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질병의 근원과 마귀 지식의 한계(요5:10-18)

관리자님 | 2026.09.26 16:18 | 조회 107

23. 질병의 근원과 마귀 지식의 한계(요5:10-18)

 

“10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12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15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1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괴물 같은 생각의 소유자들의 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얼마나 괴물 같은 생각을 하는 존재였는지를 알려 줍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한 존재는 그들의 아비 사탄입니다. 이들은 삼십팔 년 만에 처음 걸어가는 것을 보고 펄펄 뛰며 축하해야 할 그 상황에서 자기들이 만든 안식일 법, “안식일에 운반하지 말라”는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책망하는 자들입니다. 이 괴물 같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 존재는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 뒤에 숨어서 그들을 조종하는 사탄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이렇게 사람이 하는 일같이 보이도록 숨어서 일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각을 사로잡는 일을 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을 자신들이 만들어 낸 교리와 이론으로 사로잡았습니다. 이 안식일 법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자기중심적 사람으로 만드는 그런 교리와 이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그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을 만나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인간 질병의 근원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죄’는 혼과 육체의 죄로 자범죄입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인간 범죄는 영과 혼과 육의 타락입니다. 영과 혼과 육이 모두 거짓의 영역이라는 말씀입니다. 정신과 육체의 질병은 혼과 육체의 죄로 말미암습니다. 타락한 인간 영의 죄는 원죄로, 혼과 육체가 자범죄를 범하도록 하는 근원입니다. 그렇게 자범죄를 범할 때 사람의 혼과 육체에 질병이 생깁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자범죄를 범하면 합법적으로 사람들을 침범할 수 있습니다. 특히 반복되는 자범죄 속에 빠져 있는 자들은 완전한 사탄의 공격 대상입니다. 이는 영적 세계의 기본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자범죄에 빠져 있는 사람들 중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병 고침을 받았다고 해도, 그의 삶이 죄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또 질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정신과 육체의 질병은 사탄의 공격을 받은 상태입니다. 이를 고치기 위해서는 거듭난 영, 즉 살려 주는 영의 생각이 혼과 육체를 지배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혼과 육체를 깨끗하게 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병 고침을 받은 사람에게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런 원리 때문입니다. 인간이 죄를 계속하여 범하는 그런 자범죄의 상황에서 빠져나오라는 것입니다. 이는 사탄의 합법적 공격의 대상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 고침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말씀으로 그의 혼과 육체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에베소서에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엡 5:26). 진리의 그릇인 영에서 진리의 말씀이 나와서 나의 혼과 육체를 깨끗하게 하면 질병은 소멸됩니다. 이것이 영적 병 고침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진리를 담는 그릇인 우리의 ‘살려 주는 영’을 매일 새롭게 하여 새 말씀이 계속 나의 혼과 육체에 흘러 내려 그것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습관처럼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습관처럼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그 가운데서 빠져나와서 말씀 가운데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는 삶의 환경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진리가 내 속에서 솟아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교회로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모이는 것이 습관이 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은 곧 교회로 모이는 것으로 성령님이 함께하십니다. 이는 성령님이 말씀을 깨닫게 하셔서 진리의 그릇인 우리의 ‘살려 주는 영’에 진리가 담기도록 합니다. 그러면 그 진리의 그릇에서 새 말씀이 나와서 나의 혼과 육체를 통과하게 됩니다. 그때 나의 혼과 육체의 더러움이 소멸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로부터 질병의 고침을 받은 자들은 이렇게 삶의 습관을 바꾸는 것이 필수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삼십팔 년 된 병자에게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가장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 심한 것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복음의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가장 완전한 병 고침은 믿음에 의해 스스로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영의 생각을 따를 때 나타나는 병 고침입니다. 영의 생각은 진리로부터 나오는 생각으로, 그것을 따르면 혼과 육체의 질서가 잡힙니다. 그러면 영의 생명력이 혼과 육체에까지 미쳐서 그의 혼과 육체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때 정신과 육체의 질병은 소멸됩니다. 이와 같은 병 고침은 재발이 되지 않는 완전한 병 고침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병 고침입니다.

 

안수 기도를 통해 병 고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예전의 죄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질병이 또 생길 수 있습니다. 질병은 마치 인격이 있는 놈 같아서 한 번 찾아간 그 사람에게 다시 찾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놈이 찾아와도 그 사람에게 붙어 있을 수 없는 상황, 즉 혼과 육체에 진리가 충만한 상황이 생기면 그곳에 붙어 있을 수 없습니다.

