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광야의 불뱀처럼 들린 인자(요3:9-15)

관리자님 | 2026.07.11 17:34 | 조회 157

12. 광야의 불뱀처럼 들린 인자(3:9-15)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9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10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11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12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령으로 난 자들은 임의로 부는 바람처럼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땅에서 성령으로 나신 대표적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혼과 육체는 영이 아니라 육신입니다. 땅의 사람들이 만질 수 있는 실제 육신입니다.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그분의 육신은 성령으로 나셨음에도 살과 뼈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 사람과 똑같이 혼과 육체를 가지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살과 뼈가 있는 육체를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직전 말씀인 요한복음 36절에서는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이 마리아를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예수님의 혼과 육체는 영이어야 마땅합니다. 이처럼 성경에는 말씀이 서로 상충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묵상할 때는 앞뒤와 좌우 문맥을 깊이 살펴야 합니다.

 

살과 뼈가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모양을 한 육신으로 존재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완벽한 인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향후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할 때도 이와 같이 살과 뼈가 있는 육신을 입게 될 것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반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졌으나 그 육신의 기원은 우리와 달리 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땅의 죄 가운데서 났으나, 그리스도의 육신은 성령으로 잉태되어 났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리스도는 살과 뼈가 있는 우리와 같은 육신이지만, 실상은 성령으로 났으므로 영의 속성을 지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육신은 죄의 유전 없이 성령으로 태어난 거룩한 육신이므로 그 전인격이 하나님의 뜻에 100% 순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부터 완전히 성령님의 뜻대로 사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육신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보를 당시에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분은 성령으로 나셨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치며 따랐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육적인 왕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무리는 그런 눈에 보이는 왕을 원했지만, 그분은 오히려 나약한 모습으로 십자가 죽음의 길을 가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그 후 죽음에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즉 영적인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난 사람들의 길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성령 세례를 받았을 때 그들과 영적으로 연합하여, 그분의 이름이 가진 권세와 일들을 친히 성취해 가고 계십니다. 신비로운 길을 가십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제자들 역시 그리스도와 같은 길을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3년 동안 세상에서 걸어가신 길은, 아는 것을 말씀하시고 들은 것을 증언하시는 길이었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경험하고 성령으로 본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온전히 아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말씀을 맡았던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그분의 말씀과 증거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법인 율법문자에만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또한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땅의 일을 말하여도 믿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땅의 일은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일입니다. 눈에 보이는 일조차 믿지 못하는데,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일을 믿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여기서 하늘의 일이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높이 들리시는 일, 즉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영이 거듭나는 위대한 십자가의 신비를 말하면,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신 분이십니다. 이는 영적 세계에서 육적 세계로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3:13)”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적 세계에서 육의 세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받으신 후부터 하늘, 즉 영의 세계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영적 세계의 일, 즉 하늘의 일을 말씀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이때부터 그분은 하늘과 땅을 신령하게 오르내리시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십니다. 그분이 밟으시는 땅은 어디든지 하늘과 연결되어 하늘의 역사가 그곳에 펼쳐졌습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하늘과 땅이 연결된 사닥다리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을 잇는 중보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하늘의 신령한 것이 땅에 내려오도록 통로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가시는 곳마다 하늘의 일, 곧 귀신이 쫓겨나고 질병이 고쳐지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되고 문제가 해결되며, 인간 육체의 장애가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역시 성령 세례를 받으면 하늘, 즉 영적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하늘에 속하게 되는 유일한 자격은 바로 성령 세례입니다. 사람이 성령 세례를 받으면 그때부터 하늘을 알고 보게 됩니다. 하늘을 알고 보게 된다는 것은 영의 세계를 깨닫고 분별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고 보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기록된 성경 말씀을 성령님께서 조명하여 알려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하늘의 지식 세계가 열립니다. 그들의 삶은 땅의 계산이 아닌, 하늘의 지식이 인도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제자들이 하늘의 지식에 이끌리는 삶을 살면, 그들이 가는 곳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하늘의 권세가 땅에 연결되어 실재로 나타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처럼 하늘의 것을 땅에 심어, 이 땅을 하늘로 변화시키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밤에 개별적으로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는 영이 거듭나는 원리와 같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학문과 지식에서도 땅의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방법은 찾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사람 속에서 영이 탄생해야만 하늘에 속하게 되는데, 이러한 영적 탄생에 관한 지식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직접 계시해 주신 하늘로 올라가는 법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3:14)”라는 독특한 비유를 통해 선포됩니다.

