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롯의 하나님(창19:1-11)

관리자님 | 2021.11.13 18:45 | 조회 894

44.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롯의 하나님(19:1-11)

 

1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4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롯은 소돔성의 성문에 앉아 있다가 하나님의 천사들을 영접합니다. 천사들이 거리에서 밤을 새울 것이라고 하자, 롯은 그들에게 간청하여 그의 집으로 영접합니다. 롯이 간청하는 자세는 롯이 나그네를 대접하는 그런 의식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위기 19장에서는 사람이 거룩하게 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밭에서 곡식을 거둘 때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이삭도 줍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웃의 형편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삶에서 두 손을 움켜지고 있지 말고, 좀 흘리고 다니라는 의미입니다. 이웃을 기꺼이 대접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거룩함은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롯의 천사들을 영접하는 그런 삶과는 대조적인 것이 소돔 사람들의 삶이었습니다.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롯의 집을 에워싸고 롯의 집에 온 손님을 이끌어내라고 합니다. 그들이 상관하겠다고 합니다. 이것 하나로 소돔이라는 도시의 형편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세상 타락의 종착지는 성적인 타락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그런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들을 심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거룩함을 찾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으므로 그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일상의 삶이 무너진 사람들의 집합체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정욕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자들로 그들의 삶은 완전히 사탄에 사로잡혀서 사탄과 완전히 하나가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환경은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서 사탄과 한 몸이 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한 자들이 바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이 소돔에 들어가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실 때는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두 천사만 소돔성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물론 하나님은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은 채로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게 나타나기도 하시고, 보이지 않게 나타나기도 하십니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게 나타나실 때와 눈에 보이지 않게 나타나실 때 모두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눈에 보이는 사람으로 나타나셨으나, 롯에게는 눈에 보이게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는 롯은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롯은 단지 두 천사만 만났습니다. 롯이 천사를 만나서 그를 영접할 수 있었던 것도 아브라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했기 때문에 소돔에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출해 내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었고, 또 아브라함과 롯은 마치 부모와 자식처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한 관계 때문에 하나님은 천사를 롯에게 보내셔서 그를 구출하였습니다. 롯은 그의 선택으로 소돔과 고모라까지 갔지만, 그가 아브라함의 아들과 같은 조카였기 때문에 아브라함으로 인해 소돔의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시대부터 세상에 아브라함의 나라가 시작됩니다. 그 아브라함의 나라는 이후 이삭에게 물려집니다. 이스마엘이 아닌, 이삭에게 물려집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은 그를 개별적으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인해 육적인 복은 받지만, 아브라함의 나라는 받지 못합니다. 이삭 다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물려집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개별적으로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은 개별적으로 만나주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나라는 야곱의 열두 아들 이후 거대한 하나님의 나라고 성장합니다. 이 나라를 우리는 이스라엘 나라라고 부릅니다. 이 이스라엘 나라에 소속된 백성들은 모두 약속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과 개별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개별적으로 교제하는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 이후부터 하나님은 그 계시는 장소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로 정하시고, 개별적으로 하나님을 찾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누구든지 율법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만날 때 군중의 하나로 그분을 만나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개별적으로 만나 교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법도와 규례를 지키라고 하신 것은, 개별적으로 하나님을 따르라는 의미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던 모세의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신 법입니다. 그 법도와 규제를 지키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하여 크게 흥왕하는 일이 일어났고, 애굽과 가나안의 풍습, 즉 육체의 길을 따르면 멸망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이 살아있을 때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만나면, 그는 하나님과 함께 생명의 역사를 진행하는 존재가 됩니다. 세상에서 천국의 건설자가 됩니다. 하나님을 한번 개별적으로 만나면, 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고, 두 번 만나면 두 번 하나님이 역사를 진행하고, 세 번 만나면 세 번 진행하고, 백번 만나면 백번 진행합니다.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매일 만나면, 그는 하나님을 닮는 사람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속에서 살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게 됩니다. 예전의 내 몸은 사탄의 몸이 되어 사탄의 종으로 살았지만, 인제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세상, 사탄의 세상은 정복됩니다. 나에게 온갖 나쁜 짓을 다 하게 했던 그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되어 더는 힘을 쓰지 못하는 세상이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예전에 선지자들은 직접 하나님을부터 부름을 받았습니다. 모세, 여호수아, 사사들, 엘리야, 엘리사,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 등과 같은 선지자들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개별적인 부름을 받아서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모두 개별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면, 성령의 시대에는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습니까?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부르시는 모양이 다르듯이 다양한 방법으로 부르십니다. 성령의 시대 가장 많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입니다. 그 기록된 말씀이 감동으로 자신에게 감지될 때입니다. 성령님이 하나님이 그를 개별적으로 불렀다는 것을 그런 방법으로 알려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말씀하는 그 말씀이 너무 좋아 그를 영접하면, 그도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그 말씀입니다. 그도 선지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의 법칙입니다.

 

성령의 시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았다는 것은 영적인 큰 의미를 가집니다. 본래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그분께 들어가셔서 세상에서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에 계실 때 완벽하게 성령께 순종하였습니다. 사실상, 예수의 이름은 성령님을 통해 그 속성 나타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라는 이름은 그 속성상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님께 주어진 것입니다. 그 이름은 백성을 구원하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육체에 계실 때 그 이름의 속성은 성령님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후 그 성령은 바로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들어갑니다. 이는 예수 이름이 제자들 속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인제 예수가 제자들 속에 산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나 된 것 같이 제자들도 하나가 되는 법입니다. 제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그것으로 그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름은 하나가 되는 이름이며, 영의 이름입니다. 하나님가 하나가 되는 이름이며, 제자들 간 하나가 되는 이름입니다.

 

성령의 시대,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들어와서 그분을 드러내셨습니다. 군중의 왕으로 그분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군중의 왕은 왕과 군중과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개별적인 왕은 나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 같은 방법으로 왕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유대인의 왕의 개념입니다.

 

롯은 하나님을 개별적으로 만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에서 롯의 구출은 롯과 하나님과의 그와의 개별적 관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롯의 관계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펼치신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시대는 그리스도인의 육체가 성전이 되는 시대입니다. 하나의 이스라엘 나라가 되는 시대입니다. 따라서 우리 육체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입니다.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집입니다. 너무 가까운 곳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시는 그 하나님을 우리는 매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은 곧 내가 매일 영적인 눈을 뜨는 것입니다. 영으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본래 영적인 눈이 뜨여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영적인 눈을 멀게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재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재물을 땅에 쌓아두면 영적 눈이 어두워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보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재물을 올바르게 다루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이웃을 대접하는 것, 구제하는 것, 농사짓는 자는 귀퉁이를 남긴 채 추수하고, 이삭을 줍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곧 영성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마음이 그를 거룩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움키고 있지 말고, 풀라고 합니다. 그때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린다고 합니다.

 

11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천사들에 의해 바로 눈이 멀수 있는 약한 존재들입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런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권을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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