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광야의 소리와 한 사람(요1:19-28)

관리자님 | 2026.05.17 02:00 | 조회 266

4. 광야의 소리와 한 사람(1:19-28)

 

19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21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22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23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24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25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26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27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28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 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 즉 바리새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그의 정체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과연 누구이며, 왜 그가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는지 그 자격과 이유를 궁금해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파견하여 그의 정체성을 공식적으로 질의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세례 요한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 명백히 드러내어, 자신은 그리스도, 즉 메시아가 아니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렇다면 당신이 엘리야냐고 다시 물었고, 세례 요한은 역시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변화산에서 요한,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내려오실 때, 세례 요한을 가리켜 엘리야라고 명시하셨습니다. 세례 요한 본인은 자신이 엘리야가 아니라고 부인한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바로 엘리야라고 증언하신 것입니다. 이 엘리야와 관련된 예언은 말라기서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4:5)”라는 말씀으로 등장합니다. 이 예언은 메시아가 지상에 임재하시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도래할 것을 천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영적이 아닌 문자적·학문적으로만 해석하여 그들만의 잘못된 엘리야 사상을 고착시켰습니다. 그들은 엘리야 선지자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했기 때문에, 과거에 승천했던 그 선지자 엘리야가 육체 그대로 다시 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엘리야가 오면 메시아가 뒤따라 도래하여 이스라엘 나라를 로마의 압제로부터 정치적으로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자신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은, 바로 이러한 유대인들의 그릇된 관점과 기대에 따른 대답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대하는 정치적 선구자로서의 엘리야가 아니라는 의미였습니다. 이처럼 유대 율법학자들의 자의적이고 잘못된 성경 해석은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을 메시아를 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 맹인으로 전락시켰습니다. 그들의 율법 해석은 지극히 육적이며 학문적인 해석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례 요한이 말라기 선지자가 예언했던 바로 그 선지자라고 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외치는 사명을 맡은 자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양식으로 삼고 가죽옷을 입고 생활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안락하고 편안한 삶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았으며, 오직 광야의 거친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지시하신 삶의 방식에 완전히 순종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광야까지 자신을 찾아오는 자들을 향해 타협 없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회개의 열매는 두 벌 옷을 가진 자는 없는 자에게 나눠 주고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와 같이 자비를 베풀며, 세리들에게는 정해진 세금을 징수하고, 군인들에게는 강탈하거나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회개의 열매를 선포하면서, 그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물속에 잠그는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서 보냄을 받은 자들은 세례 요한의 대답에 이어 네가 만일 엘리야가 아니라면 그 선지자냐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그 선지자라는 표현은 신명기에 기록된 모세의 예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명기 18장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18:15)”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모세가 이 말씀에서 장차 자신과 같은 특별한 선지자 하나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것을 예언한 그 선지자인지 물은 것입니다. ‘그 선지자는 오실 메시아 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세례 요한에게, 자신을 가리켜 무엇이라 하는지 그 정체를 물었습니다. 이에 세례 요한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자신은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나의 인격체라기보다 오직 광야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의 길을 곧게 하는 방법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옷과 음식을 나누고 탐욕을 버리는 등 구체적인 삶의 행동이 동반된 회개의 열매를 맺는 것이었습니다. , 실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돌아서는 것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발한 광야의 소리는 인간의 육체가 인지할 수 있는 시공간적 영역의 소리입니다. 인간이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이켜 물세례를 받으면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며, 그 후 예수 이름의 죄 사함의 세례를 받고, 성령세례의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죄사함의 세례와 성령세례는 하늘에 속한 것으로 동시적입니다. 성령세례가 임하면, 성령님께서는 인간의 육체가 아닌 오직 영이 인식할 수 있는 신령한 소리를 내면에 부어주십니다. 그 영의 소리가 비로소 인간의 내면 속에서 진정한 주의 길을 만들어냅니다. 우리 중심에서부터 주의 길이 나타납니다. 그 길이 나를 통과하여 밖으로 흘러나가면, 그것은 광야의 소리를 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로 들어가 그들의 내면에도 동일한 주의 길을 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의 광야의 소리는 주의 길을 내기 위한 첫 단계입니다. 이 때문에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주의 길을 예비하고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외쳤습니다.

