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예수님의 어린시절과 아버지의 집(눅2:41-52)

관리자님 | 2024.02.17 18:31 | 조회 152

12. 예수님의 어린시절과 아버지의 집(2:41-52)

 

41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42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43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44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45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46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47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48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50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51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52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매년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가서 절기를 지켰다. 예수님이 12살 되던 해에도 관례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절기 지키고 돌아올 때 하룻길이 지난 후 예수님이 함께 일행 중에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어린 예수 그리스도가 예루살렘에 떨어져 홀로 남겨지신 것이다. 그래서 그 부모는 예수님을 찾으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을 찾은 지 사흘 후에 성전에서 율법 선생들과 대화하는 예수님을 만났다. 성전에서 율법 선생들에게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시는데 예수님의 지혜와 그 대답을 모두 놀랍게 여겼다. 이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어린 시절에 대하여 처음으로 알려주는 내용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12살 때 예루살렘의 기라성과 같은 율법 선생들과 대화가 될 정도의 지혜를 갖추고 있었다. 완전한 신이시며 인간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어린 시절에 율법에 능통하였다는 것을 알려 준다. 아직 공생애를 시작하지 않으셨지만, 하나님의 율법에 능통하셨다.

 

예수님은 12살인데 그의 부모와 떨어져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부모를 다시 만났을 때 나를 어찌 찾았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러면서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알지 못하였느냐고 하였다. 12살의 예수 그리스도는 부모와 떨어졌을 때의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시지만 범죄한 사람처럼 두려움과 형벌에 구속된 분이 아니셨다. 타락한 사람처럼 죄와 사망의 법에 의하여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시는 그런 분이 아니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셨으므로 사망도, 죄도, 두려움도, 질병도 없으셨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의 몸에 구속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에게는 질병과 죽음도 없으신 분이시다. 질병과 죽음이 사람에게 찾아온 것은 그들이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가 없으시므로 당연히 질병과 죽음도 없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 질병과 죽음이 찾아왔다면, 그것은 죄를 지은 자를 대신하여 질병과 죽음의 대가를 치르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겪으신 질병은 사람들의 질병을 위함이요, 또 죽음은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질병은 어떻게 찾아왔는가? 그것은 군병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채찍을 가지고 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에 나타난 상처이다. 그 상처는 사람들의 질병을 대신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죄를 범한 세상 사람들의 죽음을 대신하여 대가를 치르신 죽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 나온 자들은 질병과 죽음에서 해방되어야 할 존재들이다.

 

그 외에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겪으시는 고난과 가난은 죄를 범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고난과 가난을 대신한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겪는 고난과 가난을 겪을 필요가 없다. 단지,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감당할 고난은 자신의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죽이기 위한 훈련 가운데서 오는 고난뿐이다. 그런 고난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에서 오는 고난으로 영적 관점에서는 즐거운 고난이라 할 수 있다. 이사야 53장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53:5)”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렸고, 죄악 때문에 상하였고, 평화 때문에 징계를 받았고, 나음 때문에 채찍에 맞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은 바로 사람의 죄와 허물 때문이었다.

 

인간의 질병을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질병, 즉 채찍이 대신하였고, 인간의 죄로부터의 구원, 즉 영의 타락은 무엇이 그것을 대신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이 그것을 대신하였다. 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죽음과도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는 성령에 의하여 탄생한 육체로 사실상 영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간의 영적 죽음을 대신하여 죽었고, 예수 그리스도는 본체가 생명이므로 그 생명의 속성에 의하여 부활하셨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인간의 질병과 죄사함을 모두 성취하셨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 때문에 실행하신 구속의 역사가 나와 라는 사람과 관계가 되어 나에게 그와 같은 효력이 발생하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실패하는 것은 이 부분이다. 이런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계를 맺는 방법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도 들렸는데, 그 십자가에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출애굽 시대에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자들은 장대에 매단 놋뱀을 쳐다보라고 하는 모세의 말씀을 믿고 쳐다본 자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이 시대에도 그와 같이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면 자신의 영적 질병이 낫는다는 것을 믿고 쳐다보는 자들은 고침을 받는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기는 하지만 한 번만 쳐다보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을 때 자신의 가난, 고통, 질병, 근심, 걱정, 불안, 부정적 생각, 두려움 등과 같은 모든 것을 함께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은 믿지 못한다.

