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거짓과 감추어진 진리의 세계(요4:43-54)
“43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46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유하시고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분은 친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사람을 보는 본능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사람의 겉모습과 그의 행위를 통해 그를 판단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겉으로만 알았습니다. 겉모습을 보고 예전에 목수였던 요셉의 아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겉으로는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예전부터 보아왔던 겉모습의 그분을 보았을 뿐, 그분 속에 있는 진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람 속에 감추어진 진리, 즉 하나님의 실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육적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사람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당시에는 사람으로 오신 그분 안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은 감추어진 그것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사람의 육체 속에 감추어진 그 천국을 보려면 그분을 환영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분이 그 속의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분을 환영했습니다. 사마리아 수가라는 성의 사람들은 그분을 크게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틀을 그곳에 유하시며 그 속에 있는 천국을 알리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알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필요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체 속에 감추어진 천국이 그들에게 쉽게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나 갈릴리 지역은 달랐습니다. 그 지역들은 표적과 기사가 필요했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보여야만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것이 천국의 것임을 인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니고데모가 예루살렘에서 밤에 그분을 찾아온 것도 표적과 기사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필요한가 하면, 사마리아 수가성의 사람들과 같은 자들에게는 그것이 필요 없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분의 속에서 말씀으로 드러나는 천국을 보았습니다. 그곳에 이틀을 유하셨는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표적과 기사와 관계없이 그들은 그분을 믿었습니다. 이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천국은 제자들 속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사람들이 제자들 속에 감추어져 있는 천국을 보려면 제자들을 환영하여야 합니다. 그 제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을 환영할 때 그 속에 있는 천국, 즉 진리가 환영하는 그들에게 들어갑니다. 진리는 환영하는 자들에게 들어가는 속성이 있습니다.
우리 제자들도 매일 우리 가운데 감추어져 있는 천국, 즉 진리를 환영하고 그분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분의 말을 알아듣고 따르면 그들은 참제자가 되고, 그들을 통해 진리가 밖으로 표출됩니다. 표적은 그때 사람들 앞에 나타납니다. 그때 나타나는 표적은 제자들의 삶의 결과물입니다. 아름다운 표적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삶은 이런 것입니다. 제자들이 진리를 환영하는 방법은 그것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감추어진 진리가 겉으로 드러나면 자연스럽게 표적과 기사가 동반됩니다. 그 진리가 드러나면 천국의 법칙이 세상에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천국에서는 당연한 것인데 세상에서는 표적과 기사가 됩니다. 그렇게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것이 올바른 질서인데, 먼저 이러한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표적과 기사부터 보려는 것은 육적입니다. 이러한 육적인 표적과 기사는 직접적으로 사람들을 진리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니고데모처럼 생각을 바꾸게 할 수는 있으나 직접 진리로 인도하지는 못합니다. 직접 진리로 인도하는 것은 말씀입니다. 기사와 표적을 보고 마음이 열려 그리스도의 말씀을 환영하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 진리로 인도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지역에 따라 맞춤형 복음을 전하십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예루살렘에 맞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시면서 복음을 전달하셨고, 사마리아는 표적과 기사가 필요 없는 지역이므로 순수한 진리만 전하셨으며, 다시 갈릴리로 오셔서는 표적과 기사가 있어야만 믿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며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 복음 전파, 즉 진리를 각 사람에게 심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진리가 사람들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는 도구는 될 수 있으나, 그것이 진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진리의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보는 표적과 기사를 마귀와 귀신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표적과 기사만 보고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은 잘못된 길로 인도될 수 있습니다. 예전에 박태선의 신앙촌이나 다른 이단들에게 이런 표적들이 나타나 영적 세계를 어지럽혔습니다. 표적과 기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고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진리를 깨달으면 표적과 기사가 좋은 역할을 한 것이지만, 그 자체에만 머물러 있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표적과 기사는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계기는 될 수 있지만 진리 그 자체는 아닙니다. 표적과 기사는 결과물이므로 거기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따라서 표적과 기사만을 따르는 것은 허무한 것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리스도 속에 있는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그분을 영접해야 합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환영하면 그분 속에 있는 진리가 밖으로 나와 환영하는 그들에게로 들어가게 됩니다. 성경에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고,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선지자의 상은 그 자신도 선지자가 되는 것이며, 의인의 상은 그 자신도 의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상을 받는데, 그것은 그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뜻입니다. 영적 세계의 법칙입니다. 따라서 사마리아의 수가성과 같은 지역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많이 나올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순수하게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분 속에서 나오는 것을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갈릴리 가나에 이르렀을 때, 가버나움에 병든 아들을 둔 왕의 신하가 그분께 와서 아들의 병 고침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왕의 신하는 표적과 기사를 보려고 나온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아들을 살리려는 절실한 마음으로 예수께 나왔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죽기 전에 가버나움으로 내려와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신하는 이 말씀을 듣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던 길에 하인들을 만나 언제 나았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하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에 아이의 열이 떨어졌다고 답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그 시간 아이에게 작동하여 그가 살아난 것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아이가 병들어 죽었지만 왕의 신하의 아들은 살았습니다. 그에게 진리의 법이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법이 적용되는 사람들에게는 그 진리가 거짓을 삼키기 때문에 죽을 자도 살게 됩니다. 진리 가운데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시절 죽어간 아이들은 진리와 연결되지 못했고, 이 왕의 신하의 아들은 진리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법대로 살았습니다.
