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호적과 참 빛의 탄생(눅2:1-11)

관리자님 | 2024.01.20 17:07 | 조회 106

8. 호적과 참 빛의 탄생(2:1-11)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로마의 황제 아구스도가 호적을 하라고 명령을 내린 그 시점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다. 호적은 주민등록인데 그때 진정한 사람들의 참 주민등록의 근원이 되시는 천국인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 세상의 왕인 아구스도가 명령을 내린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고 예언하신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베들레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기 위하여 요셉과 마리아가 출산할 때쯤 호적하러 고향인 베들레헴에 돌아가게 하셨고, 그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시키셨다. 하나님의 철저한 계획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영적 관점에서 볼 때는 최고의 영적 사건으로 아브라함부터 시작된 육적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속의 삶의 목표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부터 참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가운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타락한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이신지 아신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이 제일 좋을 것인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셨다. 타락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빛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이스라엘 역사를 진행하시어 결국 요셉과 마리아를 통해 빛을 탄생시키셨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었으므로 베들레헴의 양치기들에게 천사들을 보내시어 기쁨의 좋는 소식을 전하셨다. 그 기쁨의 좋은 소식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부른다.

 

타락한 사람들은 자기가 어두움에 있으므로 자신이 어두움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스스로 빛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하나님이 그 빛을 주셔야만 비로소 그 빛을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빛을 인식할 때 비로소 어두움을 알게 된다. 그 빛을 인식할 때 자신이 어둠 속에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 자신의 삶 속에서 어둠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자신의 어두움을 빛으로 인식할 때 그 어두움은 물러가게 된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아담은 어두움이 되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춰주시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그 어둠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살 수밖에 없다. 그것이 타락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운명이다.

 

아담이 타락하기 전의 아담의 정체는 생령(Living Soul)이었다. 그때는 아담에게 사망이 없었으므로 생명이 있었다. 그래서 타락하기 전 아담에게는 생령이면 충분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령이었다. 그런데 아담이 타락하면서 아담에게 어둠이 찾아왔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모든 존재물의 속성을 알고 이름을 짓기까지 했던 그의 지혜가 없어졌고, 생령이 아니라 사망이 그의 속성이 되었다. 아담의 정체성은 생령에서 사망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생령이 사망이 된 이 아담을 치료하기 위해 둘째 아담인 살려주는 영(quickening spirit)을 보내셔야만 했다. 사망의 속성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아담에게 임시로 가죽옷을 입히시고, 살려주는 영을 보내실 것을 계획하셨다. 그래서 여자가 잉태의 수고를 담당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곧 살려주는 영을 잉태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그 살려주는 영을 보내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도록 하셨다. 그 살려주는 영의 탄생은 아담, 다윗, 이사야 등을 통해 계속 암시하셨고, 이사야를 통해서는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요셉과 마리아가 호적 하러 베들레헴에 갔을 때 그곳에서 탄생시키셨다. 그렇게 탄생하신 그 아들은 이름이 예수로 명명되고 그리스도로 칭함을 받으셨다. 그 살려주는 영은 타락한 사람들, 즉 사망의 속성을 가진 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주실 분이시기 때문이다. 생령에서 사망이 된 타락한 사람들에게는 그 사망에서 생명으로 바뀌게 할 수 있는 속성을 가진 살려주는 영이 필요했다. 그 살려주는 영으로 탄생하신 분이 곧 예수 그리스도시다. 살려주는 영은 그 본성 자체가 죽은 자를 살리는 속성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그 영을 받으면 사망의 속성에서 살려주는 영의 속성으로 자신이 바뀐다. 아담이 마귀의 육혹으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을 때 그의 속성이 생령에서 사망으로 바뀐 것처럼 살려주는 영을 마음으로 영접하면 그 영접하는 자들에게 살려주는 영이 탄생하여 사망의 속성에서 살려주는 영의 속성으로 바뀐다.

