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베데스다 못과 진리의 가르침(요5:1-9)

관리자님 | 2026.09.19 23:03 | 조회 98

22. 베데스다 못과 진리의 가르침(요5:1-9)

 

“1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그 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4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6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두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예루살렘의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행각이 다섯 개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는 천사가 가끔 내려와 물을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지 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사도 요한이 글을 쓸 때 괄호를 넣어 쓴 것으로, 당시 민간에서 그렇게 알려진 것을 기록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병고치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쳐지는 병고침은 아닙니다.

 

베데스다 못에 병자들과 장애를 가진 자들이 가끔 물이 움직일 때 병고침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생들은 그렇게 막연히 나타나는 신령한 것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가끔 알지 못하는 영적 현상으로 병이 고쳐지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민간신앙에도 이런 일이 있다고 합니다. 거짓된 교리 중심의 유대교가 지배하던 그 중에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나는 영험한 민간신앙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베데스다 못의 병고침은 물이 움직일 때 처음 물에 들어간 한 사람만 고쳐진다고 합니다. 이는 베데스다 못의 병고침의 한계입니다. 그것은 진리를 통한 병고침과는 완전한 다릅니다. 민간신앙의 병고침은 병고침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지는 반면, 진리를 통한 병고침은 진리에 관심을 가질 때 저절로 따라오는 병고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입니다. 그 진리가 38년 된 병자에게 적용될 때 그 병자는 나았습니다. 진리의 세계에서 질병은 진리에 의해 삼킴을 당하는 대상입니다. 진리가 나타나면 거짓인 질병은 삼킴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알고 있는 병고침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병고침입니다. 그런데 베데스다 못에서 일어나는 병고침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병고침입니다. 그 병고침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도 일어나는 병고침입니다. 베데스다 못의 신령함은 한계가 있는 것으로, 단순히 신비함을 한 번 체험하는 그런 종류의 것입니다. 일반 종교에서 가끔 나타나는 그런 종류의 신비 체험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신령함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베데스다 못에는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는데, 그곳에 38년 된 병자가 병을 고치고 싶어서 누워 있었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그를 물속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막연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이전에 사마리아에 가셨을 때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났을 때처럼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사마리아에서는 수가성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38년 된 병자를 찾았습니다.

 

두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안식일에 베데스다 못의 38년 된 병자를 찾으신 뚜렷한 목적은 유대인들이 만든 유대교의 생각의 진을 파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맡겨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목적을 잘못 적용했습니다. 율법을 통해 진리의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율법 그 자체를 통해 의를 달성하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이용하여 안식일 법을 만들었습니다. 이 안식일 법은 유대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그들이 만든 안식일 법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선택하신 목적과 완전히 다른 법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도, 즉 거짓의 도를 만들어 유대인들을 그 도의 세계로 인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즉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리스도, 즉 진리의 도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이용하여 거짓의 도를 세워 유대인들을 그 거짓으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 거짓의 도의 중심에 안식일 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주신 목적은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두 가지를 한 번에 하지 못하므로 그날 하나님의 하신 일을 기억하기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일은 엿새 동안 하던 그 일을 말하며, 그것을 멈추고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주신 이런 목적은 버리고, '일'에 대한 정의를 자의적으로 내림으로써 안식일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정의된 일은 밭 갈기, 씨 뿌리기, 수확하기, 타작하기, 키질하기, 반죽하기, 양털 깎기, 빗질하기, 사냥하기, 도살하기, 글씨 쓰기, 건축하기, 불 켜기, 운반하기 등과 같은 39가지를 금지하는 포함합니다. 이 일을 정의하여 그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안식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신 그 일을 기억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만든 교리입니다. 이는 거짓의 사람에게서 나온 것으로 거짓입니다. 거짓의 도를 만들어 그것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을 위해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진리를 심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만든 거짓의 교리를 깨야만 했습니다. 그 교리로 유대인들을 가스라이팅하여 얽어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셔서 그 유대교의 중심 교리인 안식일 법을 깨뜨리기 위해 38년 된 병자에게 가셔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그 병자는 질병에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위대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38년 된 병자에게 참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 질병을 가져다준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시키셨습니다. 병자에게 진리가 나타나자 죄와 질병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이런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 일, 즉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그것은 유대인들이 만든 거짓 교리들 중 운반하기를 금지하는 법에 위배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38년 동안 질병 가운데서 일어난 그에게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고 했습니다. 이는 완전한 괴물들의 생각입니다. 사람도 아닌 괴물들, 즉 네피림들의 생각입니다. 유대교는 그런 거짓의 도였습니다.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가 나은 그 위대한 축복의 일을 보지 못하고, 그들은 거짓의 법만 보는 괴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괴물 같은 생각을 가진 자들에게 진리를 심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에서 정면으로 그 유대인의 거짓 교리를 깨뜨리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괴물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괴물과 같은 생각을 하는 자들의 더 큰 문제는 자신들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자신들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그러하였고, 종교 개혁 당시 로마 가톨릭이 그러했습니다. 이런 사고를 가진 자들이 가장 고치기 힘든 자들입니다. 그들은 육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자들입니다. 자신을 가스라이팅하여 스스로의 행동에 하나님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에서 “술 마시지 말라”, “담배 피우지 말라”, “주일에 일하지 말라”, “주일 예배 잘 드려라”는 것이 선이 되어 그것이 법이 되면 유대교의 교리와 같이 거짓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네피림의 법입니다. 이런 것들은 믿음의 결과물로 저절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믿음으로 나타나야할 결과물이 법이 되면 사람이 만들어 낸 거짓 교리가 됩니다. 그런 거짓 교리하에서는 그것을 잘 지키면 믿음이 좋은 자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크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도와 아무 상관도 없는 거짓된 교리입니다.

