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말씀(λονοϛ)의 나타나심과 연합(요1:14-18)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15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때, 우리는 이를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 고백합니다. 이 영광은 독생자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어 사람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시고,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생명의 나라를 여신 데서 기인하는 찬란한 영광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품속에 계시던 독생자만이 성취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일이었으므로, 그 영광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영광은 위대한 사역의 완성을 통해 나타나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신 그 일은 존재물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취입니다. 그 사역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떤 존재도 성취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의 사망을 삼키고 그들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는 그 일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실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었습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는 그 생명은 그 본성 자체가 죽은 자를 살아나게 하는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그 생명을 받은 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는 권능의 통로가 됩니다. 이 완벽한 하나님의 사역은 오직 그분만이 성취하실 수 있었으로 주님은 영광 그 자체가 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영광을 볼 때 그들에게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임합니다. 여기서 ‘충만’이란 영의 영역을 넘어 혼과 육체에 이르기까지 그 영광의 영향력이 가득 차는 상태를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모두가 주님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라고 증언하였습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어졌으나, 은혜와 진리의 실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도래하였습니다. 이제 율법의 시대를 지나 은혜와 진리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아버지 품속의 독생자께서 스스로를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은혜와 진리가 지배하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며, 그곳에서 생명의 나라를 창조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자들이 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 그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며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인간 스스로가 회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이 물세례 자체가 사람의 죄를 근본적으로 깨끗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물세례를 받으러 오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였습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지만 나보다 앞선 분이며, 이는 그분이 나보다 먼저 계셨기 때문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항상 외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는 세례를 주는 사역 가운데 메시아를 찾아내었으며, 그분을 발견한 후에는 사람들에게 그분을 따라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이시며 그분의 실체는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하실 때만 비로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사람들이 로고스의 말씀이신 그분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먼저 세례 요한을 소개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분을 증언하기 위해 보냄을 받은 선지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세례 요한을 통해 물세례를 받아야만 그분을 소개받을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세상의 길에서 돌아서겠다는 자기 자신의 의사 표시 행위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사도 바울이 윗지방을 거쳐 에베소에 이르러 어떤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자, 그들은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이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다시 묻자, 그들은 요한의 세례라고 답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였으니,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고 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고, 그 뒤에 오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 제자들이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성령이 임하시어 방언과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 예수 이름의 세례가 뚜렷하게 구분됨을 보여줍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사람의 편에서 회개하겠다는 표시입니다. 그 증표로서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이 회개했다는 행위를 잊지 않도록 확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회개하면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됩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받은 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만 합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자신에게 물세례를 받은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그분을 꼭 따라가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오직 이 사명을 위해 보냄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습니다. 이 예수 이름의 세례는 자기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시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의 죄된 영과 혼과 육이 모두 십자가에서 죽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죄 사함의 세례입니다. 이 죄 사함의 세례가 곧 물세례의 완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연합하는 이 세례를 통해 그의 모든 죄는 십자가에서 소멸됩니다. 이처럼 정결함을 입은 후에야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데, 이것이 곧 성령세례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예수 이름의 세례를 받는 자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한 것과 같으며,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방언과 예언을 하며 그 증거를 나타냈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세례를 받은 사도 요한은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은 각 사람의 내면에서 나타나며, 성령충만을 받은 자들에게서 발현됩니다. ‘은혜 위의 은혜’라는 고백은 은혜가 충만하다는 말입니다. 이는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솟아나는 충만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성령님께서 각자의 내면에 로고스의 말씀을 깨닫게 하실 때 나타나는 선물입니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은 로고스의 말씀이 속에서부터 솟구쳐 오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내면에서 하시는 주된 사역이 우리가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을 볼 수 있도록 증언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이 우리 내면에서 밝히 보일 때, 우리는 은혜와 진리의 충만함에 이르게 됩니다.
범죄하기 전 에덴동산의 아담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항상 충만함을 누렸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에덴동산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범죄와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마귀를 닮아 결핍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난 결핍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범죄 이후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재산을 소유해도 항상 모자람을 느끼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충하려 애씁니다. 이것이 타락한 인류의 본성입니다. 인간의 본체인 영이 범죄로 인해 병들었으므로 그에 속한 혼과 육 또한 항상 결핍과 질병에 시달리다 결국 죽음에 이릅니다. 범죄한 인간의 영적 질병은 영적 불뱀에 물린 상처와 같아서 항상 충만함이 없이 부족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이러한 결핍된 인간을 충만하게 채우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분은 살려주는 영이신 충만의 영으로 사람의 본체인 충만의 영을 탄생시키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 충만의 영은 결핍된 옛 영이 죽고 다시 탄생한, 그리스도와 동일한 차원의 영입니다. 사람의 영이 결핍에서 충만으로 바뀔 때 진정한 만족이 있으며,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 결핍을 치유하시기 위해 율법과 성막을 주시고,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을 차례로 보내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다시 충만해지기 위해서는 율법과 성막, 세례 요한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며,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이 위대한 구속의 여정을 모두 진행하고 성취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므로 그분의 영광은 최고의 영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졌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율법은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는 육의 법입니다. 반면 은혜와 진리는 하늘에 속한 법입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물세례와 성령세례 후에 오는 선물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목적은 사람들에게 바로 이 은혜와 진리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는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 범죄한 인간들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렇게 나타나신 목적은 사람들이 육신 이전의 로고스(λονοϛ) 말씀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범죄한 인간이 주님의 죽음과 연합하는 물세례를 완성하셨습니다. 물세례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과 예수 그리스도가 완벽하게 연합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이 연합은 성령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이 연합은 완벽한 하나 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도의 연합은 과거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연합을 초월하는 영적인 완벽한 연합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통해 새로 탄생한 ‘살려주는 영’이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에는 예전의 혼과 육체를 그대로 입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성도들은 때때로 예수 그리스도와 완벽하게 연합되었다는 자신의 정체성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이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성만찬’이라는 의식을 만드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성만찬을 계속 기념하라고 하셨으며, 육체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임을 기억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것은 깊은 영적 상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곧 영의 살과 피, 즉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을 뜻합니다. 육적인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 로고스의 말씀을 기억하고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로고스(λονοϛ)의 말씀이 삶의 중심이 되어 혼과 육체가 그 말씀을 따르게 되면, 그의 혼과 육체 또한 ‘살려주는 영’의 옷이 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 그러면 새로운 피조물인 그의 혼과 육체 역시 영적인 성격을 띠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혼과 육을 ‘의의 병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이때 정체성의 완전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의의 병기가 된 육체도 영의 지배를 받으므로 그가 먹는 육적 음식조차 곧 영의 음식이 되는 신비가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념하라고 하신 성만찬의 완벽한 성취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로고스의 말씀을 기억하는 이 완벽한 성만찬은 주님과 제자 사이의 완벽한 연합을 이룹니다. 이는 영원히 분리될 수 없는 영적 결합입니다. 제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제자들 안에 거하게 되는 완전한 하나 됨의 상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위대한 구속의 역사를 통해 성취하고자 하신 것이 바로 성도들과의 이 완벽한 연합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품속에 계시던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신 궁극적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 제자들의 정체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유한 진정한 생명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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