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2 (눅24:24-35)
“24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화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갈릴리 여인들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소식을 들었고,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서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이 없음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야기하면서도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더디 믿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며, 모세와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구약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셨습니다. 모세의 글은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포함합니다. 이 글들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창세기의 여자의 후손, 아브라함의 모리아산 제사, 광야의 놋뱀, 이사야 53장과 다니엘 7장의 내용 등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 고난을 받아야 하며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을 설명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관해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에 대해서는 깊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범죄하며 발생한 문제들을 십자가 죽음을 통해 해결하시고 부활하신, 인간 구속 역사의 성취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신 그 구속의 완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이 지닌 의미를 실감 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범죄하기 전의 삼위일체 하나님과 범죄한 후의 삼위일체 하나님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범죄하기 전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본질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본래의 성품대로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범죄 후 하나님의 사랑은 물리적인 세계에까지 구체적으로 나타납니다. 인간이 범죄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은 자동으로 사람들에게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은 곧 '여자의 후손' 계획을 통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으로 실행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바로 그 하나님 사랑의 완성입니다. 이를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상은 범죄 전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본래도 영광스러운 분이었으나, 고난을 통해 구속사를 완성하신 그 영광은 완전한 사랑의 영광입니다.
범죄 전의 사람은 생령이었습니다. 사랑의 개념을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사랑의 본능대로 살아가는 존재였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았을 때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그런 사랑입니다. 이 사랑도 위대합니다. 하지만 범죄 후 사람은 그 사랑을 잃어버렸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시 그 사랑을 회복합니다. 이 회복된 사랑은 생령의 사랑을 넘어서는 '살려주는 영'의 사랑입니다. 본능적으로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본능이 십자가를 통과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전달되어 그 사랑을 펼치게 하셨습니다. 엠마오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영광은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모든 사람이 살려주는 영의 사랑을 깨닫고, 그들도 그 영광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광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의 영광이 됩니다. 십자가를 통과한 하나님의 아들들도 그 영광에 동참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로 그 영광에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에게 고난과 영광을 설명하실 때 제자들의 마음은 뜨거워졌습니다.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말씀이 너무나 귀했으므로 계속해서 그분 곁에서 말씀을 듣고 싶었습니다. 엠마오에 다다를 때까지 그들의 마음은 계속 뜨거웠습니다. 그분은 길을 더 가려 하셨으나, 제자들은 그 뜨거움 때문에 강권하여 함께 머물다 가시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분의 이야기를 밤새도록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 성경의 말씀을 상세하고 명쾌하게 풀어주셨으므로 계속해서 듣기를 원했습니다.
이 시대에도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마음이 뜨거워져 그분과 함께하고 싶은 열망을 가진 이들이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됩니다. 말씀을 간절히 듣고자 하는 자들은 결국 그 말씀을 소유하게 됩니다. 두 제자가 주님을 강권한 것처럼, 이 시대에도 말씀이 그리워 온 마음으로 모이고 기록된 말씀을 펼치며 기도하는 자들이 그 말씀을 차지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큰 소리를 치면서 자기의 말을 들으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도를 전달하기 위해 사람들과 다투지도 아니하십니다. 그분의 소리가 거리에 들리게 하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12:19). 예수 그리스도는 조용히 세상을 지나가신다는 말입니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도 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을 기록된 말씀으로 설명하시고 지나가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두 제자가 강권하여 함께 유하자고 하였습니다. 그 강권하는 자들의 말을 들어주시고 그곳에 머무시면서 그들의 영적 눈을 열어 주셨습니다. 강권하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 즉 말씀을 차지할 것입니다.