 

이사야서에서 말하는 광야와 사막은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 영적 생명이 고갈된 인간의 황폐한 내면과 마음을 비유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 광야나 사막같이 메마른 인간의 마음에 주의 길을 내라고 외쳤습니다. 주의 길을 내기 위한 첫 단계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입니다. , 회개에 합당한 열매입니다. 세상 탐욕에 찌든 삶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 표시로 세례 요한에게 나와 물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의 물세례 다음은 예수 이름의 죄사함의 세례입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통회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갈 때, 주님은 그들을 십자가로 데려가 그 십자가에서 그의 영과 혼과 육의 죄의 완전히 소멸합니다. 그들의 죄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여 완전히 소멸됨과 동시에 성령세례가 임하면서 새로운 영이 탄생합니다. 죄사함의 세례, 성령세례, 영의 탄생은 영의 시간대로 동시적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먼저 일어나고, 부활하신 다음 40일 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승천하신 후 10일 후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에게 보인 세상 시간대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 임하는 십자가 죽음의 세례는 그분이 실제로 죽었을 때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고, 그들에게 성령세례가 임할 때 동시적으로 일어납니다. 영의 탄생도 영의 시간대에 속한 것으로 성령세례와 동시적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탄생한 속사람의 영, 살려주는 영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으면 그것이 생각을 냅니다. 그 영의 생각이 내면에서 나타나는 주의 길입니다. , 말씀에서 나온 생각이 그의 삶을 인도하는 현실적 길입니다. 그 생각이 영으로부터 흘러나와 성도의 혼과 육체를 관통하고, 더 나아가 그의 모든 환경으로 확장됩니다. 이 주님의 길은 곧 죽은 자를 살리는 생명의 길입니다.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던 마음에 생명의 대로가 뚫리면, 인간은 비로소 산 자로서의 영적인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이 생명의 길을 걷는 자들은 삶 속에서 영적인 골짜기가 메워지고, 교만하던 높은 산이 낮아지는 놀라운 은혜의 역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오늘 내 삶에 생명의 길이 뚜렷하게 나타나면, 그것은 내일 또 다른 생명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강력한 영적 동력이 됩니다. 산 자가 걸어가는 그 길은 날마다 새로워지는 생명의 대로입니다. 이 경이로운 생명의 길이 열리는 첫 단추가 바로 세례 요한의 광야의 소리였습니다. 그 광야의 소리는 오직 그것을 사모하고 환영하는 자들의 귀에만 들립니다. 세리장 삭개오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 즉 로고스의 말씀을 간절히 열망하고 환영하는 자들이 그 소리를 듣습니다. 삭개오는 자기 동네를 지나가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갈 정도로 주님을 최고의 가치로 환영한 인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수많은 군중 가운데서 가장 환영했던 삭개오를 정확히 찾아내시어 그의 집에 머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결과 삭개오와 그의 온 집안이 영원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 광야의 소리는 화려한 도심이 아닌 광야에서 들려옵니다. , 우리 내면의 깊은 광야에서 울립니다. 세상적인 욕망이 아닌 자기 내면의 광야로 깊이 들어갈 때 비로소 세례 요한의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소리는 부드러운 옷입은 자들이 가득한 왕궁이나 안락함으로 치장된 인간의 보금자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광야의 소리를 들으려고 광야로 나간 자들은, 더 이상 세상의 왕궁이나 귀족들의 삶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주의 길은 오직 광야라는 고독 속에서 예비됩니다. 사람들이 광야의 소리를 들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되어 마침내 심령 속에 주의 길을 내게 됩니다. 이처럼 내면에 닦이는 주의 길은 광야에서부터 출발하는 길입니다. 따라서 세상 왕궁의 화려함이나 귀족의 영예를 쫓는 자들에게는 이 생명의 길이 결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시작된 주의 길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무리를 향해 세례 요한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야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11:7-9)”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향해, 그들이 왜 그 척박한 광야로 나갔었는지 질문하셨습니다. 그들이 광야로 나간 것은 세례 요한 같은 한 선지자를 보러 간 것이 아니라, 그 선지자가 증언하는 선지자보다 더 뛰어난 분’, 즉 메시아를 보기 위해 나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광야로 나간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어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의 죽음과 연합하는 죄 사함의 세례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광야로 나간 자들이 구속사의 마지막 단계인 성령세례를 받으면 비로소 참된 메시아이자 생명 자체이신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을 영안으로 보게 됩니다. 그때 비로소 성도의 내면에서 영광스러운 주의 길이 찬란하게 나타나며, 그 생명의 길을 통하여 죽었던 영혼이 다시 살아나는 위대한 창조의 역사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은 세례 요한의 자격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합니다. 그들은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1:25)”라고 물었습니다. 메시아도, 선지자도 아닌데 무슨 영적 권위와 자격으로 백성들에게 세례를 베풀며 세상의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고 하였습니다. 이 질문에 세례 요한은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고, 구속사의 핵심을 찌르는 간접적 응답을 합니다. 그는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고 하였습니다. , 지금 너희들 한가운데 영적 무지로 알아보지 못하는 절대적인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이 바로 내 뒤에 오실 메시아이자 모세가 예언했던 그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에게 물세례를 주고 있는 또 다른 한 목적은, 위대한 그분을 세상에 밝히 드러내어 물세례를 받으러 온 죄인들에게 그 메시아를 따라가도록 증언하기 위함입니다.