인간이 범죄하면서 세상은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죄와 사망의 법이 가동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세상은 사망이 판을 치는 환경이 되었고, 그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사망의 종노릇을 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이 거짓된 세상에 진리가 찾아왔습니다. 오랜 구속의 역사를 통해 드디어 진리가 세상에 왔습니다. 그 진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운영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을 삼키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통용됩니다. 그 진리가 세상에 왔습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 그리스도께 죄와 사망의 법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가 예수께 달려와 죽어가는 아들을 살려 달라고 요청한 그 말이 진리와 그 아들을 연결해 주었고, 그 아들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작동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죽어가던 아들은 진리에 연결되는 바로 그 순간 살아났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 아이에게 작동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죄와 사망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예수께 연결되는 방법이 나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예수께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 살려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 왕의 신하가 절실하게 아들을 살려 달라고 요청했던 것처럼 살려 달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때 진리가 그에게 적용되어 생명의 삶이 시작됩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께 나와 아들을 살려 달라고 요청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 그 아들의 생각이 들어왔습니다. 그 때 그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었습니다. 그 죽어가던 아들, 즉 거짓의 세상이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것입니다. 그 아버지의 요청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이 아버지의 요청은 바로 기도입니다. 이 시대 성도들의 기도는 거짓의 세상을 진리와 연결하는 역할을 합니다. 거짓의 세상이 진리와 연결되면 그 거짓의 세상에 진리의 법, 즉 생명의 성령의 법이 통용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거짓의 법인 죄와 사망의 법을 진리의 법인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삼키도록 계속 요청하라는 뜻입니다. 거짓은 계속해서 자기 영역을 지키려고 진리를 모르는 자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영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지만, 여전히 겉사람인 육을 입고 있습니다. 우리의 육은 여전히 거짓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만 여전히 질병에 걸리고, 육체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매일 자신을 진리와 연결해야 합니다. 진리와 연결되면 그 진리가 우리의 거짓된 영역인 혼과 육체에까지 진리의 법이 통용되도록 합니다.
자신을 진리와 연결하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이 일어난 것은 사람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은 진리의 역사이지만, 보리떡과 물고기를 준비하는 것은 사람의 몫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고 천국이 우리 가운데 임했지만, 여전히 거짓된 법의 지배를 받는 육적 환경, 즉 거짓의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혼과 육체는 거짓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일 말씀과 기도로 진리와 연결되어 진리가 우리 속에서 가동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매일 왕의 신하처럼 절실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우리 자신을 그 진리와 연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진리와 연결된 사람들에게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작동합니다. 천국이 그들을 통해 나타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연결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이런 관점에서 왕의 신하는 위대한 일을 성취한 자입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진리를 그의 아들에게 연결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갈릴리 사람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환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환영한 그에게 진리가 임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나 엘리야는 그중 한 사람에게도 보냄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의 사렙다 과부에게만 보냄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수많은 과부 중 선지자를 가장 환영한 자가 사렙다 과부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의 많은 나병 환자 중 한 사람도 깨끗함을 받지 못했으나,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장군만 고침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선지자를 크게 환영했기 때문입니다. 이 선지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있던 자들입니다. 그 진리가 그들에게 연결되어 진리의 법이 통용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고 하셨으나, 이 왕의 신하 덕분에 위로를 받으셨습니다. 진리를 찾고 환영하는 그의 태도 때문에 크게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는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만 믿고 갔습니다. 그가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그리스도의 증언을 들은 것입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은 참되시다’는 인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믿고 가버나움으로 내려갔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내가 그라” 하시는 증언을 듣고 인침을 받아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친 것처럼, 그도 그 증언을 받아 인침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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