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눅5:1-11)

관리자님 | 2024.04.27 23:35 | 조회 38

22.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5:1-11)

 

1무리가 몰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2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3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떼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4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6그렇게 하니 고기를 잡은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7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그들이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8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9이는 자기 및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으로 말미암아 놀라고 10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영의 가르침이어서 많은 사람이 몰려와서 말씀을 들었다. 영의 가르침은 그 지식이 살이 있으므로 현실의 세계를 움직이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무리가 그 가르침을 듣고 계속 듣고 싶어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고 둘 중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 육지에서 조금 떨어지게 하신 다음 그 배 안에서 호숫가에 있는 자들에게 영의 가르침을 또 펼치셨다. 그 내용은 어떤 내용인지 본문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몬의 배에서 가르침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시몬은 우리가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지만 잡은 것이 없었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릴 것이라 말하고 그렇게 하니 심히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예수 그리스도와 시몬의 대화에서 시몬이 일상의 삶, 즉 혼의 생각으로 삶을 살았을 때와 예수 그리스도가 일러주신 말을 행하였을 때의 삶의 생산성에서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시몬은 자기 생각대로 밤새도록 수고하였으나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하시는 그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더니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이는 시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즉 영의 말을 따랐을 때 그는 가치가 있는 삶의 결과물을 얻었다. 이 이야기는 시몬 베드로의 삶의 결과물을 두 개를 비교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그가 그의 생각, 즉 혼의 생각을 따라 물고기를 잡는 일을 하였을 때는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였을 때 그는 그물이 찢어질 듯이 많은 물고기를 잡았다. 이는 베드로의 혼을 따른 삶과 영을 따른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례가 될 수 있다.

 

시몬 베드로가 영의 말을 따랐을 때 그 영의 말씀을 마음에 받아서 그것을 행하였을 때 그 말씀은 그에게 삶의 씨가 되어 그의 삶의 결과물을 창조하였다. 영의 말은 이와 같은 씨와 같아서 물리적인 세상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뿌려지고, 그 마음으로 행하면 그것이 그 행함의 결과물을 창조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의 생산성은 이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에서 잘 보여준다. 베드로는 육체로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하여 영의 말씀이 창조하는 결과물을 경험하였다. 이 시대는 어떻게 베드로가 듣는 것과 같은 말씀을 들을 수 있는가? 그것은 기록된 말씀을 통해 들을 수 있다. 기록된 말씀을 묵상하여 깨달음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이 우리의 혼에 전달되어 우리 마음이 무엇을 하여야 할지 알게 된다. 그러면 그것을 행하면 그것이 곧 영으로 행하는 것이다.

 

예컨대, 기록된 말씀에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니라라는 말씀이 있으면 그 말씀대로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된다. 그것을 그냥 단순히 행하면 된다. 그것을 내가 한 번 더 생각지 말고 그대로 영의 말대로 손을 얹으면 병은 낫는다. 그런데 사람은 그 병이 중병이거나, 내 생각에 고치기 힘든 병이라 생각하여 손을 얹어도 저 병은 낫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의 생각을 가지고 손을 얹는다면 그것은 내가 그 병을 환원시켜 나의 머리에서 생각한 병이 되므로 그 병은 실체가 아니라 나의 머릿속의 허상의 질병이 된다. 그 경우 그 질병은 내가 의심으로 나의 머리에서 만든 질병이므로 기도해도 낫지 않을 것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 안식 가운데 하나님과 영으로 대화할 때 단순히 영으로 물리적인 세상 존재물들을 이름을 그대로 지었다. 영으로 물리적인 세상에서 물리적 존재물의 속성을 알았으므로 그대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영의 사람들은 이같이 영의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기도하는 자들이다.

 

에덴동산에서 안식 가운데 하나님와 완벽하게 교제하였던 아담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서 그의 영과 혼과 육체에 문제가 나타났다. 영이 타락하였고, 혼에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그는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 최초의 문화이다. 이 문화가 그의 두려움을 가려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죽옷을 지어 주셨다. 그 가죽옷은 곧 제사를 의미한다. 타락한 자들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가죽옷을 입는 것이다. 곧 제사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범죄한 이후 타락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법이었다. 아담이 죄를 범한 후 그의 혼에 두려움이 찾아왔을 때 그는 세상의 물리적인 것들을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는 자기 자신에게 그것이 이가 되는지 해가 되는지를 따질 수밖에 없는 생각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아담은 죄를 범하기 이전처럼 존재물을 보고 영으로 생각지 않고, 혼으로 그것을 환원하여 그의 머릿속에서 판단하여 허상의 존재물을 만들어 내어 그 만들어낸 존재물을 실체로 생각하게 되었다. 죄를 범한 인간에게 찾아온 두려움은 무엇인가를 자기 머리로 자꾸 만들어내도록 하였다. 그것이 본능이 되었다. 근심, 걱정, 불안, 염려, 거짓말, 실패, 안된다는 생각, 탐욕, 음행, 호색 등과 같은 것들을 만들었다. 그래서 죄를 범한 인간은 이런 생각을 하는 자를 자기 자신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두려움을 가진 자에게 하나님은 가죽옷을 입혀주었다. 그것이 곧 구약시대의 제사이며 예배였다. 그런데 신약시대는 그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로 바뀌었다. 구약시대는 제사를 잘 드리면 열매를 맺었고, 신약시대는 영과 진리로 예배를 잘 드리면 열매를 맺는다. 그 열매는 곧 구원의 열매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창조한 구원의 열매이다. 따라서 그 열매가 있는 자들은 예수 이름의 속성을 가진 자들로 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자들이다. 그 이름을 사용하면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이 된다.

