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영생과 진리를 따르는 자(요3:16-21)

관리자님 | 2026.07.18 19:02 | 조회 211

13. 영생과 진리를 따르는 자(요3:16-21)

 

“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모세가 뱀을 든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가 들리면 그것을 보고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이미 이야기했습니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의 결론은 영생이었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일대일 개별 만남을 대표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싶어서 개별적으로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그분을 알 수 있는 정확한 방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그것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었고, 그것의 결론은 영생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개별 만남의 마지막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최고의 복이며, 사람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복입니다. 시편에서도 헐몬의 이슬이 시온에 내리는 것같이 복을 명령하셨으니 곧 영생이라고 하였습니다(시 133:3). 또한 영생은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으로, 하나님과 그분이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 17:3). 안다는 것은 영으로 아는 것으로 성령님이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영으로 알게 되면 실제로 아는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삶 가운데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말씀을 경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성령님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의 마음에 성령의 감동이 생겨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어 말씀의 뜻을 알게 됩니다. 마음으로 말씀의 뜻을 알면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은 혼과 육체가 행동하게 합니다. 이와 같이 나의 혼과 육체가 믿음의 행동을 하면 천국이 나에게서 표출됩니다. 이것이 천국이 세상에 표출되는 방법입니다. 결국, 천국, 즉 영적 하늘은 그리스도 제자들의 영적 인격을 통해 그들의 혼과 육체를 뚫고 나타납니다. 천국은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육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혼과 육체는 말씀을 행하는 도구이며 의의 병기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이 말씀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나온 것으로, '세상'은 곧 개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모든 자들을 포함합니다. 곧 개별적인 ‘나’라는 의미입니다. 즉 나를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독생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분을 믿는 자, 즉 십자가에서 하신 일, 즉 그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믿으면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 곧 최고의 복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인간은 죄를 범하면서 이미 심판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받게 하려면 먼저 자신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을 통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자각할 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들을 심판대로 데리고 갑니다. 율법을 통해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분으로 착각하게 합니다. 사람들이 죄 가운데 나서, 살기 때문에 죄를 알지 못하므로, 율법의 거울로 자신을 보고 죄인임을 깨알아 성막에서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성막에서의 죄 사함입니다. 그 성막에서의 죄 사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죄 사함을 예표합니다. 그 죄 사함이 인간에게는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곧 죄 사함을 완성하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완성입니다. 이 구원은 개별적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첫 언약의 말씀인 모세의 율법을 통해 시작됩니다. 율법으로 자신의 죄를 알면, 죄 사함을 위한 제사로 인도됩니다. 그것이 첫 장막, 즉 성막 제사입니다. 그 다음 둘째 장막이 나타납니다. 이 둘째 장막은 하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로, 곧 예수 그리스도가 제물이 되시는 참제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참제물 되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이름을 믿으면 이미 구원을 받은 것이며,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행하신 일과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령님의 선물입니다.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야만 믿게 됩니다.

 

첫 언약인 율법은 너무나 중요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율법의 말씀은 하나님이 직접 손가락으로 기록하셨습니다. 이 기록된 율법이 나를 죄인 되게 합니다. 그것이 첫 언약입니다. 첫 언약을 통해 죄인으로 자각하면 두 번째 언약인 로고스의 말씀이 나타납니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고 그 이름을 십자가에서 드러내셨습니다. 그 이름을 드러내심이 곧 십자가의 들리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들림으로써 그분의 이름, 즉 구원의 이름이 십자가에서 드러났습니다. 누구든지 십자가에 드러난 그 이름, 즉 그분이 행하신 그 일을 쳐다보는 자들은 영생을 얻습니다.

 

모세가 뱀을 든 것같이 들린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면, 각 사람은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됩니다. 그분의 죽음과 연합되어 죽고, 또 그분의 부활과 연합되어 부활의 생명이 그에게 임합니다. 이것이 영생입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개별적으로 그것을 쳐다보는 모든 자들을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게 합니다.

 

영생은 곧 죽음에서 다시 사는 부활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실 죽음의 십자가가 아니라 생명의 십자가였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명과 연합하는 십자가입니다. 그래서 그 십자가를 쳐다보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는 다른, 또 다른 생명나무입니다. 이 새 생명나무는 죄인들에게 맞추어진 맞춤형 생명나무입니다. 죄인들만 먹을 수 있는 생명나무입니다. 이 생명나무는 죄인들이 그것을 먹으면 그도 생명나무가 되는 새 생명나무입니다. 번식되는 신비한 생명나무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이 생명나무를 심기 위해 그 숱한 구속의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수많은 선지자가 죽었고, 수많은 사람이 이를 위해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도 심판이 아닌 구원이 목적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하는 목적도 결국 구원입니다. 고난은 우리의 연약한 혼과 육체를 훈련하기 위한 것이며 구원이 목적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망할 수 없습니다. 혹 망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구원을 위한 과정입니다. 이 구원에는 우리들의 질병, 가난, 문제, 전쟁, 기근, 전염병 등에서의 구원과 같은 육적인 구원도 포함됩니다.