 

그러면 나의 육적인 모든 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사실을 믿는 믿음은 어떻게 나올까?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쳐다보는 것이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면 나와 그리스도가 하나의 의식으로 연결된다. 나와 그리스도와 연결되면 하나님 아버지와 성령님과도 함께 연결된다. 육체를 가진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 아버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의식이 같아지는 연결 끈이 생기면 그 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인 로고스의 말씀과 연결된다. 로고스의 말씀의 의식이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모든 자에게 그리스도의 본체인 로고스의 말씀이 창조하는 의식이 생긴다. 그 의식 가운데에는 믿음, 소망, 사랑이 있고,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의식이 가득 채워지기 위해서는 계속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라는 것이다. 계속 로고스 말씀의 의식이 공급되도록 하면 그 의식 가운데 생명이 있으니 생명력이 충만하게 된다. 그런 의식으로 채워질 때 앞에서 말한 타락한 인간의 본성 가난, 고통, 질병, 근심, 걱정, 불안, 부정적 생각, 두려움이 소멸된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는 방법이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따를지니라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끈은 세상의 육의 의식으로 연결된 끈과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끈은 생명의 끈이다. 살아있는 끈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 즉 부활의 능력이 공급되는 끈이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계속 쳐다보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을 소성시키는 근원적인 힘이 생겨난다.

 

49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찾아 헤매다가 사흘만에 만난 부모 요셉과 마리아에게 그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 알지 못하였느냐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성령이 그 내면에 임하시지 않았지만,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알려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외적으로 역사하였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육체에 임하였다는 것이다(사실상,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육체도 영의 속성이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육체는 본래 살려주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육체이다.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육체에 임하였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에 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임할 때 완전체가 된다. 그때 비로소 공생애를 출발시킬 수 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영에 임하시기까지 기다리셨다. 그러나 예수의 혼과 육체에는 성령이 임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인도하셨다. 이는 마치 구약의 선지자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과 같은 방식의 성령님이 임하신 것이다.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임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과 성령님은 완전히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영과도 하나가 된다. 완벽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된다. 그런 상태에서 공생애가 출발되는 것이다.

 

이는 육체를 가진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육체를 가진 사람의 영에 성령이 임하실 때 그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동참하게 된다.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라는 말씀이 성립된다. 그런데 육체를 가진 사람은 그 영이 타락되어 있다. 따라서 그 타락된 영이 완전히 죽고, 성령님에 의하여 탄생한 살려주는 영이 그에게 탄생 되어야만 성령님이 임하실 수 있다. 그것이 성령세례다. 사람은 반드시 성령세례를 받아야만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의 공생애를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성령님이 그의 살려주는 영에 임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그에게 본능적으로 전달된다. 하나님의 뜻이 그의 본능이 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사람이 다른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혼과 육체가 탄생할 때 성령에 의하여 탄생한 영이다. 혼과 육체가 영적 존재이다. 따라서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성령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에 임하실 때 그리스도의 영에서 본능적으로 나오는 하나님의 뜻이 그 육체의 혼과 육체와 일치한다. 완벽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혼과 육체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은 다르다. 사람이 물과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도 그에에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고 그 영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이지 그의 혼과 육체는 여전히 육체의 소욕이 존재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하는 것을 본다고 외쳤다. 사람에게는 두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늘의 생각을 내는 영의 사람과 육체의 생각을 내는 육의 사람이 한 육체 안에서 함께 산다. 갈라디아서 4장에서는 이 육체에 사는 사람을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육체를 따라 난 자와 다른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약속을 따라 난 자라고 하였다. 이 약속의 따라 난 자를 성령을 따라 난 자라고 하면서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고 하면서 그는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종의 아들을 내쫓을 수 있는가? 그것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 쳐다보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자들이 곧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할 수 있는 자이다. 그리스도를 쳐다보고 있으면 그와 생명의 피가 흘러가는 핏줄과 같은 것이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생명의 피가 우리에게 흐르게 되어 로고스의 말씀이 우리에게서 작동된다. 그것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면 그 생명의 핏줄이 그 사람들에게도 연결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들에게 들어가게 된다. 그 생명의 핏줄이 연결되어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생명력이 작동되면 그들의 의식이 본능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므로 믿음, 소망, 사랑이 저절로 나타나고 성령의 열매가 저절로 맺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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