고 딸을 낳게 한다. 이는 한 사람을 통해 야곱의 아들들을 너무 많이 낳도록 하지는 않으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보여준다.
레아가 디나를 낳은 다음 하나님은 드디어 라헬을 생각하셨다. 그렇게 오랫동안 잡고 있었던 라헬의 태를 여셨다. 돕는 배필인 라헬이 남편을 독차지하는 것을 풀고, 야곱의 아들들이 더 태어나도록 도왔더니 자신도 아들을 낳게 되는 영광이 찾아온 것이다. 이 시대에도 천국은 나만 가지는 것이 아니다. 옆에 있는 자들에게 알려주어 그 천국을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나도 더 거대한 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라헬의 삶이 그것을 가르쳐 주고 있다. 라헬은 그렇게 하여 낳은 요셉을 낳았다. 요셉은 야곱의 족속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여 그곳에서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이룬 자이다. 그렇게 어렵게 태어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펼쳐가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라헬은 요셉을 낳은 다음 하나님이 그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고 고백한다.
사람의 관점에서 라헬이 요셉을 낳은 것은 합환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은 라헬이 레아가 준 합환채를 가져가 먹었으므로 임신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라헬이 아이를 낳게 된 것은 하나님이 태를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임신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임신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 임신하면, 그것이 그 방법, 즉 합환채 때문에 임신한 것으로 생각한다. 영적 출산도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방법대로 도를 전하였더니 출산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면 영적 출산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적 출산을 위해 돕는 배필들끼리 시기도 하였지만, 야곱의 아들들을 낳기 위해 서로 도왔던 것처럼 도우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야곱의 돕는 배필들의 삶을 통해 이 시대 교회의 성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돕는 배필이다. 교회 성도들의 삶은 영적 출산을 소망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성도들 간 영적 출산을 위한 경쟁의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예전에 바울이 투옥되었을 때 바울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한 자들이 있었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에 대해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기뻐한다고 하였다(빌1:18). 사람은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순수하지 못하게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리하나 저리하나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리스도의 복음전파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도 야곱의 돕는 배필과 같이 서로 시기하면서도 영적 출산이 일어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이다.
라헬이 야곱의 아들을 낳았다는 것은 영적 관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야곱의 돕는 배필이 그 배필의 역할을 감당했기 때문이다. 그가 야곱에게 시집가서 야곱과 하나가 되어 천국은 되었지만, 돕는 배필의 삶은 실제로 경험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요셉을 낳으면서 그 돕는 배필의 삶을 경험한 것이다. 이는 그의 육체를 통해 신령한 자를 출산하였기 때문에 그의 육체가 신령한 것을 경험한 것이다. 돕는 배필은 그 자신의 육체가 그 배필의 역할을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는 육체가 되는 것이다. 그 육체가 신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신령한 육체에서 또 신령한 자가 탄생하는 일이 일어난다.
세례요한은 바리새인들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고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속으로 아브라함이 그들의 조상이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하나님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하였다. 그들은 돌보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 힘든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떡을 들고 축사하였을 때 그 떡이 신령하게 되어 5,000명을 먹이고 12바구니를 거두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시대 돌이나 떡보다 사람이 신령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사람이 신령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길이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것이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그 생각이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하나가 될 때 영적 출산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영적 출산을 하면, 비로소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돕는 배필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렇게 영적 출산을 하면, 그의 육체도 돕는 배필의 역할을 한 것이므로 신령하게 되어 그 신령함이 그 속에서 신령함이 계속 솟아나서 천국을 창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것이 올바른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돕는 배필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육체가 신령하게 되는 것이다. 떡이 신령하게 되면 5,000명이 먹고 배부를 수 있지만, 사람이 신령하게 되면 5,000명이 살아날 수 있다. 사람이 신령하게 되면 삶의 푯대가 정해진다. 삶의 푯대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성경 말씀이 깨달아지고, 병고침의 역사가 일어나고, 능력이 나타나고, 기도가 응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삶에서 푯대가 정해지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그 모든 문제가 풀어지게 된다. 그의 말에 권세가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영의 말이 되기 때문이다. 영의 말은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로고스 말씀의 능력이 있다.
사람이 신령한 육체를 가지고 푯대가 정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가 생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떨어지면, 그 말씀이 먼저 나보다 앞서가 일을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거리로 보면 900미터 정도 떨어져서 뒤를 따르는 것과 같다. 사람이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그가 서 있는 그곳에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아는 자가 된다. 이는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이다. 지각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 하나님이 주시는 지각을 사용하는 자들은 세상의 정복자가 된다.
이런 신령한 자들은 무에서 유가 어떻게 창조되는지도 지각으로 알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땅을 다스린 것처럼 세상을 다스리게 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땅을 다스릴 수 있었던 것은, 동산 가운데 생명 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 나무의 실과를 매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땅을 다스릴 수 있었다. 생명 나무의 실과는 영의 실과, 즉 말씀이다. 그래서 그는 영의 말을 할 수 있었다. 그가 땅에서 영의 말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땅을 다스릴 수 있었다. 땅은 영의 말로 다스려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땅과 영적 세계는 영의 말로 다스려지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영의 말을 하면, 영적 세상과 땅의 세상은 그 말을 들어야만 한다.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의 말을 하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영의 말을 하면 땅은 그것을 듣는다. 무생물도 영의 말을 하면 그것에 복종한다. 그런데 듣지 않는 존재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람이다. 그들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시대 영의 말을 하는 하나님 아들들의 말을 듣는 사람은 그들이 들은 대로 이루어지는 일을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신 것이다. 그렇게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하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온 아람의 장군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주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이방인이지만, 하늘의 사람을 인정하고 그렇게 먼 길을 찾아왔을 때 그렇게 인정한 그것 때문에 병 낫는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