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39. 작별인사(고전16:13-24)

관리자님 | 2017.02.14 10:26 | 조회 367

39. 작별인사(고전16:13-24)

 

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14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15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16이같은 사람들과 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에게 순종하라 17내가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온 것을 기뻐하노니 그들이 너희의 부족한 것을 채웠음이라 18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19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20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21나 바울은 친필로 너희에게 문안하노니 22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23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와 함께 하고 24나의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무리와 함께 할지어다

 

1. 스데바나의 집은 아가야 지역의 첫 열매라고 합니다. 아마도 바울이 아가야 지역인 고린도에 들어갔을 때 스데바나의 집이 처음으로 예수님을 영접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바울은 편지 마지막에 스데바나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스데바나의 영적 속성이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스데바나가 성도들을 섬기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의 의미는 스데바나 자신을 성도들을 섬기는데 바쳤다는 것입니다. 스데바나는 그 섬기는 일에 중독되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스데바나와 같이 완전히 바뀐 사람들은 그의 속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작동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말씀의 감동으로 그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영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영의 독특한 속성이 세상 밖으로 표출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재정에 억매이지도 아니하고, 자유로운 자들입니다. 그래서 스데바나는 브드나도와 아가이고와 함께 바울의 부족한 것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그들의 행위가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런 사람을 알아주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을 알아주라는 것의 의미는 당시의 고린도교회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까요?

 

2. 바울은 마지막 인사말을 씁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고린도교회에 문안한다고 합니다. 당시 아시아에는 에베소교회 외에도 몇몇 교회들이 있었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고린도전서를 쓰는 당시 아시아에는 아볼로, 브리스가와 아굴라 등의 사람들이 있었고, 고린도교회에는 이런 지도자들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황 하에서 4개 파로 갈라지고, 여러 가지 고린도교회의 문제들로 인한 질서가 없는 상태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스데바나와 같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중심적인 인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볼로는 고린도교회에 현 상태로서는 전혀 가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그가 풀어야 할 숙제가 있는 것으로도 추측됩니다. 이런 상황 하에 있었던 고린도교회는 말씀에 굳건히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부재로 인해 여러 문제가 표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당시에는 기록된 말씀이 없었기 때문에 무질서가 나타나기 쉬운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기록된 말씀이 있는 시대이며, 누구든지 말씀을 알고 싶어서 말씀 앞에 나가기만 하면 말씀이 알려지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세계는 두리뭉실한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정확하고 세밀한 세계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두리뭉실하게 알아서는 사실상 그 말씀이 그에게 작동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세밀하고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 세계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경건의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그 경건의 훈련에는 자신의 자유의지가 발동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최고의 본성인 이 자유의지는 이런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이 자유의지는 우리들에게 왜 그렇게 좋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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