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요4:11-19)
“11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13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마리아 수가라는 동네의 우물가에서 한 여자를 만나 생수 이야기를 하십니다. 사람에게 참으로 필요한 생수 이야기입니다. 이 여자는 자기 조상 야곱이 준 우물을 받아서 우리가 그것을 먹고 산다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가장 큰 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이 생수 같은 물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당신은 그보다 더 큰 자냐고 질문합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하셨습니다. 이 물은 육적 차원의 물이 아닌 다른 차원, 하늘, 곧 영의 차원의 물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한 여자를 만납니다. 육의 세계에서 너무나도 힘들게 살았던 한 여자, 즉 우리 자신입니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다섯 명의 남편에게 자신을 맡겼으나 모두 그를 보호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우물가에서 이 여자는 진정한 남편을 만납니다. 그는 그 여자에게 생수를 주심으로써 남편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이고, 사마리아 여인은 땅과 같습니다. 이 야곱의 우물가는 바로 하늘과 땅의 결혼식장입니다. 하늘인 예수 그리스도와 땅인 사마리아 여인의 결혼식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 여자에게 생수를 주시는 것은 그와 결혼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물가의 여자가 만나는 장면은 매우 큰 영적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의 결혼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일어나는가를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는 흥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하늘과 땅의 결혼에 관해 말씀했습니다. 바로 그 하늘과 땅의 결혼은 사마리아의 한 여자와 예수 그리스도의 만남을 통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옛적에는 우물가에서 결혼이 많이 성사되었습니다. 리브가도 우물가에서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을 만나 이삭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야곱도 목자들의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나서 그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모세도 우물가에서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르우엘의 딸들을 도와 양들에게 물을 먹이면서 십보라와 결혼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 그와 결혼합니다. 그런데 이 결혼은 세상의 다른 결혼과는 달리 하늘과 땅의 결혼입니다. 하늘과 땅의 결혼은 하늘에서 온 신랑이 땅의 신부에게 하늘의 물인 생수를 줌으로써 그 결혼이 성립됩니다. 그 신부는 그 생수를 마시고 그도 땅에 있는 하늘이 됩니다.
땅에 있는 신부인 사마리아 여자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그 생수를 마셨을 때 그는 땅에 있는 하늘이 됩니다. 그 땅에 있는 하늘에서는 신비한 일이 일어납니다. 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생수, 즉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생수가 솟아납니다. 그에게서 영원한 생명이 솟아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땅에 있는 사람의 육체에서 영생하는 생수가 솟아났습니다. 이는 그 속에 하늘이 심어졌다는 뜻입니다. 땅이 하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땅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늘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 하늘의 속성인 영생의 생수가 솟아나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근본 속성은 영원한 생명력을 솟아나게 하는 속성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하늘은 영적 하늘입니다. 그 영적 하늘, 거대한 천국을 예수 그리스도가 작은 육체에 담아 세상에 가져오셨습니다. 그것을 천국이라고 부릅니다. 한 사람 속에 담긴 천국입니다. 그 천국에서는 근본 속성인 영생의 생수가 솟아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한 생명이 솟아났습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솟아나는 근본 속성이 세상의 속된 사람에게 옮겨지면 그것에서도 영생이 솟아나는 속성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마리아 여인에게도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생겼습니다. 그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신 생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속된 사람이었던 그 여자가 신령한 하늘이 되었습니다. 그에게도 생수가 솟아나는 속성이 생겼습니다. 공생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는 모든 장소에서는 이 영원한 생명이 솟아나는 속성이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병자들을 만났을 때 그 병자들에게 솟아나는 속성의 생명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병이 떠나갔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인 것도 이 솟아나는 속성이 그 오병이어에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영생이 솟아나는 속성은 영적 하늘의 근본 속성입니다. 이는 천국은 매일매일 새롭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계속하여 새로운 생명이 솟아나는 그런 세계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지혜, 새로운 영광, 새로운 사랑 등 모두가 솟아납니다. 그런 속성이 예수 그리스도와 결혼한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자들에게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면 이 세상에서도 그들 속에서 새로운 지혜와 지식이 솟아나고, 새로운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온유, 자비, 양선, 충성, 절제 등과 같은 것이 솟아납니다. 매일매일 새롭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 가운데 영이 탄생하고, 그 영이 활동하기 시작하면 그 속에서 영원한 생명이 솟아납니다. 그 솟아나는 영원한 생명이 그의 혼과 육체에 미칠 때 성령의 열매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의 혼과 육체의 영역도 천국의 통치 영역 속으로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혼과 육체, 즉 삶의 모든 영역에는 새로운 것이 솟아나는 속성이 나타납니다. 그들의 재물에서도 이런 솟아나는 신비한 속성이 나타납니다. 이런 것을 한 번 경험하고, 두 번 경험하면 그것에 익숙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것이 믿음으로 됩니다. 그들의 생각하는 방식이 완전히 개혁됩니다. 천국 백성의 의식을 가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의식입니다.