 

세례 요한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조차 없는 종보다 못한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본문에는 없지만, 누가복음에서 세례 요한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가리켜 그는 불과 성령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베푼 물세례는 흙으로 지어진 땅의 사람을 하늘의 영역으로 들여보내기 위해, 하늘 문 앞까지 인도하는 땅에 속한 세례입니다. 그 하늘 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세례입니다. 그 십자가의 세례가 바로 인간의 죄를 소멸하는 죄 사함의 세례이자, 본질적인 불세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십자가 죽음과 연합된 모든 자들의 영과 혼과 육의 죄가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 심판하는 영, 소멸하는 영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연합된 죄인들의 영과 혼과 육의 죽음은 소멸하는 불의 심판이며 불세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불세례는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죄사함의 세례이며 예수 이름의 세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불세례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통과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써, 영적인 불 속에 완전히 장사지내지는 완전한 소멸의 세례입니다. 십자가에 타오르는 영적인 불은 타락한 옛 인간의 본체인 죄된 영과 혼, 그리고 육체의 악한 소욕을 남김없이 태워 소멸합니다. 또한 그곳에서 인간을 오랫동안 사로잡고 지배해 왔던 마귀의 권세, 즉 귀신들의 왕을 완전히 불태워 파멸시킵니다. 인간의 내면에 잔존하는 모든 영적인 더러움과 죄악의 찌끼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라는 영의 불에 의해 깨끗하게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최고의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입니다. 인간이 범죄하면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행하셨던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은 아브라함 때부터 실제적으로 시작되어 십자가에서 그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은 존재물의 운영 원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존재물들의 운영원리 중 범죄한 인간들에게 가장 크고, 가장 필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라는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입니다. 그 그리스도의 죽음이라는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으로 인해 범죄한 인간의 영과 혼과 육의 죄가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에 의해 소멸되고, 마귀가 진멸됩니다. 최고의 존재물들의 운영 원리인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입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십자가 죽음이라는 로고스(λονοϛ) 말씀은 최고의 길이며,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불세례를 온전히 거친 자들은 거룩하게 되었으므로 성령세례가 임합니다. 성령세례가 임하자 영안이 열립니다. 베드로는 구약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내는 말씀을 선포했을 때, 3,000명의 사람이 심령에 큰 찔림을 받아 변화되어 우리가 어찌할꼬라며 절망 섞인 탄식을 하였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며,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2:38)”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언급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를 사하는 과정이 바로 그들의 영과 혼과 육의 죄를 소멸하는 십자가의 불세례이며, 그 정결함 위에 성령을 선물로 수여받는 사건이 곧 성령세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불세례를 통해 정결해진 자들을 향해, 예수의 이름으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셨다는 것은, 성령 하나님 역시 예수 이름의 거룩한 사역, 즉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일을 성취하기 위해 오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께서는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들의 영 속에 임재하실 때, 예수 이름이 가진 대속과 창조의 속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임하셨습니다. 성도의 영 내면에서 예수 이름의 일, 즉 죽은 자를 살려내는 구원의 사역을 역동적으로 수행하십니다. 따라서 성령세례를 받아 속사람이 거듭난 성도들은 인위적인 노력이 아니라, 내면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자동적·본능적으로 구원의 일에 동참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거듭난 성도들의 영과 완벽하게 하나로 연합하시어, 그 영에게 예수 그리스도, 즉 만물의 운영 원리인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을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하여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본능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해 나가도록 이끄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불세레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성령세례를 베푸신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 즉 땅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세례를 받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불세례를 통과함으로써 비로소 하늘의 영역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땅의 차원에서 하늘의 문을 통과하여 거룩한 하늘 차원의 삶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이 영적 대전환을 거친 성도들은 더 이상 땅의 법에 얽매이지 않고, 하늘의 원리를 따라 살아가는 천국 시민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들의 영적 시민권이 땅에서 하늘로 완전히 바뀐 것입니다. 이에 따라 신분 역시 단순한 피조물에서 하나님의 자녀, 즉 하나님 나라의 정당한 상속권자로 격상됩니다. 성령세례를 통해 새롭게 거듭난 성도의 영이 성령 하나님의 마음과 완벽하게 일치되어, 그 영의 권능이 당분간 육신의 삶 동안 입고 있는 옛 혼과 육체의 옷을 완전히 점령하고 다스리게 될 때, 비로소 하늘의 신비한 권세가 성도의 삶을 통해 땅의 영역에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로 이러한 거룩한 방식을 통하여, 영적으로 황폐한 땅의 영역에서 죽은 영혼들을 살려내는 생명의 역사를 성취하는 위대한 구속 프로젝트에 동역자로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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