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린양과 성령의 시대 시작됨(요1:35-42)

관리자님 | 2026.05.30 17:10 | 조회 192

6. 어린양과 성령의 시대 시작됨(1:35-42)

 

35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39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42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세례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외치는 소리는 율법 시대, 즉 제사 시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광야의 소리입니다. 광야의 외침입니다. 그 소리를 제일 먼저 듣고 그분을 따라간 자들은 세례 요한의 제자 둘이었습니다. 안드레와 또 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제 새 시대가 왔으니 그분을 따르고 그 나라에서 살라고 외칩니다. 세례 요한의 광야의 외침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광야의 외침은 율법 시대가 끝이 났다는 것입니다. 율법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육의 시대가 끝나고 성령의 시대, 즉 영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으로 살지 말고 영으로 살라는 외침입니다. 그것이 세례 요한의 광야의 외침이었습니다. 영으로 사는 것의 첫 출발은 어린양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것에는 큰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그들이 율법 시대의 삶을 끝내고 복음의 시대, 즉 영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의 외침은 육의 삶을 사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아직 영의 시대로 들어가지 못한 자들에게 모두 유효합니다. 아직도 그 광야의 소리는 들리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8)”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직 육의 시대를 살아가는 자들은 세례 요한이 외치는 광야의 소리를 듣고 어린양에게로 가라고 합니다. 그 어린양에게로 가면 그 어린양이라는 제물과 연합되어 육이 죽고 영이 탄생하여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나의 영의 시대를 맞이하게 됩니다. 성령님과 함께하는 나만의 영의 시대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세례 요한의 광야의 외침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그의 스승의 말을 듣고 어린양을 따라갑니다. 그들이 따라가자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구하느냐고 하십니다. 이 말은 너희들이 무엇을 원하여 나를 따르느냐는 것입니다. 그러자 두 제자는 어디 계십니까라고 대답합니다. 이는 당신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 나라에서 살고 싶습니다, 우리를 데려가 달라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율법의 나라에서 살았는데 당신의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는 육의 나라에서 살았는데 영의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고백입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율법의 나라에 있었던 그들을 영의 나라로 초청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그곳은 영의 나라입니다. 그곳이 물리적인 장소로 어디가 되든 그곳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그날 그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그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는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고 그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필요합니다. 육의 나라, 율법의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합니다. 그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라는 소리를 외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린양을 따라가면 그곳이 영의 나라, 곧 천국입니다. 이것이 율법의 나라에서 복음의 나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 육의 나라에서 영의 나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간 사건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시대가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성령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육체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성령이 임하여 성령이 육체를 입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도하는 시대입니다. 사실상,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는 육체에 능력이 임하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또한 제자들 시대의 도래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들어가셨던 바로 그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들어가 육체를 가진 제자들에게서 능력을 나타내는 시대입니다. 영의 시대는 능력의 시대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께 가르침을 받던 자들이 성령께 직접 가르침을 받는 시대입니다.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입니다. 결국, 이 시대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던 것입니다. 이 새 시대는 제자들의 시대로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바통을 물려준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 바통을 물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 속으로 들어가셔서 그 제자들과 함께 달리십니다. 그런 특이한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세례 요한만이 그 시대에 참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알아보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알아본 메시야의 정체는 어린양이었습니다. 당시의 대제사장, 장로들과 바리새인이 가졌던 메시야상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머리로 그 메시야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상상 속의 메시야이며 육적 메시야였습니다. 참 메시야는 어린양, 즉 제물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였습니다. 하늘의 소리를 듣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메시야를 올바로 찾아냈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 장로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 지혜로 사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늘의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맡았지만 그 말씀이 소리치는 것을 듣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육적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나타나신 참 메시야는 어린양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을 어린양이었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연약하였지만, 실제로는 가장 강한 분이셨습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마귀가 진멸되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죄도 진멸되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성령님과 실시간으로 교통하는 자였으므로 그분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만약 세례 요한이 이 참 메시야를 알려 주지 않았다면 인류는 망했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광야의 외침이 없었다면 우리 각자는 망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올바른 메시야상이 세상을 구원했습니다. 복음의 시대에도 올바른 메시야상은 세상을 구원할 것입니다. 올바른 메시야상을 가진 자들은 세례 요한처럼 어린양을 따라가라고 외칠 것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말씀과 기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말씀을 보고 기도를 할 때 성령님이 알려 주시는 메시야, 즉 로고스(λόγος)의 말씀을 외칠 수 있습니다. 그분을 외칠 때 그 소리를 듣는 자들이 있고, 그들이 구원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이 말씀 보고 기도하는 것은 이것 때문입니다.