사람 속에서 영생하도록 하는 물이 나온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냥 생수를 마시면 그 자신을 영생하도록 하는 생수가 솟아나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자신의 영생을 초월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존재가 됩니다. 이 생수는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먹으면 그 속에서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는 말씀이 솟아난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는 말씀이 솟아난다는 것에는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을 포함합니다. 영생하게 하는 말씀이 솟아나면 그 솟아난 말씀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데 필요한 모든 영과 육적인 것들도 솟아난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즉 천국 속성입니다. 천국은 솟아나는 속성이 기본 법칙인 나라입니다. 이 세상의 속성, 한 번 사용하면 없어지는 그런 법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한다는 것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이 주시는 물, 즉 진리의 말씀은 사람의 근본인 영을 탄생시키고, 영이 탄생되면 그것이 그의 혼과 육의 영역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면 그의 혼의 목마름도 그 영으로 인해 채워지고, 육의 목마름도 그 영으로 인해 채워집니다. 그래서 혼과 육적인 물도 그에게 필요한 대로 새로 솟아나 채워집니다. 그것의 근본 속성이 솟아나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율법, 즉 육의 세계 근본 속성은 소멸되는 속성이지만, 영의 세계는 그 근본 속성이 솟아나는 속성입니다. 천국은 매일 새로운 것이 솟아나 새로워지지만, 육의 세계는 새로워지는 것이 없고 퇴색되고 소멸됩니다. 그래서 그 속에서는 만족이 없고, 항상 공허합니다. 사람의 마음이 공허한 것은 바로 그 속에서 새것이 솟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런 영의 법과 육의 법을 분별하고 영의 사람들은 이 영의 법에 몸이 익숙하게 길들여져야 합니다. 영의 사람들에게 매일 새로운 것이 솟아나도록 하는 방법은 매일 그분이 주시는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새로운 것이 솟아나지 않으면 그는 죽은 자와 같습니다. 진리가 그 속에 없는 자들은 곧 새것이 그 속에서 솟아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소멸됩니다.
베데스다 못의 신령함은 한 번 그 신령함이 첫 번째 물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사용되면 더는 그 못에는 신령함이 없습니다. 신령함이 계속 솟아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시 물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이는 육적 세계의 속성입니다. 육의 세계에서는 한 번 사용하면 그것이 소멸되는 법이 통용됩니다. 하지만 영의 세계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법 대신 솟아나는 법이 통용됩니다. 그들에게는 한 번 사용하면 또 다른 새것이 생겨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그 속에서 또 다른 신령한 새 말씀이 솟아납니다.
이런 하늘나라 속성은 말씀이 솟아나는 사람들의 육에도 통용됩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육적인 것들도 샘물처럼 솟아나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재물이 필요하면 그 재물도 솟아나고, 먹고, 입고, 마실 것이 저절로 솟아납니다. 세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일이 그들의 육적 세계에서도 일어납니다. 그것이 하늘나라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이미 들어온 자들입니다. 그러면 그 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나누어주면 다시 솟아나는 법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 법에 길들여져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경건의 훈련을 통해 이런 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수를 먹고 그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는 생수를 내어 그것을 나눌 수 있는 자들은 내면의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그 내면의 세상을 정복한 자들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내면의 세상을 솟아나는 생수, 즉 말씀으로 정복하면 정신의 두려움도 없어집니다. 영이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 정신에 두려움이 없어지면 그 정신에 성령의 통치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그 마음에도 영생하게 하는 생명과 평안이 채워집니다. 그러면 그것이 육체에까지 나타나 생명과 평안이 채워지면 난공불락의 성이 됩니다. 세상이 굴복합니다. 마음과 육체에까지 성령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하늘과 땅의 어떤 존재도 이런 자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다윗은 그 마음과 육체에 함께하는 성령의 충만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다닐 때 이런 성령의 함께하심을 감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안전하게 보호되었습니다. 그가 전쟁할 때도 그의 마음과 육체에 함께하는 성령의 충만함을 감지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전쟁이든지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에도 마음의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승리했습니다.
우리나라 옛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내면의 세계, 즉 정신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내면의 세계가 안정이 되어야만 그가 외적으로 하는 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일 3:2)”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영혼은 원어로 혼, 즉 마음을 말합니다. 그의 내면의 마음이 안정이 되어야 범사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그 내면의 세계를 가장 안정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속에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수가 솟아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차려주신 완전한 밥상입니다. 이렇게 속에서 솟아나는 말씀은 원수 앞에서 밥상을 차려줍니다.
또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 그리스도께 당신이 야곱보다 크냐고 물었습니다. 크고 낮음의 개념은 세상적 개념입니다. 야곱과 예수 그리스도는 차원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뿌리를 만든 자입니다. 야곱은 이 세상에 육적 천국, 즉 모형의 천국을 건설했습니다. 그때는 사람들이 거짓이므로 그렇게 모형의 천국만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적 천국, 참 천국을 열두 제자들과 함께 건설했습니다. 이런 차원의 차이입니다. 하지만 모형의 천국이 없었다면 참 천국은 없었을 것입니다. 모형의 천국이 있었기 때문에 참 천국이 그 모형의 천국을 통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야곱도 중요합니다. 야곱의 나라가 없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형의 천국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있어야 참 천국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우리의 부활과도 같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의 몸이 있은즉 영의 몸도 있습니다. 야곱의 나라가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있습니다. 모형의 천국이 있은 후 참 천국이 있습니다. 그 참 천국은 바로 우리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과 함께 건설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참 천국을 열두 제자들과 함께 출발시켰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천국의 기초석을 세운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세운 천국의 기초는 그들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 여인과의 대화에서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그 여자는 남편이 없다고 하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 여자의 상황을 모두 말씀하십니다. 그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현재의 남편도 그 여자의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을 찾아오실 때 그 사람의 속을 보고 찾아오십니다. 이 여인에 대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찾아오셨습니다. 그녀를 세상에서부터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연히 그 여인을 만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모두 알고 그 여인을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시는 일은 이와 같이 다 알고 사람을 부르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 그 여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다나엘을 부르실 때도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그를 보고 불렀습니다. 그의 내면을 보고 그를 불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나다나엘이 너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우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것이 아닙니다. 철저한 계획 속에서 때가 되어 내가 너무 필요하므로 사마리아 여인처럼 나를 불렀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서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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