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눅7:27-35)
“27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28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29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30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31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32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35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말라기 3장 1절의 말씀에 나타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사자를 세례 요한이라고 말씀하셨다. 메시아가 어디로 가는데 세례 요한이 먼저 와서 그분이 가시는 길을 준비하여야 하는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오셔서 제1차로 십자가를 통과해 가신다. 그 십자가를 통과하신 후 제2차로 사람들 속에 들어오셔서 사람들 속에서 그분의 길을 가신다. 사람들이 육안으로 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메시아이지만 그들이 볼 수 없는 메시아이다. 제자들도 그분을 참으로 보지는 못했다. 그분을 참으로 볼 수 있는 때는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통해서이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세례이다. 메시아가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 속에 들어오셔서 그 사람들과 함께 잘 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세례이다. 따라서 물세례는 하나의 형식적 의식이다. 물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의 육적 삶을 물속에 장사지내는 것으로 회개하는 것이다. 이는 곧 세속적 삶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에게 인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 쳐다볼 때 진정한 물세례의 효력이 발생한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넌 것과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을 때 애굽의 종에서부터 완전한 해방이 선포된 것처럼 효력이 발생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는 애굽으로 돌아가 종이 될 수 없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본 자들은 더는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의 종이 될 수 없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된 자들에게는 성령세례가 주어진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를 통과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되지만, 그리스도를 보지는 못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때는 성령세례가 각자에게 임할 때이다. 제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3년 동안 같이 다녔지만, 그분을 진정으로 보지 못했다.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세례가 제자들에게 임하였을 때 진정으로 그분을 보게 된다. 그래서 베드로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 참 그리스도를 보고 설교했을 때 3,000명이 구원받는 일이 일어났다. 베드로는 그때 비로소 참 메시아를 본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세례와 함께 베드로 속으로 들어가셨고 베드로는 그 속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신 그분을 기록된 말씀(요엘2:28, 시편16:8, 시편110:1)을 통해 소개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에서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16:28)”라는 말씀은 곧 자신들 속에 들어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것을 보고 구약성경에서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다. 그는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 말씀이 해석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다. 그것이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법이다. 성령님이 사람들에게 임하신 것은 바로 그 말씀이 해석되도록 하여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육으로 존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알려주는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사람과 같은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과하신 후 세례 요한의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셔서 그분의 길을 가신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사람들을 십자가로 인도하여 성령세례를 받도록 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를 받은 후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속에 들어가셨을 때 그분의 가시는 길을 준비하시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각 사람 속으로 들어오시는 것이었다. 각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그분의 길을 그 사람 속에서 가신다. 물세례는 그분이 우리 속에서 그분의 길을 잘 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자신이 십자가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는 길을 방해하는 자는 죽은 자아이다. 그래서 물세례는 육체가 죽을 때까지 기억하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사람들에게 물세례를 주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하는 직분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속에 들어가셨을 때 자신 겉사람이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각 사람 속에서 잘 가실 수 있도록 준비하는 직분을 받았다. 그 직분이 선지자들 가운데 최고의 직분이었다. 그래서 여자가 낳은 자 중 가장 큰 자였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작은 자들도 세례 요한보다 큰 것은 하늘나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그 직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직접 죽은 자를 살리는 직분이기 때문이다.
33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34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요한의 물세례를 받았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된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는 물세례를 받지 않았다. 하나님이 뜻을 저버리는 행위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도되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볼 수 없었다. 자기들의 성경 지식으로 세상을 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판단하였다. 그들은 자기의 생각으로 세상을 보았다. 이는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의 내면에도 이런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와 같은 생각이 존재한다. 말씀을 잘 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런 의식이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높이는 생각이다. 이는 마귀의 생각이다.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다.
성경의 말씀을 깨달았은데 왜 나에게는 이런 비교하는 생각이 나타나는가? 그것이 육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그래서 기도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이런 의식이 있다는 것을 하셨기 때문에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의 제자된 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생각지 말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하셨다. 자신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는 길을 평탄하게 하는 삶을 살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지 말고 첩경을 가실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는 자의 삶이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의 삶은 자기가 중심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물세례를 받지 않았으므로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선생이 되기를 좋아했고, 존경받기를 원했다. 그들은 물세례를 받지 않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실 수 없었다.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가실 수 없었으므로 그들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는 성취될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이름대로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 들어가셔서 그분의 길, 즉 구원의 길을 가신다. 그 구원의 길을 잘 가실 수 있도록 하면 된다. 우리의 자아가 나의 의식을 점령하지 않고 성령의 생각이 나의 의식을 점령하도록 하면 된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은 영에서부터 오는 생각이 그들의 의식에 채울 수 없었다. 영의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면 사람에게는 살려주는 영이 탄생한다. 그 살려주는 영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그의 영에서 생각이 나와 그의 혼의 영역이 의식을 점령한다. 그런 자들의 의식은 영의 의식이다. 이는 생명과 평안의 의식이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 자비와 양선, 온유, 절제, 오래 참음, 충성 의식이다. 영의 의식이 나를 점령하면 범사가 잘 되는 일이 일어난다. 인생에서 실패가 그때부터 없어진다.
35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이 구절은 지혜는 그것의 결과물로 그것의 옳음을 인정받는다는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지혜의 길을 가는 자들은 그것의 결과물이 그에게서 나타난다. 이것은 공식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의 길을 가면 그 지혜를 그것의 산물을 창조한다. 그 결과물이 그 지혜의 옳고 그름을 인정한다.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이 자신의 지혜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주장은 아무 의미가 없는 지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가운데 들어오시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 세상에서 구원이라는 이름의 속성대로 사시는 것이었다.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교통하면서 우리와 한마음이 되어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을 통해 출발하셨던 구속 역사의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 가운데 들어오셔서 그 사람들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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