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유대인의 안식일 법과 참 안식(눅6:1-11)

관리자님 | 2024.06.02 10:09 | 조회 1381

27. 유대인의 안식일 법과 참 안식(6:1-11)

 

1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2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4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5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6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7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8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9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10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11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다. 이는 유대인의 안식일 법을 범한 것이다. 유대인이 만든 안식일 법은 안식일에 손을 비비는 행위는 타작하는 행위로 본다. 그래서 타작이라는 일을 한 것으로 보므로 안식일을 범하였다고 판단한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라는 안식일 법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을 정의하는 법을 만들었다. 하나님이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안식일에 하나님을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사람이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집중할 수 없다. 그래서 일주일에 6일간은 일에 집중하되 하루는 하나님께 집중하라는 의미로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고 하셨다. 특히 안식일에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신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안식일을 올바로 지키는 것은 안식일에는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죄를 범하여 하나님을 스스로 알 수 없는 존재가 된 사람에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사람들에게 맞게 주셨다. 그것이 율법이다. 원죄로 인해 죄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이 없었던 사람에게 율법을 주셔서 빠져나갈 수 있는 실낱같은 한 길을 주셨다. 안식일 법도 그 법 중의 하나이다. 원죄가 있는 사람은 그대로 두면 짐승 같은 삶을 산다. 안식일, 즉 일주일에 한 번은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기억하여야만 하나님에게서 끊어지지 않는다. 안식일 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는 법이다. 그래서 일하지 말고 일주일이 한번은 하나님께 집중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원죄가 있는 사람은 일해야만 소산을 먹을 수 있는 법 때문에 일해야 하지만 일주일에 하루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데 집중하기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것이 안식일 법을 지키라고 하신 하나님의 올바른 뜻이다. 하나님은 원죄가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차원으로 끌어 올리기 위한 법을 사람에게 주셨다. 원죄가 있는 사람에게 맞춤형으로 주신 원초적인 법이 율법이다. 그 율법 속에 안식일 법도 포함되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법을 사람에게 주신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이 왜곡시킨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고 고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을 통해 그분께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을 바꾸어 그리스도와 같은 차원으로 끌어 올리려는 법을 알려주시려고 세상에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셨다. 무한대의 차원에 존재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육적 차원에 존재하는 원죄를 가진 자들의 근본을 바꾸어 그분과 같은 차원으로 끌어올리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그 무한대의 차원의 그리스도를 율법을 통해 그들이 만든 교리인 육적 차원의 육적 지식 속에 가두려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대 차원의 영적 지식을 따르시는 분인데 바리새인들은 육적 차원의 혼의 지식으로 그분을 판단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대 차원의 영적 지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주시기 위해 사람과 같은 육적 모양을 하시고 세상에 오셨다. 그래서 그 무한대 차원으로 들어가는 문을 만드셨다. 그 문이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적 차원의 사람들이 무한대의 차원으로 들어가는 진리의 문, 영의 문, 지식의 문이다. 사람이 그 문으로 들어가면 그도 그리스도와 같은 차원이 되어 세상 법을 초월하는 존재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이적이 저절로 나타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의 능력의 삶이 일상이 된다. 삼차원의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무한대 차원의 영적 지식의 일이 일상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바로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이다. 이런 영적 지식의 일이 본능이 되는 삶이 그들에게 나타난다.

 

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배고플 때 제사장들만이 먹는 진설병을 먹었던 이야기를 하셨다. 이는 율법은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이 배고플 때는 법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 배고픔의 배를 채워주는 것이 율법의 근본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밀밭에서 밀을 손으로 비벼 먹은 것은,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진설병을 먹은 것과 같다는 것이다. 그 제자들의 행위는 오히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으므로 안식일을 범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지킨 자들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의 안식일 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육적 차원의 지식의 법으로 무한대의 차원의 지식을 굴복시키려 한 법이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무한대 차원의 영적 지식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우리 속에 무한대 차원의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온다. 그런데 우리의 혼과 육은 그 무한대 차원의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속에서 바리새인들처럼 나의 법에 복종하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굴복시킨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육적 차원의 성경 지식의 법으로 이 바리새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굴복시키려고 한다. 안식일에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들을 고발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다. 우리의 육적 지식으로 무한대의 영적 지식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굴복하라고 하고 있다. 그것이 교만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안식일 법을 사람에게 주신 목적을 생각하면 된다.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그것만 하면 된다.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식, 즉 무한대 차원의 영적 지식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육이 먹을 것을 위해 일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영의 음식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그 무한대의 영적 지식으로 일하기 시작하신다. 육적 차원의 지식으로 우리 속의 예수 그리스도를 판단하지 말고 그분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도록 하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그분께 집중하는 것이다. 안식일 법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대로 우리의 일을 잠시 멈추고 그분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분은 우리 속에서 살아서 우리의 혼과 육체를 통해 일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참으로 살려주는 자가 된다. 만물을 소성시키는 자가 된다. 무한대 차원의 일이 나에게서 나타나는 것을 목격한다. 물 위를 걷는 것을 목격하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목격한다.

 

10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안식일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참으로 안식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지키려 하였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에 당신을 나타내셨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그분이 나타나면 저절로 무질서는 사라진다. 안식일에는 손 마른 사람의 무질서는 사라져야만 한다. 그래서 손 마른 사람은 회복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안식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복음의 시대 안식일은 언제인가? 복음의 시대는 특별히 안식일이 없다. 주일이 안식일이 아니다. 복음의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언제나 안식일의 주인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다. 무한대의 영적 지식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자들은 안식하는 자들이다. 쉬는 자들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은 다 내게로 오라고 하셨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자들은 쉬는 자들이다. 하나님만 기억하면서 쉬는 자들이다. 그러면 우리 속의 예수 그리스도가 무질서를 질서 있게 회복하신다.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회복시키신 것처럼 회복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들어가면 질서가 회복된다.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회복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무한대의 차원의 영적 지식이신 로고스로 인간의 육적 코드에 맞추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다. 이는 육적 사람 가운데 영적 지식인 로고스를 심을 수 있는 진리와 생명의 길을 여시고 사람들이 그 길로 가도록 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인간이 가야만 하는 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본래 영적 차원에 계신 분이 육이 차원의 오셔서 육의 차원에 있는 자들이 그 차원에서 영적 무한대의 차원을 실행할 수 있는 진리의 길을 여셨다. 그것은 곧 육체를 가진 사람 속에 살려주는 영을 심으신 것이다. 그 살려주는 영이 활성화되도록 하셔서 혼과 육체라는 육적 차원을 삼키면서 육적 세상에 생명의 차원, 영생의 차원, 즉 무한대의 영적 지식의 차원이 나타나도록 하셨다. 로고스가 겉으로 보이는 육적 세상에 실행되도록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도, 즉 무한대의 영적 차원의 세계가 펼쳐지면 육적 차원의 지식을 바로 부서져서 가루가 된다. 유대인들이 만든 안식일 법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영적 차원의 무한대 차원 지식이 나타나자 바로 부서졌다. 유대인들의 안식일 법은 육적 차원의 교리, 즉 지식이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도 앞에서 무너졌다. 유대인의 안식일 법이 산산조각이 나서 가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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