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1.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하시자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2절 이후에서 보면 나무에 무화과 열매가 없었던 이유는 무화과 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무화과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계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열매를 요청하신 것은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당신만의 행동 방식이 있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자연에는 그것이 움직여지는 법(질서)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에 구속되지 않으시고 다른 법속에서 행동하십니다. 그 것은 어떤 법일까요? 자연의 법과 예수님의 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법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자연법을 어떻게 보실까요?
2. 말라버린 무화과나무의 처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자연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무화과나무의 잘못은 예수님이 열매를 필요로 할 때 이를 제 때에 공급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어떤 사람들이 무화과나무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을까요? 무화과나무와 같은 처지는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3.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말씀의 위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일뿐 아니라 산을 바다로 옮길 수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믿음에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이 있고, 기도의 응답을 가져다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관점에서의 믿음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의심이라는 것 또한 기도 응답에 있어서 방해꾼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의심은 어디로부터 나올까요?
4. 본문은 또한 기도의 위대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믿는 다는 것은 구하는 것이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때에 이와 같은 믿음이 생길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왜 이와 같은 기도의 법을 알려주셨을까요?
1. 예수님은 여기에 구속되지 않으시고 다른 법속에서 행동하십니다. 그 것은 어떤 법일까요? 자연의 법과 예수님의 법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법속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자연법을 어떻게 보실까요?
2. 오늘날은 어떤 사람들이 무화과나무와 같은 처지가 될 수 있을까요? 무화과나무와 같은 처지는 어떤 상태를 의미할까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떨까요?
3. 믿음에는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믿음이 있고, 기도의 응답을 가져다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어떤 관점에서의 믿음을 말씀하는 것일까요? 의심이라는 것 또한 기도 응답에 있어서 방해꾼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의심은 어디로부터 나올까요?
4. 믿는 다는 것은 구하는 것이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때에 이와 같은 믿음이 생길까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이와 같은 “기도”의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왜 이와 같은 기도의 법을 알려주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