말씀을 차지한다는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정탐꾼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보았을 때 그곳을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축복의 땅이라고 믿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했을 때 자신들이 정탐한 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이 두 정탐꾼처럼 장차 나타날 하나님 나라의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가나안 땅은 사람들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만 제대로 받아도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할 수 있습니다. 부활 후 갈릴리에서 제자들이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는 주님의 말씀 하나를 듣고 153마리의 큰 물고기를 잡았듯이, 그 말씀 하나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것입니다. 말씀 하나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를 제자들이 잡은 물고기를 통해 알려주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는 약속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받으면 그 말씀이 물고기를 낚듯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받아서 사람들의 마음을 정복한 제자들은 하늘나라에서 그 정복한 그 영적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받는 것은 여호수아와 갈렙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엠마오 제자들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머무시는 곳에 들어갔을 때,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축사하시고 나누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먹고 눈이 밝아져 비로소 부활하신 그분을 알아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축사하신 떡은 물리적인 떡, 즉 세속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떡은 주님이 축사하신 후에 신령한 떡이 되었습니다. 영의 눈을 열어주는 떡이 된 것입니다. 살려주는 영을 가진 존재들은 이와 같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축사하여 영적인 것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것이 살려주는 영의 속성이며, 모든 것을 살아나게 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영의 말씀을 물리적인 성경책 속에 숨겨 두셨습니다. 따라서 성경책 자체는 물리적인 사물입니다. 그 속에 담긴 영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먼저 기록된 글을 읽어야 합니다.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지적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 글자를 배우고 읽고 쓰는 법을 익히는 것입니다. 공부를 하는 것은 성경 말씀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단계입니다. 글자로 된 성경을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할 정도가 되면 비로소 영적인 단계로 진입합니다. 육적인 단계를 넘어 영적인 단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 단계는 머리로 이해한 내용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달라고 성령님께 간구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성령님이 전적으로 주관하시며, 그 비밀을 푸는 열쇠 또한 성령님입니다.
이 시대에는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물리적인 말씀을 축사하여 영적인 말씀으로 변화시키십니다. 물리적인 글자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은 찾고 구하며 두드리는 자들에게 성령님이 열어 주십니다. 그렇게 하여 그 뜻을 깨닫게 되면, 단순한 글자였던 것이 신령한 말씀이 되어 우리 안에서 살아나 죽은 것을 살려냅니다. 마치 축사한 떡처럼 사람들의 영적 눈을 열어주고, 무생물에 생명을 불어넣으며 만물을 새롭게 합니다.
제자들이 말씀을 묵상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것과 같습니다. 물리적인 성경 말씀을 영적인 말씀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입니다. 이는 오직 성령의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오늘 말씀을 펼쳐 내용을 파악하고 계속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며 두드리면, 성령님이 그 뜻을 밝히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 말씀은 살아있는 영의 말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축복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을 통해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면 그 사람 자체가 축사된 것과 같습니다. 그를 축사함으로써 세속적인 사람에서 신령한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사람에게 참된 생명이 들어갔다는 의미이며, 그 속에 성령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에게도 모든 것을 축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성령의 사람이 사물을 축사하면 그 사물은 거룩하게 되어 생명력이 그 속에 깃들고, 그 사물을 통해 생명력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의 손수건을 병자들에게 얹었을 때 병이 떠나간 것이 바로 그런 원리입니다. 성령의 사람에게 축사의 권한이 주어졌을 때, 그것으로 사람을 신령하게 만드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일입니다. 묵상한 말씀을 전하는 것은 곧 세속적인 사람을 축사하여 신령한 사람으로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보내실 때 반드시 말씀을 주어 보내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숨겨진 물리적 말씀은 성령님이 그들 안에 임하셔야만 비로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말씀을 주시기 위해 성령을 받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매일 숨겨진 말씀을 받으며 세상으로 보냄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매일 새롭습니다. 그 새로운 말씀을 받을 때 보냄을 받게 됩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은 맹인은 오늘날의 제자들을 상징합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으로, 제자들이 그곳에서 눈을 씻고 영의 눈을 뜨면 보냄을 받습니다. 매일 씻는 자는 매일 보냄을 받습니다.
엠마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축사된 떡을 먹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영적인 눈이 열린 것입니다. 그제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영의 눈이 열렸다면 더 이상 육안으로 보이는 부활의 형상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형상은 영의 것을 보지 못하는 육적인 사람들의 수준에 맞추어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제 영의 눈으로 그리스도를 보게 되었다면 더 이상 외적인 형상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처음에는 부활 소식을 소문으로만 들었습니다. 그것만으로는 변화되지 못했기에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향했습니다. 이는 희망을 잃은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고, 성경을 통해 고난과 영광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때 마음이 뜨거워졌지만 여전히 주님을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 그 말씀을 들려준 분과 함께하고 싶어 강권하였고, 주님이 떡을 축사하여 주셨을 때 비로소 영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즉시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영의 눈이 열려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되고 부활의 세계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새 시대에 대한 기대를 품고 예루살렘으로 향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열한 제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곳에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들이 이미 모여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은 다시 열한 제자를 중심으로 모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실 때 흩어졌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며 다시 하나가 된 것입니다. 이는 절망적인 삶이 희망찬 삶으로 바뀐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희망은 새로운 차원의 희망입니다. 육적인 희망이 아닌 영적인 희망이며, 영원히 시들지 않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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