 

베데스다 못에서 병 고침을 받은 자는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유대인들을 찾아가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고쳐주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안식일 교리를 깨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안식일 법을 부수는 또 다른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말씀을 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도 안식일에 일하시므로 아들도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모의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생각은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하였지만, 실상은 그들 뒤에 숨어서 그들을 조종하는 마귀의 세력입니다. 이 마귀의 세력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에게 유대교의 교리를 만들도록 조종한 자들입니다. 그 전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 숭배를 할지라도 율법을 통해 교리를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교리는 그들의 머리, 즉 사람의 생각으로 법을 만드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론, 즉 거짓된 사람의 이론으로 율법을 변질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서 나타난 분파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이는 사탄의 세력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조종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그래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아비는 마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너희 아비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하는 유대인들에게 요한복음 8장에서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행하고자 하느니라(요 8:44)”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베데스다 못에서 삼십팔 년 된 병자를 일으킨 사건은 영적 관점에서 볼 때 구속사에서 마귀의 권세가 꺾이는 결정적인 사건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며 안식일 교리를 깨뜨림으로써 시작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모의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연결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는 모의는 유대인들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 뒤에 마귀가 있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을 이용해서 그 나라의 참주인인 예수 그리스도가 왔을 때 그분을 죽이려 모의했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지식의 한계입니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이며 살인하는 존재였습니다. 그 본성은 거짓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지식은 거짓과 죽이는 것과 관련된 지식입니다. 그는 죄와 사망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왕으로 거짓과 살인의 지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런 세상에 이스라엘 나라가 세워지자 그 나라를 빼앗기 위해 그 나라 백성의 종교 지도자들의 생각을 점령하여 그 나라를 지배했습니다. 그래서 그 나라를 찾기 위해 오신 진정한 유대인의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 했고, 결국 십자가에서 죽임으로써 그의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죽음은 곧 마귀 자신의 멸망이었고, 자신의 죽음이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지식의 한계입니다. 그는 거짓과 죽음의 지식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죽음에서 살아나는 생명의 지식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26장에서도 “죽은 자들이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사 26:19)”라는 부활과 관련된 말씀이 있었지만, 마귀는 죄와 사망과 연관된 지식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은 거짓되며 사망의 지식으로 가득합니다. 세상의 지식들, 미움, 거짓, 실패, 낙망, 학문, 철학, 종교 등 모든 분야의 세상 지식들은 생명이 없는 거짓과 사망의 지식들입니다. 그래서 그런 모든 지식은 생명이 없으므로 결국 소멸되는 지식들입니다. 마귀는 그런 지식을 가진 존재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면 다시 살아난다는 지식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무한대의 생명의 지식이셨고, 무한대의 능력이셨고, 무한대의 사랑이셨습니다. 그분은 살려 주는 영으로 그 본체가 생명이셨습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도 생명이셨습니다.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것이 생명이셨습니다. 그분은 살려 주는 영으로 살려 주는 것이 본능인 생명의 지식이셨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생각하고 말하는 모든 것이 사망이라면, 그분은 말씀하시는 모든 것이 생명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는 또 다른 새 생명나무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을 주시는 생명나무이십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분께 가면 생명의 지식을 얻고, 그 지식으로 죽은 사람들을 살립니다.

 

하지만 세상 지식은 거짓과 사망의 지식입니다. 그 세상 지식을 따르면 사망이 왕노릇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따르는 자들은 항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혼미케 하는 영에 사로잡혀 사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지식, 즉 나의 혼과 육체의 생각을 따르면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혼과 육체는 세상 영역, 즉 거짓의 영역이므로 세상 지식을 따르기 쉽습니다. 그런 세상의 지식을 따르면 언제나 사망의 길이 나타납니다. 실패, 좌절, 우울, 절망, 미움, 죽음의 생각들에 지배당합니다. 반대로 생명의 지식인 진리를 따르면 성공, 해방, 자유, 기쁨, 화평, 사랑, 충성, 온유, 절제, 자비, 양선의 생각들에 지배당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생각의 싸움을 하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두 가지 생각이 전쟁을 합니다. 하나는 혼과 육, 즉 거짓의 영역에서 나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를 담는 영에서 나오는 생각입니다. 영에서 생각이 나오면 자동적으로 세상의 영역인 나의 혼과 육은 정복됩니다. 그러면 나의 혼과 육체도 영의 생각과 같아져서 생명과 평안의 생각을 하게 되고, 믿음이 생기고,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나오고, 성공이라는 생각,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는 생각, 병든 자를 해방시켜 주는 생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생각과 같은 믿음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안식일에도 생명의 일을 하십니다. 그 생명의 일은 그분의 본능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칠일에 안식하셨으나 그 안식은 범죄로 인해 깨졌고, 그때부터 다시 일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자 다시 본능이신 생명의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분은 본체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삼십팔 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의 육체의 질서를 바로잡으셨습니다. 그에게서 진리가 작동하게 하셨습니다.

 

베데스다 못에서의 병 고침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육체를 가지신 예수님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제자들을 통해 구원 사역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제자들을 통해 스스로 구원을 이루십니다. 절대 사람의 생각을 통해서는 구원 사역을 이루지 않으십니다. 교회의 역사도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윗 시대에 하나님의 궤를 아비나답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옮기던 웃사처럼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대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궤는 하나님 스스로 보호하시듯이 교회도 스스로 보호하십니다. 성도들은 그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어 따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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