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니고데모와 예수 그리스도(요3:1-7)
“1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지도자이자 산헤드린 공회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밤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그분을 찾아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으시면 이러한 표적을 행할 수 없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계기는 그분이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표적은 단순히 이적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참성전이신 그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표출된 결과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었으므로, 그 이름이 육적 세상에 드러날 때 사람들의 눈에는 표적처럼 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자 참 인간이시므로 그분 안에 거하는 하나님의 통치와 생명이 육적 세상에 드러날 때 사람들의 눈에는 표적(Semeion)으로 보였습니다. 그 참성전 안에 두어진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날 때 표적처럼 보였습니다.
니고데모의 이야기는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물리적 성전과 참성전의 차이를 알려 줍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이 두어지며, 그 이름이 성전을 찾아온 자들에게 나타납니다. 니고데모는 물리적 성전을 통해서는 그 이름의 표출을 감지할 수 없었으나 참성전을 통해서는 그 이름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참성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이름의 표출은 그의 마음에 하늘로부터 온 표적으로 감지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와서 개별적으로 만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는 대중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도가 아닙니다. 니고데모와 같이 개별적으로 만나는 도입니다. 참성전에서의 하나님 이름의 나타남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은 니고데모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그 도, 즉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와서 개별적으로 만나는 나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개별적으로 찾아와 그 도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환영합니다. 그분은 니고데모에게 참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하나님의 이름을 표출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분은 3년의 공생애 동안 참성전 가운데 모셔진 하나님의 이름을 온전히 나타내셨습니다. 그 이름이 표출될 때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표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난 본질은 깨닫지 못하고, 단지 눈에 보이는 표적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랐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참성전이신 당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표출되는 과정을 친히 보이셨습니다. 왜냐하면 향후 제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성전이 되어 그 이름을 세상에 표출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제자 양육법입니다.
참성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이름이 표출될 때, 사람들의 눈에는 신기한 표적으로 비추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표적은 니고데모처럼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표적은 사람들이 예수께로 나아오도록 이끄는 마중물의 역할, 딱 거기까지입니다. 표적 자체에 어떤 능력이 있어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표적을 보고 니고데모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왔다면, 이제는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개별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니고데모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화는 표적을 보고 찾아온 각 사람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개별적으로 만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입니다. 니고데모는 개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표적을 보고 찾아온 자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표적을 보고 찾아온 니고데모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태를 통해 육으로 첫 번째 탄생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또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은 곧 영의 탄생을 밀합니다. 육으로 탄생한 상태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지만, 육으로 태어난 사람이 다시 영으로 태어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각 사람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영의 법칙을 일깨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사람이 영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그 나라를 결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지식이나 지혜로 인지하는 나라가 아니라, 영으로 바라보는 나라입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의 나라이므로, 사람이 영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볼 수 있다는 영적 법칙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영으로 거듭나면 그는 성령의 전이 됩니다. 즉,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됩니다. 사람이 성전이 되면, 그것은 곧 그가 하늘이라는 뜻이며, 성령님과 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의 생각을 마음으로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사람이 인지할 수 있는 영역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인지하게 됩니다. 이는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그것을 삶 가운데서 경험하게 됨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의 나라, 곧 말씀의 나라입니다. 따라서 그 말씀을 깨닫고 경험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의미합니다. 물세례는 사람이 세상적인 삶에서 돌이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십자가에서 그분과 연합하여, 자신의 타락한 영과 혼과 육이 그곳에서 죽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상징입니다. 제물 되신 그분이 죽으실 때 영적 관점에서 나의 혼과 육체가 함께 죽었음을 뜻합니다. 영적 관점의 죽음은 실제 죽음과 다름없습니다. 육은 잠시 존재하는 한시적인 것이지만, 영은 영원히 존재하는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는 하늘 성전에서 드려진 제사로, 그리스도께서 친히 영의 제물이 되셨습니다. 하늘 성전은 영의 성전이므로 영의 제물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사실상 영이었습니다. 그분의 육체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탄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므로, 그분의 혼과 육체 또한 영의 영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이사야 53장 말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혼(soul)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씨를 보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53:10). 십자가에서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와 혼은 이 둘을 떼어 구분할 수는 없지만 속죄제와 속건제 제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그 제물, 곧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연합한 각 사람의 영적 죄와 혼과 육체의 죄가 모두 도말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십자가에서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의 제사는 우리의 모든 영적 허물과 삶의 죄과를 온전히 도말하는 완벽한 속죄의 제사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전인격이 온전한 제물로 드려짐으로써, 그분을 믿고 연합하는 모든 자의 죄가 완전히 사함 받았습니다.
