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물동이와 그리스도 양식(요4:27-34)

관리자님 | 2026.08.29 22:11 | 조회 168

19. 물동이와 그리스도 양식(요4:27-34)

 

“27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28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자 사이에 이야기가 끝나자 제자들이 돌아왔습니다. 사실상, 제자들이 함께하지 않았던 것은 예수님이 이 여자와 일대일, 개별적으로 말씀하도록 하기 위해 조성된 환경이었습니다. 동네에 먹을 것을 사러 갔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시는 것을 보고 아무도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이상히는 여겼으나 말하지 못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여자와 일대일의 만남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를 알려 주셨고, 바로 이때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 여자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이라고 하자, 그리스도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여자는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았습니다. 그의 마음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성령님이 그 여자에게 인을 쳤기 때문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과의 개별적 만남은 바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려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자 그 여자는 곧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이 여자의 행동은 자동적이었습니다. 그가 메시아를 깨달은 순간 곧 그 소식을 동네 사람들에게 전파하였습니다. 그의 중심이 세상에서 하늘로 이동되었습니다.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세상 물동이를 들고 나왔던 여인이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기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리스도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마리아성에도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가라는 동네의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여자에게 자기가 그리스도이심을 알리셨습니다. 그분은 직접 사마리아성에 들어가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한 여자와의 개별적 만남을 통해 그 여자에게 메시아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그 메시아 소식을 사마리아성에 전파하도록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복음 전파를 하시는 전형적인 방식입니다. 복음 전파에서는 사마리아 여자 같은 한 사람이 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한 사람에게 관심을 집중시키십니다. 그 한 사람이 주가 그리스도이심을 알면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알게 된 사마리아 여자가 물동이를 자동적으로 버린 것은 그 여자에게 이제 새로운 신비한 물동이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물동이는 그의 세상 삶을 위해 필요한 물동이, 즉 돈과 권력과 명예와 탐욕을 담는 물동이였습니다. 그에게 하늘의 물동이, 즉 생명의 물을 담는 물동이가 나타나자 그는 저절로 그 옛 물동이를 버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저절로 옛날 물동이를 버린 것입니다. 새 물동이가 생기면 자동적으로 옛것은 필요 없어집니다. 그것이 더는 그 자신에게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그 새 물동이에 생수, 즉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는 복음을 담고 그것을 사마리아의 목마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받은 새 물동이는 생명의 물을 담는 물동이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그 물동이에 담겨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습니다. 주가 그리스도라는 확신이 그의 마음에 나타났습니다. 그의 마음에 성령님의 마음이 전달된 것입니다. 그 여자의 마음과 성령님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여자는 곧바로 그것을 전파하였습니다. 이 신비한 새 물동이는 보이지 않는 물동이로 하나님의 마음을 담는 물동이입니다. 하나님의 지식과 지혜, 사랑, 희락, 화평, 오래참음 등과 같은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물동이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성령님과 한마음이 된 것은 인간이 범죄한 후 상실된 마음이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은 마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 여자 앞에 영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자 그의 마음이 회복되어 그분을 바로 따랐습니다. 세상 물동이를 바로 버리고 그분과 같은 마음으로 행하였습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그에게 시작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마음, 그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곧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는 아직 그에게 영이 탄생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그분을 따를 수 있었으므로 영과 진리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면 결국 십자가로 인도되고, 그곳에서 살려주는 영이 탄생되어 영원히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받은 이 신비한 물동이는 하늘의 물동이이지만, 임시 물동이입니다. 성령님이 계속하여 그 여자의 마음에 하늘의 마음을 부어 줄 때만이 그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런 물동이입니다. 그러면 이 임시 물동이가 참 하늘 물동이가 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그가 영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십자가로 데려갑니다. 그 십자가에서 임시 물동이는 참 하늘 물동이로 바뀝니다. 그 여자가 십자가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즉 그의 영이 그 십자가에서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원죄를 가진 그 타락한 영이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성령에 의하여 그에게 살려주는 영이 탄생할 때 사람들은 하늘의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참 물동이를 가지게 됩니다.

 

이 참 물동이는 솟아나는 속성이 있는 신비한 물동이입니다. 그 속에 진리를 하나 담으면 그 속에서 계속하여 진리가 솟아납니다. 진리가 솟아나는 신비한 물동이입니다. 그러면 그는 영적 존재가 되고, 그 속에서 진리가 자동적으로 솟아납니다. 그 솟아나는 마음을 따르면 그것이 이 시대에 드릴 영과 진리의 예배입니다. 결국, 영과 진리의 예배는 진리를 먹을 때 그 속에서 진리가 솟아나 그것을 저절로 따르는 바로 그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 새로운 신비한 물동이를 가지면 그 속에서 진리가 솟아나 그의 영이 날로날로 새로워집니다. 그것이 마음에 전달되면 그 마음도 날로날로 새로워집니다. 이런 자들은 영이 되며 진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속에 진리가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진리가 될 수 있다고 했을 때 이때 말하는 그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와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그 자체로 진리의 본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속에서 진리가 계속 저절로 솟아납니다. 하지만 이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솟아나는 그 진리를 먹어야만 그 자신 속에서도 진리가 솟아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그 본체이시므로 진리를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마리아 여자와 같은 영과 진리의 사람은 진리를 먹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사마리아 여자의 참 양식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진리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그 자체이시므로 진리가 그분의 양식 될 수는 없습니다. 그분의 양식은 말씀에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타락하여 부정하게 된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것, 즉 계명을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그 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먼저, 사람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계명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참으로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후 죄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아야만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공생애 때는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하고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영이 탄생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과하여 신비한 새 물동이를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양식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 또한 그리스도의 양식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과 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통과할 때 나타납니다. 따라서 공생애 때 예수님께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 죽음을 온전히 이루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을 데리고 십자가에서 그들과 함께 죽는 그것이 그분의 하나님의 일, 즉 그분의 양식이었습니다. 그 양식을 위해 삼 년간의 공생애 삶을 사셨습니다. 십자가 이후 그분의 양식은 사람들을 십자가로 데려오는 것이고, 그들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이후 그 일을 하고 계십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양식은 성령님과 마음이 같아져서 그분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온전히 이루시는 것은 행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님과 완벽하게 하나의 마음을 품었기 때문에 온전히 행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행함을 보여 주셨습니다. 새로운 신비한 물동이를 가진 자들도 그 속에서 진리가 솟아나기 때문에 행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곧 영과 진리의 예배입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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