 

“주일 예배를 잘 드리라”는 교리를 만들어 낸다면 어떻게 될까요? 주일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배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예배를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우리는 막연히 주일에 교회에 빠지지 말고 잘 나가서 참석하는 것이 주일 예배를 잘 드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으로 드리기 위해서는 먼저 영이 십자가에서 거듭나야 합니다. 사람이 거듭나서 영이 탄생하여야만 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엄밀히 말하면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예배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리고 진리로 드린다는 것은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 거듭난 영에 양식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영이 생각을 내어 그의 혼과 육체에 영의 생각이 전달되고, 혼과 육체가 그 영의 생각, 즉 진리를 따라가게 됩니다. 이것이 영과 진리의 진정한 예배입니다. 우리들의 거듭난 영에 진리의 말씀이 들어가면 진리의 말씀이 그곳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거듭난 영, 즉 살리는 영은 진리를 담는 그릇과도 같습니다.

 

유대교와 같은 교리가 판을 치는 데에는 자동적으로 민간신앙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사람들은 그 거짓된 교리에 능력이 없으므로 막연하고 영적인 민간의 토속적 신앙의 영험한 것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의 일은 바로 그런 민간신앙의 뿌리로부터 나온 것 같이 보입니다. 세상에는 일반적으로 어떤 종교이든지 그들만의 표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편만히 나타나지는 않지만 가끔 나타나 경험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도와 가까운 이단들에게서 이런 일이 종종 나타납니다. 예전에 영지주의, 천사 숭배 등의 이단들에서 이런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앙촌 박태선의 천부교, 문선명의 통일교 등에서 이런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진리로부터 나온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에서도 성모 마리아상에서 피눈물이 나서 성지가 된 곳도 있습니다. 일본 니가타의 수녀원 성모상에서 1975년~1981년 사이에 피와 눈물이 흘러 교황청에서 초자연적 현상으로 정식 승인했고, 이탈리아 치비타베키아에서 1995년 보스니아 메주고리예에서 가져온 성모상 눈에서 14번에 걸쳐 피눈물이 흘러 성지로 인정받았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985년 나주의 개인 집 성모상에서 피눈물이 나왔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인 2018년 5월 미국 뉴멕시코주 홉스의 성 우슬라 성당 청동 성모상 눈에서 올리브유와 향기가 나는 액체가 흘렀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신비한 일들은 그리스도의 도와는 완전히 무관합니다. 거짓으로부터 나온 신비한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그리스도의 도 앞에서는 완전히 삼킴을 당합니다. 왜냐하면 거짓으로부터 나온 것들은 생명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진리이며, 그 진리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 진리를 운영하는 자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베데스다 못에서의 병고침은 예수님의 병고침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병고침은 단순한 병고침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최고의 율법적 교리인 안식일 법을 깨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를 통해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틀을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그것이 깨져야만 그들 속에 진리를 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졌던 그 틀은 복음을 보는 마음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갈릴리지역(갈릴리 지역)에서는 표적과 기사로 고향 사람들의 생각의 틀을 깨뜨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유대인의 종교적 틀을 깨트립니다. 두 번째 유월절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심은 단순한 병고침의 의미를 넘어 유대교의 안식일 법을 깨뜨리신 것입니다. 이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질병에 걸렸을 때 금방 고쳐주실 때도 있지만 상당한 기간을 끄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는 경우에는 그 사람을 훈련시키는 것과 같은 다른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병이 고쳐지는 관점만 가지면 그 병고침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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