 

이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는 영의 세계를 모르는 인생의 허무함을 알려주고 있다. 세상에서 혼의 생각으로만 산 사람들의 허무함이다. 그들이 일평생 이룬 그의 삶의 결과물은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수고한 시몬 베드로와 같은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혼으로 일평생 하나님의 일을 하였다고 착각한 그리스도인들의 삶도 너무 큰 수고는 하였으나 결과물이 하나도 없는 삶이 될 것이다. 이 어리석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마음 밭에 영의 씨를 통한 결실이 하나도 없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음이 없는 자들의 삶이 이런 자들의 삶이다.

 

사람이 영의 가르침을 깨달으면 그에게 신비한 일이 일어난다. 그의 마음속에서 신비한 영적인 것들이 생수처럼 솟아난다. 사람의 마음이 신비한 것이 된다. 그 속에 신비한 생각이 솟아나 그것을 행하면 그것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일어난다. 그런 자들이 서 있는 그 장소는 곧 신비한 장소가 된다. 천국이 된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가 일러주신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배가 물에 잠길 정도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 이는 베드로가 말씀을 가지고 그것을 행한 그 배가 곧 천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그것을 보았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자기 자신이 죄인이니 자기를 떠나라고 말씀한 것이다. 베드로는 영의 말을 듣고 행함으로 천국을 경험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같이 영의 가르침을 듣고 천국을 창조하는 자들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바로 행동하였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자신의 머리로 환원하지 않았다.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았지만 잡지 못했으므로 오늘은 게네사렛 호수에 물고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냥 단순히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다. 그래서 영의 말씀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인 요한과 야고보를 영으로 보시고 그들에게 와서 영의 말씀으로 천국이 창조되는 것을 보여주셨다. 시몬 베드로에게는 이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시몬 베드로와 요한 야고보를 제자들로 부르려고 시몬 베드로에게 영의 말을 하셨고, 그것으로 인해 천국이 나타났다. 그 말씀을 직접 행한 시몬 베드로는 그곳에서 천국을 보았다. 그래서 그가 죄인이라고 고백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시몬 베드로에게 가서 그의 배에 올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하신 것은 곧 그와 그의 동업자 요한 야고보를 제자로 부르기 위함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회당에서 영의 가르침을 베푸시고 능력을 행하신 다음 곧 제자들을 부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으로 그 사람을 보고 제자들로 삼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가 영으로 사람을 보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속성을 보신다는 것이다. 예전에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영으로 존재물들의 속성을 보고 이름을 지어 준 것과 같다.

 

빌립이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을 받은 후 그의 친구 나다나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였다. 그때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그를 보셨다. 그래서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하셨다. 그러면서 나다나엘에게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볼 것이라 하셨다. 이는 세상에 참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야곱이 본 사닥다리와 천사들은 야곱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야곱의 사닥다리는 야곱의 집, 즉 하나님의 집으로 신약시대 하나님의 집의 예표였다. 그것은 때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가 나타났다. 그 예수 그리스도가 가는 곳이 하나님의 집, 즉 천국이 되고, 천국이 나타나게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는 곳은 하늘과 닿아 있는 사닥다리가 있는 곳이며, 이는 곧 하늘로 통하는 물리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 하나님의 집은 이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상속되어 우리 가운데 있다. 우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도 신비한 천국을 말씀으로 창조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말씀을 따라 그물을 내렸더니 수많은 물고기가 잡혔다. 시몬 베드로는 너무 놀라서 예수님께 자기를 떠나라고 하였고, 동업자 요한과 야고보도 놀랐다. 사람이 영의 말씀을 따라 행하면 그것의 결과물로 천국을 물리적으로 보게 된다. 이때 사람들은 그 물리적 천국을 직접 보았으므로 놀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었다. 이것이 전도이다. 혼을 따르던 시몬 베드로, 요한, 야고보가 바로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하였다.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쫓았다. 이는 곧 혼을 버리고 영을 따랐다는 것이다.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겠다는 그들의 결심이다.

 

베드로의 배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배에 올랐을 때 벧엘과 같은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 그 배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물리적인 천국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말씀했을 때 그 배와 그물과 그 배의 사람들은 모두 천국을 창조하는 자들이 되었다. 천국은 이같이 서로 섬기면서 순종함으로써 창조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이같은 말을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 ,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열매를 많이 맺어 그의 혼에서 구원의 속성이 나타날 때 그 소리를 발할 수 있다.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입는 것이다. 예수 이름을 사용할 자격자들이다. 이는 엘리사가 아람의 나아만 장군에게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는 말과 같은 말씀이다. 이같은 자들은 기도하면 응답이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아는 자들이다. 엘리사는 그의 혼이 성령충만으로 완전히 옷입은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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