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로고스 말씀과 생명의 나라 창조(요1:1-8)
“1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6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7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말씀’은 헬라어로 ‘λονοϛ(로고스)’라 하며, 이는 모든 존재 세계가 운영되는 근본 원리를 의미합니다. 본래 이 ‘λονοϛ(로고스)’라는 단어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사용하던 용어였습니다. 당시 철학자들은 만물이 특정한 원리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했으며, 사도 요한은 이 단어를 차용하여 육적 세계와 영적 세계가 운영되는 원리를 설명하였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육적 세계는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에 의해 운영되는데, 그 운영의 주체가 바로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며,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영적·육적 존재물들의 세계를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소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분은 본질적으로 말씀이시며 모든 존재물의 운영 원리인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철학자들이 그토록 찾고자 갈망했던 진리가 바로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계셨으며,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 천지를 창조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빛이 있으라”라고 발하시면 그 빛은 하나님이 무한한 지식과 지혜로 설계하신 그대로 물질세계에 나타나야 합니다. 즉, 무에서 유가 창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에서 유가 나타나게 하는 근본 원리와 법칙이 바로 로고스의 말씀이며, 그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러한 말씀의 원리로 빛이 나타날 때, 실제로 빛을 실재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한마음으로 천지를 창조하셨으며, 그 중심에는 로고스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습니다.
모든 만물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창조의 속성이 있음을 뜻하며, 이 속성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절대적인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천지, 즉 ‘에레츠(erets)’를 창조하셨습니다. 에레츠는 물리적인 창조물을 뜻하며, 이는 영적 세계 외에 물리적 세계 또한 그분이 창조하셨음을 의미합니다. 만물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은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물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 아래 창조되었음을 내포합니다.
창조된 영적 존재물 중 하나인 마귀가 창조 목적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에레츠의 세계를 창조하시고 그중 인간에게 특별한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므로 본능적으로 인간을 사랑하셨으나, 마귀는 인간을 유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함으로써 자신의 악한 속성을 닮게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의 창조물인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속의 역사를 진행하셨습니다. 영이신 그분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마귀가 초래한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한 인간의 영을 ‘살려주는 영’으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부활의 몸을 입을 수 있는 길을 여셨고, 주님 스스로도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영이신 그분께서 인간이 직접 만질 수 있는 실재적인 부활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이제 부활하신 주님과 자유롭게 교제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사건 이후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명하셨고, 실제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몸으로 제자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며 그들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 나가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창조의 속성을 가지신 그분은 제자들과 함께 이전과는 다른 차원, 즉 더 높은 차원의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바로 ‘생명의 나라’입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어 새로운 생명 나라의 창조를 출발시키신 것입니다. 이 나라는 죽은 자들을 다시 살려내는 역사를 통해 창조되며, 그 창조의 중심에는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로고스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주시어 새로운 차원의 창조에 동참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생명 나라 창조의 핵심입니다. 말씀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생명이 나타나는데, 이 생명은 첫 사람 아담의 생명과는 다른 ‘살려주는 생명’의 속성을 가집니다. 즉,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내는 권능입니다. 아담에게 주어진 생명은 혼과 육체가 살아가는 ‘생령’의 생명이었습니다. 당시 에덴에는 죽음이 없었으므로 단순히 생존하는 생명이었으나, 범죄 이후 죽음이 들어오자 그 죽음에서 살려내는 생명이 절실해졌습니다. 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살려주는 영’을 지닌 둘째 아담으로 오셨습니다. 제자들 안에 살려주는 영을 탄생시키시고 성령을 보내시어, 그 영이 생명의 활동을 활기차게 수행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성령이 임했을 때 제자들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구약 성경의 기록된 말씀이 열린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말씀의 세계가 열렸습니다. 성령을 받기 전의 기록된 말씀은 단순한 육적 지식에 불과했으며, 그 안에서 참된 생명을 발견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자 그들은 기록된 말씀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 즉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로고스의 말씀이 밝히 보이자 비로소 그들에게 생명의 나라 건설이 시작된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이런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의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말씀을 단순히 하나님만 믿으라는 명령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성적인 이해에 머무는 육적 지식입니다. 그 안에는 생명이 있는 로고스나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성막의 제사와 연결하여 이해할 때 진정한 뜻이 드러납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우상숭배를 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죄를 지었을 때 즉시 성막의 제사에 참여하여 죄를 전가해야 한다는 복음적 원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존재이므로 거듭 죄를 짓게 되며, 그때마다 죄 사함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이를 깨달을 때 비로소 자신에게 메시아가 절실히 필요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육적인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며 하나님을 찾게 될 때, 성령께서는 바로 이러한 참된 진리를 제자들에게 알려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 숨 쉬는 로고스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깨달아지면 ‘살려주는 생명’이 솟아나 타인에게 흘러가고 그들을 살리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따라서 말씀 안의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 됩니다. 모든 인간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육적인 ‘생령’의 생명만 가지고 있을 뿐, ‘살려주는 영’의 생명은 소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생령의 생명은 인간이 육신이 된 이후 120세라는 한계 속에 갇혀 있으며, 각종 사고와 스트레스로 인해 일찍 소멸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살려주는 영의 생명을 받으면 죽어 있던 기능들이 살아나는 속성이 생깁니다. 질병이나 장애가 치유되는 역사는 바로 이 생명력 때문입니다. 생령의 생명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속성이 없으므로 근본적인 치유를 이룰 수 없으나, 살려주는 영의 생명력은 죽은 것을 살리는 창조적 권능을 가집니다. 이는 마치 마른 지팡이였던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생명은 죽은 자들에게 빛이 됩니다. 인간의 이성은 인지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의 영은 죽음에서 살려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습니다. 오직 말씀 안의 생명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으므로 이 생명은 참된 빛이 됩니다. 하지만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인간의 이성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학문과 이론에 갇힌 이성은 영의 외침을 듣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이 생명이 사람 안에 들어가면 그를 거듭나게 하며 영적 결박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빛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광야의 선지자 세례 요한을 보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 빛을 증언하며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물세례는 인간의 육적 삶을 물속에 장사지내는 상징적 의식입니다. 물에서 나올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자신의 옛 자아를 죽여야만 참된 빛을 볼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어둠 속의 세상 사람들이 빛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에 앞서 세례 요한을 등장시킨 이유는, λονοϛ(로고스)의 말씀 안의 생명을 보기 위해 반드시 물세례(회개)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은 물리적 시력이 아닌 내면의 영적 시력으로 보는 것입니다. 내면을 청소하기 위해 자신의 세상적 삶을 장사지내고 방향을 예수께로 돌리는 회개가 필수적입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로소 완성됩니다. 당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육적 삶이 완전히 장사지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되는 과정이었으며, 십자가 죽음과 연합할 때 비로소 완성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세례를 받은 자들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이 모두 죽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통과하여 죽음을 경험한 자들은 이제 성령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들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세례를 받을 때 비로소 새 영인 ‘살려주는 영’이 탄생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비밀입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이 위대한 구원 계획을 창조의 중심이신 로고스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셨습니다.
이제 로고스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각 제자들 속에 거하시며 그분의 생명 나라를 창조해 나가십니다. 제자들에게 말씀을 주어 그들 자신 또한 말씀이 되게 하시고, 그들과 동역하여 생명의 역사를 써 내려가십니다. 이 생명의 나라는 훗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한 후 영원히 주와 함께 거하게 될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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