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예수 그리스도의 성전청소(요2:13-17)
“13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첫 번째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성전에서 소와 양,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성전 밖으로 내쫓으셨습니다. 특히 비둘기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고 명하시며,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주의 집을 위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시 69:9)”라는 시편 69편의 말씀을 기억하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완전히 타락하여 장사꾼들의 소굴, 즉 강도의 소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본래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기 위해 지어진 물리적 장소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구별된 공간이었습니다. 유한하고 물리적인 존재인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집을 짓게 하시고, 그곳에서 그들을 만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그곳은 곧 하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세상 속에서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세워진 지상의 '물리적 하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하늘에 자신의 이름을 두시고, 그 이름으로써 성전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속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가시적인 형상으로 존재하지 않으시며, 자신의 속성인 ‘이름’으로 존재하시고 그 이름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을 찾아와 제사하는 자들에게 먼저 ‘죄 사함’의 역사로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십니다. 그렇게 죄 사함의 이름을 계시하신 후에는 각 사람의 형편과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이름을 나타내십니다. 어떤 이에게는 승리의 이름으로, 어떤 이에게는 치료의 이름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예비하심과 사랑, 온유 등 각자에게 꼭 맞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나타내십니다. 이처럼 성전에서는 제사를 통한 죄 사함으로 구원의 이름이 먼저 선포되고, 그 후에야 각 사람에게 합당한 그분의 속성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백성들이 나아와 먼저 죄 사함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면,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시고 그 기도에 맞춤형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므로 그 사정에 맞게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은 하늘을 만나고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희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장사꾼의 소굴로 전락했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희망이 사라졌음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성전이라는 하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경험합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이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가 시작된 그 시대의 진정한 성전은 더 이상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그 자신이었습니다. 그분이 곧 참된 성전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성전의 개념은 완전히 바뀝니다. 인간의 모양으로 존재하는 성전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성전, 곧 하늘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하늘을 보고 하늘에 들어 가려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와야 했습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나아온 자들에게 죄 사함을 먼저 선포하시고, 그들이 바라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기간 내내 이 일을 행하셨고, 제자들은 곁에서 이를 직접 보고 배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동행하며 이 사역을 보여주신 이유는, 그들 역시 십자가 사건 이후 맞이할 새 시대에 그와 같은 ‘하늘’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건 이후, 마침내 제자들이 성전이 되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제자들이 성전이 된다는 것은 곧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두어지는 ‘하늘’이 됨을 뜻합니다. 십자가 이후 각 제자 속에 이루어진 하늘은 곧 각 사람의 고유한 하늘입니다. 베드로의 하늘, 사도 요한의 하늘을 비롯하여 훗날 사도 바울의 하늘에 이르기까지, 각 사람의 하늘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이처럼 각 제자의 하늘을 준비하는 기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구속사의 중심은 바로 이처럼 각 사람이 하나의 하늘이 되는 시대를 여는 데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각자가 하늘이 되는 시대를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각 사람이 성전, 곧 하늘이 되면 그 내면에 하나님의 이름이 두어집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와 같은 제자들을 통해, 그리고 사도 바울과 같은 이들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시는 시대를 여셨습니다. 이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하늘이 되는 시대, 곧 ‘나의 하늘’의 시대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나의 하늘’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 하늘 속에서 성령과 동행하며 ‘나의 하늘’을 확장하는 삶을 살고, ‘나의 하늘’이 세상을 정복해 나가는 과정을 목도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 ‘나의 하늘’은 세상 나라처럼 내가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이기적인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을 받는 나라로, ‘나’라는 독특한 영적 통로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하늘’이며 ‘나라’입니다. 이러한 각 사람의 ‘나의 하늘’들이 교회로 모이게 하신 이유는, 저마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서로 고백하고 간증함으로써 ‘나의 하늘’을 더욱 확장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나의 하늘’은 신비한 나라로 교회로 모이면 날로날로 새롭게 됩니다. 바울과 같은 사람이 있는 교회로 모이면 ‘나의 하늘’과 ‘바울의 하늘’이 함께 성장합니다. 세상 나라는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점령하여 확장하는 나라이지만 ‘나의 하늘’은 교회로 모일수록 모두의 ‘나의 하늘’들은 같이 확장됩니다. 그래서 교회로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나의 하늘’은 나의 영이 중심이 되는 나라이며, 하나님과 한마음으로 경영됩니다. 인간의 혼과 육체가 그 온전한 다스림에 순종하기만 하면, 세상 속에서 거대한 ‘나의 하늘’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 ‘나의 하늘’은 나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 연합된 하나 밖에 없는 독특한 나라로 이 땅에 건설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나의 하늘’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지속적으로 선포되어 세상을 정복해 나갈 때, 그 하늘은 끊임없이 성장합니다. 그 하늘은 죽은 자들을 살리는 생명의 나라입니다. 지상에서 세운 그 ‘나의 하늘’의 결과물은 장차 나의 영의 이름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훗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흰 돌을 받을 때, 그 돌에 새겨진 새 이름은 바로 이 땅에서 이룩한 ‘나의 하늘’의 결과물로부터 나올 것입니다. 이 신비로운 ‘나의 하늘’의 시대가 지금 우리 가운데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추종하지 말고, 우리 각자 속에 임한 그 ‘나의 하늘’의 세밀한 음성과 뜻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전 청소 사건 역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때, 오늘날 ‘나의 하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나의 하늘’을 건설하는 데 가장 큰 방해물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나의 죽은 ‘겉사람’입니다. ‘나의 하늘’을 가로막는 존재는 언제나 죽은 옛 사람입니다. 이 옛 사람이 성전 된 우리 각자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방해합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던 자들이 바로 우리의 겉사람인 셈입니다. 겉사람이 이 시대 성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깨끗이 청소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성전의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방관하고 있으면 성전은 장사꾼 같은 옛 사람에 의해 마비되고, 결국 ‘나의 하늘’은 건설되지 못합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우리의 성전을 정결하게 청소합니다.