여기서 '씨를 본다'는 것은 새로운 영이 탄생함을 뜻합니다. 이 십자가 제사는 영적 제사이므로 단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영원히 효력을 발휘하는 제사입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제사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나아가면 영과 혼과 육체의 죄를 사함 받습니다. 그때 비로소 성령세례가 임하여, 성령에 의해 그의 영, 즉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렇게 영이 탄생하면 성령님께서 그 영 가운데 내주하셔서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사람이 이와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의 탄생은 곧 그가 성령에 의해 탄생하여 이미 하나님 나라가 되었음을 뜻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당신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 마음이 육체를 통해 삶으로 나타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게 됩니다. 성령의 시대,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그리스도의 제자 된 각 사람을 통해 당신을 나타내십니다. 이때부터 성도는 성령의 차원으로 이끌려 하나님 나라를 자연스럽게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은 곧 로고스이신 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이며, 이는 진리의 말씀이 마음에 저절로 깨달아져 진리의 말씀 세계가 열림을 의미합니다.
또한 말씀에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3:6)”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 곧 ‘영’에 의해 ‘영’이 태어남을 가르쳐줍니다. 영은 그리스 원어로 ‘πνευμα(프뉴마)’입니다. 즉, ‘프뉴마’에 의해 ‘프뉴마’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태어난 ‘영’이 성령님 자신은 아닐지라도, 그분과 본질적인 속성이 같습니다. 그리고 그 거듭난 ‘영’이 바로 진정한 ‘나’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땅에서 난 것이요, 영으로 난 것은 하늘에서 난 것입니다.
육과 영은 서로 통하지 않습니다. 육은 육과 통하고, 영은 영과 통합니다. 따라서 육은 영과 대화할 수 없고, 영은 육과 대화할 수 없습니다. 영으로 대화한다는 것은 곧 말씀으로 대화함을 뜻합니다. 육의 차원에 있는 마음이 영의 차원인 말씀을 감지할 때, 비로소 육의 차원에 있는 인간이 영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은 곧 영입니다. 육적 차원에 존재하는 인간이 기록된 말씀을 볼 때, 성령님의 마음이 그의 마음에 전달되어 영적 차원의 말씀을 감지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육의 차원에 속한 인간은 하나님과 말씀을 통해 교통하게 됩니다.
육과 영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육에는 육체의 소욕이 있으나, 영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습니다. 본래 영적 법칙에 따르면 영이 혼과 육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것이 올바른 질서입니다. 혼과 육이 영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육으로 난 자는 육이요 영으로 난 자는 영입니다. 이 둘은 차원이 달라 서로 교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이 두 차원이 공존합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혼과 육체, 그리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영이 함께 존재합니다. 이때 혼과 육체는 육의 차원에, 영은 영의 차원에 속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떻게 교통합니까? 바로 성령님을 통해 교통합니다. 그러므로 영으로 거듭난 자들에게 성령님은 필수불가결한 존재이십니다. 성령님께서 영에 속한 말씀을 육의 영역인 마음에 전달하셔서 동일한 마음을 품게 하시고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십자가를 통과하면서 성령으로 그들의 영이 탄생합니다. 그때부터 영적 세계를 육의 차원인 세상에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3년 공생애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나타내는 방법을 교육하신 기간이었습니다. 제자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이었는데도 향후 거듭난 후에 그들 중심에 모실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을 미리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동안 온전히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나타내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이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또한 당신의 이름인 '예수'를 온전히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은 공생애의 종착지인 십자가에서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그 이름의 속성을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그 이름은 가장 참된 표적, 곧 영적 표적이었습니다. 누구든지 그 영적 표적을 바라보면 그 이름에 담긴 구원의 역사가 그에게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육신이 탄생하셨으므로 그분의 혼과 육체 또한 영의 차원에 속해 있었습니다. 반면 성령으로 거듭난 제자들은, 영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났으나, 혼과 육체는 여전히 땅에 속한 옛사람의 흔적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차이점입니다. 인간의 혼과 육체는 땅에서 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육체는 영으로 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영과 혼과 육이 모두 영이셨으므로 성령님의 생각을 가림 없이 그대로 반영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영의 생각이 세상에 고스란히 표출되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혼과 육체의 영역이 영의 생각이 표출되는 것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경건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삶이 영이 중심이 될 때, 혼과 육체가 영의 인도를 따르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내면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이 세상으로 표출되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육의 차원에 있는 인간이 영의 차원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을 인지하게 해 주시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육체를 지닌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성령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육과 영이 서로 교통하도록 다리를 놓아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우리의 영, 곧 참된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한 사귐 속에 동참하게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내가 '하나' 됨을 인간의 육적 생각으로 분리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말씀을 통한 믿음, 즉 의심 없는 온전한 믿음은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의심'은 하나님과 분리된 존재이자 하나님의 속성이 없었던 '옛사람(겉사람)'을 진정한 '나'로 착각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사탄은 이처럼 육신에 머무르는 생각의 틈을 파고들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시키려 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 태어난 영적 존재, 곧 ‘πνευμα(프뉴마)’이지만 이 사실을 너무나 쉽게 망각하곤 합니다. 이 거룩한 정체성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서는 생활과 열정 중심이 아닌 하나님 지식 중심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신고
인쇄
스크랩
댓글 0개
| 엮인글 0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