 

모세가 뱀을 든 사건은 민수기 21장에 나오는 불뱀 사건을 가리킵니다. 불뱀에 물린 자들을 향해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아 놓고 그것을 쳐다보라고 했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자들이 모세의 말대로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았을 때, 놀랍게도 모두 살아났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 들리실 것이며,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들마다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아담의 범죄 이후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것은 실상 에덴동산에서 옛 뱀에게 물린 것과 같습니다. 뱀에게 물려 인류에게 영원한 사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눈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광야에서 놋뱀을 본 자들이 살아난 것처럼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광야의 백성들이 치유를 경험한 것은, 장대에 달린 놋뱀을 쳐다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놋뱀 자체가 무슨 신비한 마술적 효험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를 통해 듣고 그대로 행했으므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누구든지 그 십자가를 믿음으로 바라보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이는 단순히 나무 십자가나 예수님의 육체적 형상 그 자체에 집중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대속의 행위를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육체 자체가 가시적인 우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십자가를 지신 구속의 그 일이 신령한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 일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즉 그 이름의 본질을 온전히 믿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죄에서 해방됩니다. 불뱀에 물린 사람들이 모세의 불뱀을 바라본 것처럼 십자가에서의 예수 이름의 본질을 바라볼 때 죄의 속량(redemption)이 일어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위대한 일은 곧 그분의 인격이며 본질이신 '예수라는 이름의 나타나심 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참성전 안에 두어졌던 그 이름, 곧 하나님의 본질적인 이름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세상에 밝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 이름의 속성대로, 누구든지 십자가의 죽음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은 온전히 속량됩니다. 결국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는 곧 예수의 이름이 매달린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들은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외형을 보는 것을 넘어, 그분이 성취하신 일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입니다. 바로 그 이름에 속량(redemption)의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즉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일을 바라보는 자들은 그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가 됩니다. 그분의 죽음과 연합하여 죄에 대해 죽고, 나아가 그분의 부활과 연합하여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속량을 경험한 자들에게 성령 세례가 임합니다. 성령 세례는 성령에 의해 영이 탄생하고, 성령님께서 그 사람 속에 함께 거하시며 친히 인도해 가시는 것으로, 이것이 곧 기름부으심(anointing)입니다. 기름부음은 거룩한 직분을 맡게 됨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사람은 성령의 생각대로 행하는 영적 임직자가 됩니다. 결국 그 사람 또한 거룩한 성전이 되어 예수의 이름이 그 성전에 두어지고, 주님의 이름대로 죄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는 전도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완성하신 구원의 신비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성경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2,000년 전 골고다 언덕에만 국한된 과거의 사건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시공간의 한 시점에 매달리셨지만, 그분이 이루신 십자가 구속의 사역은 죄인들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효력을 잃지 않습니다. 따라서 2,000년이 지난 지금, 시공간이 다른 우리나라에서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성 밖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일을 믿으면 동일한 속량과 기름부으심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의 시각적 형상 자체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그 일, 즉 그분이 단번에 성취하신 대속의 역사와 그분이 행하신 일과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신 구원의 결론은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3:15)”는 말씀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를 믿는다는 것은, 그분이 십자가에서 행하신 대속의 죽음, 즉 십자가를 통해 확증된 예수의 이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이처럼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에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님을 통해서만 주어집니다. 또한 영생은 영원한 생명으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계신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생명을 십자가의 역사, 곧 십자가에 나타난 예수의 이름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선물로 주십니다. 그리고 그 영생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첫째 부활의 영광으로 온전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목록으로
댓글 0 | 엮인글 0
1,134개 (1/57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날짜
박기묵
2026.09.12
박기묵
2026.09.05
박기묵
2026.08.29
박기묵
2026.08.23
박기묵
2026.08.15
박기묵
2026.08.08
박기묵
2026.08.02
박기묵
2026.07.25
박기묵
2026.07.18
박기묵
2026.07.11
박기묵
2026.07.04
박기묵
2026.06.27
박기묵
2026.06.20
박기묵
2026.06.13
박기묵
2026.06.03
박기묵
2026.05.30
박기묵
2026.05.23
박기묵
2026.05.17
박기묵
2026.05.10
박기묵
2026.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