나의 성전이 청소되면 그곳에서부터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 먼저 나를 적십니다. 그리고 그 강물은 나를 통과하여 세상으로 흘러갑니다. 생수의 강이 닿는 곳마다 죽음의 권세가 물러가고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때 ‘나의 하늘’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는 바로 이처럼 각자가 ‘나의 하늘’을 넓혀가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 발걸음을 옮기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의 하늘’에서 나온 생수의 강이 흘러갈 때, 그 물을 마시는 자들은 각자의 형편에 맞는 하나님의 이름과 속성이 나타나게 됩니다.
성전은 하늘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바라볼 수 있었던 유일한 하늘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주관하던 지도자들은 그 하늘을 장사하는 집, 곧 강도의 소굴로 전락시켰습니다. 성전의 직분자들은 본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강물이 사람들의 마음에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돕는 청지기들입니다. 그런 성전이 사탄의 세력에 침범당하였습니다. 이는 곧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때(마 24:15)와 같습니다. 이러한 상태의 성전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 때입니다(마 24:15). 성전이 무너지고 멸망의 가증한 것, 즉 우상들이 성전을 차지했다는 말씀은 성전이 직분자들의 사리사욕과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징조가 나타나면 지체 없이 산으로 도망해야 합니다. 산으로 도망할 때라는 것은 새로운 하늘을 찾아야 할 때라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전을 청소하시던 바로 그때가 새 하늘을 찾아 도망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 지상의 하늘은 더는 참된 하늘이 아니니, 참 하늘을 향해 도망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참 하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참 하늘이 세상에 나타났으니, 유대 땅 성전에 제사하러 나왔던 자들은 이제 낡은 성전을 버리고 새 성전이신 예수께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후에는 그분을 따랐던 또 다른 새 성전인 제자들에게로 가야 합니다. 물리적인 성전은 더는 하늘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므로, 참 하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입니다. 이는 시대를 분별하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참된 성전은 오직 그분이셨으므로 그분에게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참 하늘이 세상에 임했음에도 그분께 나아가지 않고, 멸망의 가증한 것이 차지한 성전에서 하늘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참 하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전이 되는 새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이 참 하늘이며 온전한 성전이십니다. 이 성전에서는 생명의 물이 솟구쳐 흘러갑니다. 새로운 개념의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곧 복음 시대의 새로운 ‘생명나무’입니다. 그분에게서 끊임없이 생명이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그분에게서 솟아나는 생명의 물을 마시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을 때, 죽었던 자가 살아나고 무(無)에서 유(有)가 창조되는 역동적인 삶이 시작됩니다. 황무지가 변하여 옥토가 되고, 어둠의 세상이 빛의 세상으로 바뀝니다.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거룩한 열정을 보았습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심, 곧 아버지의 집을 사모하는 그 열심이 그분 전체를 삼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삼켰다는 것은 그 열정이 그분의 삶과 존재의 전부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자들은 그때 그리스도의 그 뜨거운 열성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시는 전적인 헌신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 열심은 거룩한 본능이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집이 장사하는 집으로 변질된 것을 결코 용납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성전을 청소하시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룩하고 본능적인 열심으로 자신의 나라인 ‘그리스도의 나라’를 성취하셨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각 제자의 내면 속에서 그분의 나라를 변함없이 성취해 가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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