 

사망의 속성을 가진 자들에게 생명은 그들의 빛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다. 그 생명은 살려주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이 된다. 사람들이 예수의 생명을 받으면 그들에게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자녀가 된다. 이는 처음에 아담이 가졌던 존재물들의 근본 속성을 아는 그 지식과 지혜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빛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곧 생명의 자녀, 곧 하늘의 지식과 지혜를 가진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빛의 자녀는 그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는 것과 살려주는 영의 속성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의 호적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호적이 되고, 사망의 속성을 가진 자들을 살려주는 속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세상의 타락이 아니라 아담과 하와 개인의 타락이다. 인간의 타락은 각 개인이 어둠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빛의 탄생으로 그 빛이 각 개인의 어둠의 세계 속에서 빛을 비춘다는 것이다. 세상 전체를 비추는 외적인 빛이 아닌 각 개인의 내면을 비추는 빛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살려주는 영을 영접하면 그 속에 살려주는 영의 씨가 뿌려져서 그에게 살려주는 영이 탄생한다. 그 살려주는 영은 사람들의 빛의 근원이 된다. 즉 빛을 발하는 원동력을 가진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 살려주는 영은 곧 성전이다. 하늘의 빛이 솟아나는, 생명의 물이 솟아나는 성전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는 그 몸이 살려주는 영인 성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성전은 사람을 살려주는 생명의 물을 솟아나게 하는 근원이다. 그 성전이 왕성하게 가동되어 생명의 물이 솟아나면 그 이웃은 그 물을 먹고 그도 생명의 근원이 된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성전에는 불이 꺼져 성전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사람에게 영적 세계를 보는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였다. 이 눈이 밝을 때와 어두울 때는 영적 눈이 밝을 때와 어두울 때로 곧 보화를 하늘에 쌓아 둘 때와 땅에 쌓아 둘 때이다. 이는 육체를 가진 자의 마음이 그 보화를 쌓은 데로 가는 본능적 속성 때문이다. 또 마음이 세상이 아닌 하늘에 가 있으면 하늘 말씀의 세계가 그에게 열리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늘의 말씀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면 그 말씀을 가진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알려주신 약속의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바로 그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결실하기 위해서는 말씀의 씨가 그 마음에 뿌려져야만 한다. 그러면 결실한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은 두 가지를 포함한다. 하나는 자신의 죄사함을 통한 자신의 구원이며 그를 통한 이웃의 구원이다. 율법시대 하나님이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이 이 때문이다.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통한 우리 자신의 구원이며 무교절은 무교병이 누룩 없는 순수한 떡, 즉 섞이지 않은 하늘의 떡을 먹고 이웃을 구원하라는 의미이다. 누룩 없는 떡은 맛이 없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 유월절 양과 함께 먹었던 고통의 떡이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석상에서 유월절 음식을 먹을 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살이니 이 살을 먹으라고 하셨다. 그 살인 무교병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그 무교병은 맛은 없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필요한 생명의 떡이다. 그 떡은 영의 음식이다. 혼과 육의 음식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혼과 육은 그 떡의 맛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혼과 육이 영을 따라는 영적 혼과 육이 될 때 비로소 그 떡의 신비한 맛을 알게 된다. 그 신비한 떡은 곧 나의 이웃을 구원할 수 있는 떡이 된다.

 

하나님은 그 떡을 7일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게 하심으로써 무교절을 지키라고 하셨다. 그 혼과 육체에 맛이 없는 떡을 꾸준히 7일 동안 먹도록 하시어 그 혼과 육체가 그것의 진정한 맛을 알도록 하셨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되면 그는 그 이웃을 구원하는 구원의 사역이 시작된다. 그의 혼과 육체가 그 무교병인 그리스도의 살을 찾을 때 그에게는 말씀의 세계가 열리고 그가 비로소 영의 통치 즉 성전의 통치를 받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영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자동으로 말씀이 앞서가서 그 이웃을 구원하는 속성이 나타난다. 살려주는 영의 속성이 바로 그렇게 나타나게 된다. 말씀이 앞서서 나가면 자동으로 그 말씀을 시행하는 천사들이 함께한다. 그래서 그 천사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에게서 말씀이 나가면 그 말씀이 나간 그곳에서 추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각각의 개인들에게 일어나는 역사이다. 세상 전체에 일어나는 그런 구속의 역사가 아니다. 하늘의 빛은 각 개인의 내면의 어둠에 비친다. 내면에 빛이 비치면 비로소 빛의 세계, 즉 생명의 세계를 인식하게 된다. 그 생명의 세계가 인식되면 사망의 세계도 알게 된다. 이는 곧 영적 분별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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