 

세상 사람들의 심판은 그리스도 이후부터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지 않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이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십자가의 빛 가운데로 나오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어둠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악을 행했기 때문에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어둠의 행위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행위는 육의 사람이 자기 생각대로 한 행위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당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의 행위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로 나뉩니다. 당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었고, 따르지 않는 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마 10:26)”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은 어둠의 행위를 하고 있었으므로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육적인 종교 지도자들로 전락하여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결국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들의 악한 행위의 정체는 그당시 유대 백성들과 제자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었지만 곧 드러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감추어진 비밀은 제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고 하늘, 즉 영적 세계를 알았을 때 드러났습니다.

 

결국,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정체는 마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육의 생각을 따랐습니다. 악을 행하는 그들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었습니다. 빛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 즉 예수 그리스도보다 어둠, 즉 자신의 생각을 더 사랑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 즉 자기 육의 생각을 더 사랑하는 자는 빛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것, 자신의 생각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물세례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물세례는 하나님께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이 선택하는 첫 번째 세상 것의 포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는 물세례와 성령 세례입니다. 물세례는 사람이 세상 길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하겠다는 내면의 결단입니다. 즉 자신이 현재 사는 세상의 삶에 대한 선택의 결단입니다. 이런 방식의 죄 된 삶을 살고 싶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겠다는 결단입니다. 그것이 물세례입니다.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한 출발점입니다.

 

공생애 중간에 재물 많은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어찌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는 등의 계명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이런 율법은 자신이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자 예수께서 그를 사랑하사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아 슬픈 기색을 띠고 제 갈 길로 갔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재물이 있는 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하셨습니다. 그 부자는 재물이 많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했습니다. 재물이 그가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을 막았습니다.

 

이일 후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위하여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 자매, 어머니, 자식,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집과 형제와 자식과 전토를 버린 자들입니다. 이는 실제로 이들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삶의 우선순위 문제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것이 먼저가 되면, 사실상 현세에서 백 배로 집과 형제, 자매, 자식, 어머니 등의 가족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진정한 가족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내면으로 결단하는 것이 물세례입니다. 그 물세례가 있을 때 하늘에서 성령 세례가 옵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지 못합니까? 그것은 바로 이런 물세례의 결단 유무 때문입니다. 자신이 세상 길로 가지 않고 그리스도의 길로 가겠다는 결단입니다. 그것을 실제로 작은 행동으로 옮길 때, 그런 자들에게 성령 세례, 즉 하늘의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그 길로 가게 합니다. 작은 행동의 결단이 하늘의 은혜가 그에게 나타나게 합니다. 우리가 오늘 세상 길로 가지 않겠다는 행동을 작은 것이라도 보일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나타나 빛이 있는 데로 가게 합니다.

 

그것이 진리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가겠다고 작은 행동을 보이는 자들은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은혜가 그들에게 열려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 자들을 통해 복음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그렇게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그 진리가 자신들을 통해 세상에 나타나게 합니다. 이는 말씀을 따르는 자들은 계속 말씀 앞으로 나오는 속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물세례를 통해 성령 세례를 받은 제자들은 매일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자신을 부인하는 삶은 복음을 위해 세상의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보는 데 자신의 육적인 삶을 한 부분 포기하면, 그에게 성령의 역사가 함께하셔서 스스로를 저절로 부인하도록 하여 주의 길로 가게 합니다. 그것, 즉 나의 삶에서 작은 육적인 삶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 천국 건설의 출발점입니다. 복음을 위해 그것을 포기하면 현세에서 그것의 백 배를 받고, 영생, 즉 하늘의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의 바로 앞에서 아내를 포기했을 때, 그 다음 날 하늘이 주는 백 배나 소중한 아내를 되받고 재물도 얻었습니다. 이후 그가 독자 이삭을 포기했을 때, 이삭보다 백 배가 아닌 무한대로 큰 약속, 곧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실제로 모든 재산, 아내, 자식, 전토를 다 버리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무모하게 전재산을 교회에 바치는 것과 같은 흑과 백의 논리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그것은 내가 작은 것 하나라도 복음을 위해 포기하면 성령의 은혜가 나에게 임하여 그것을 진정으로 버리게 하시고, 그것의 백 배를 취하게 하시며, 하늘의 영생, 즉 축복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영생 가운데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성취한 복음 전파 역사의 결과물인 하늘의 상급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위해 작은 것 하나를 포기하면 내일 거대한 나라, 천국을 소유할 것입니다.

 

오늘 기도를 위해 내 시간을 포기하면, 오늘 묵상을 위해 내 시간을 포기하면, 오늘 모임을 위해 내 시간을 포기하면, 오늘 복음을 위해 작은 재물 하나를 하늘에 쌓으면, 작은 소자를 위해 작은 것을 하나 포기하면 하늘에서 상이 있을 것입니다. 그 하늘의 상은 현세에서 백 배를 받고, 하늘 나라의 상급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하늘의 복은 이런 자들에게 내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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