 

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잘못된 복음, 잘못된 그리스도상을 가지면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됩니다. 고린도 교회와 갈라디아 교회에 가만히 숨어 들어간 율법주의자들이 그런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적인 자들, 육적인 자들로,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잘못된 메시야상을 가진 자들로 다른 복음, 다른 영을 전파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자기의 육적 지혜와 지식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과 장로들은율법의 말씀으로 하늘로 승천한 그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엘리야 사상을 만들었던 자들입니다. 그렇게 하여 메시야를 보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 그 엘리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반나절을 보낸 자들 중 하나는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안드레가 베드로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데리고 와서 그분을 메시야로 소개합니다. 안드레는 세례 요한의 소리를 듣고, 그분과 반나절을 보낸 후 그분이 메시야이심을 알았습니다. 성령님이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곧 전도하여 예수께로 그 형제 베드로를 데려와 메시야로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처음 보자마자 그에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1:4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시몬에서 베드로로 바뀐다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부르실 때 그 근본 속, 근본 속성을 보고 부르셨습니다. 이후 나다나엘에게도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각 사람의 속을 보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마치 첫째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각종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지을 때 그 속을 보고 짓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이 이름 짓는 그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그 이름을 짓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동물이나 식물대신 사람에게 이름을 지어 줍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의 속을 보고 게바로 불릴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근본 속성을 보고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근본 속성은 원죄를 가진 자로 그의 영이 마귀에게 오염된 마귀의 자식과 같았습니다. 그가 마귀의 자식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시몬의 그 근본이 하나님의 잃어버린 양임을 알았습니다. 겉으로는 마귀의 자식이지만 그 근본이 잃어버린 양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베드로라 불릴 것을 미리 알려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이 시몬과 같은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의 시대를 위해 준비된 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창세 전부터 아버지가 미리 예정하신 자들인 나실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삼손이나 사무엘처럼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미리 예정된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몬의 이름이 베드로라 불릴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들은 우리 가운데 우리 지혜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아직 아버지의 나라로 들어오지 못한 잃어버린 양과 같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목자, 즉 예수 그리스도의 소리를 발할 때 세상에 드러납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 요한에게 물세례를 받을 때 세상에 나타난 것처럼 세상에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목자의 음성을 발하여 그런 자들을 찾아내는 자들입니다. 제지들은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위해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그들의 속, 즉 속성을 보고 동물과 식물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속, 그 속성을 보고 이름을 미리 알려주셨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속을 보신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사람들 중에는 미리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간 자들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룟 유다는 그 속에 없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팔기 위해 미리 준비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 미리 사람들도 준비하십니다. 그 나라가 세워지고 퍼져갈 때 그 나라의 기둥이 되는 사람들과 그 나라에서 그리스도에게 순종하여 따라갈 사람들을 미리 예비하셨습니다. 아무나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고 있는 우리는 이미 큰 축복 속에 들어가 있는 자들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이름을 지으면서 에덴동산을 관리하는 자였지만,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나라를 건설하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게바, 즉 베드로로 불리는 시점은 그가 성령 세례를 받은 후부터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신앙고백을 했을 때 너는 베드로라고 하시면서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베드로가 성령 세례를 받은 후 구약성경의 메시야를 알리는 설교를 했을 때 3,000명이 구원받았고, 이후 또 설교했을 때 5,000명이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그들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는 그 고백이 각 사람의 가슴에 들리면 교회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시대는 곧 교회의 시대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바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같은 고백 위에 세워집니다. 이는 곧 각자가 그 속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때 그 고백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각자의 로고스(λόγος) 말씀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그 외의 것들, 즉 기사와 이적, 귀신 추방, 병 고침, 세상적인 전도, 금식, 기도, 구제, 주일 예배 참석, 육적인 축복 등과 같은 것들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것이 강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성도들이 말씀을 믿는 믿음의 결과물들입니다. 교회의 기초는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아는 것, 로고스(λόγος)의 말씀을 깨닫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 둘은 어린양이라는 외침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 영의 나라로 들어갔습니다. 그 나라로 들어간 그들은 그들도 어린양처럼 제물이 되었습니다. 어린양을 따라가는 자들은 어린양이 됩니다. 육의 사람들은 큰 권세와 높은 것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어린양을 따르는 자들은 세상에서 제물이 되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산 제물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성령의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산 제물이라는 것은 성전 안에 속한 하나님의 것으로 완전히 거룩하게 된 제물입니다. 그렇게 산 제물이 된 자들은 영의 소리를 듣는 자들입니다. 그 소리를 듣고 저절로 그 소리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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