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하나님의 현현과 믿음의 날개(창18:1-15)

관리자님 | 2021.10.23 22:54 | 조회 1583

41. 하나님의 현현과 믿음의 날개(18:1-15)

 

1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4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사 당신들의 발을 씻으시고 나무 아래에서 쉬소서 5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9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15사라가 두려워서 부인하여 이르되 내가 웃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르시되 아니라 네가 웃었느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다시 마므레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전에 나타나실 때는 아브라함에게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하시면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타나실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어떤 모양으로 나타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형태로든 알려주시는 그 메시지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어떤 형상을 보고 싶어 하고, 그 형상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권위를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어떤 육적인 형상을 중시하지 아니하시고, 말씀을 중시하십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사람이 모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난 하나님을 아브라함은 주라고 칭하면서 크게 환영합니다. 사람들을 보자마자 장막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였습니다. 그가 사람이 대접할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을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이라 칭하면서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의 모양을 하고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최고로 영접하면서 그 하나님에게서 나온 메시지를 듣습니다. 하나님은 이후부터 사람들을 통해 나타나셔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방식을 선택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같이 사람을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볼 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 모세, 선지자 등과 같은 사람을 통해 그 말씀을 전달하십니다. 특히, 그리고 모세 때는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면서 기록된 말씀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세우십니다. 그후 율법의 말씀을 잘 모르고, 율법을 잘 지키지 않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율법을 잘 지키라는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선지자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선지자들에게는 직접 나타나실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부터 대부분 선지자와 같은 사람들이나 기록된 말씀을 통해 백성들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합니다.

 

따라서 선지자와 같은 사람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을 볼 줄 알아야 하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대 진정한 영성은 작은 소자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을 보는 것이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특히, 기록된 말씀을 통해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보는 자들은 믿음의 날개를 그때부터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보이지 않는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날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을 보고, 그 말씀을 믿고 행동할 때 펼칠 수 있는 날개입니다. 그 날개를 펼치면, 세상 위를 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날 수 있습니다. 어떤 세상의 올무, 질병, 문제에서도 벗어나서 세상을 이기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는 나라입니다. 생각의 나라입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처음 나타납니다. 그 나라가 그 내면에 머물러 있으면, 그 나라가 밖으로 표출되지 못합니다. 그 나라가 밖으로 표출되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사람이 믿음의 그 내면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면, 그때 보이지 않던 믿음의 날개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세상에 하늘로 올라갑니다.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면, 그런 자들에게는 세상의 육적인 법이 적용되지 아니하고, 하늘나라의 법이 적용됩니다. 현실에서 세상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것이 믿는 자들의 능력입니다. 마가복음 24장에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5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6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으로 가서 사라에게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7아브라함이 또 가축 떼 있는 곳으로 달려가서 기름지고 좋은 송아지를 잡아 하인에게 주니 그가 급히 요리한지라 8아브라함이 엉긴 젖과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 앞에 차려 놓고 나무 아래에 모셔 서매 그들이 먹으니라

 

아브라함은 사람으로 나타나시는 하나님을 최고의 행위로 영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그 사람을 대접하는 그 마음이 하나님을 부지중에 대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육적인 것을 나누는 그 마음이 하나님을 대접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람들을 대접하는 데는 거의 본능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송아지까지 잡았습니다. 육적인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적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육적인 것이 영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시대 교회에서도 육적인 것으로 선지자들이나 복음 전도자들을 대접하면, 그것으로 인하여 영적인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바울의 편지, 디도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디도서 313~14절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레데 교회의 성도들이 율법교사 세나와 아볼로를 급히 그들에게 먼저 보내니, 그들로 육적 필요를 공급해주도록 가르치고, 육적 나눔을 통해 영적 열매를 맺는 방법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적인 것을 통해 영적 열매를 맺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전파자들을 도움으로써 영적 열매를 맺으라고 합니다.

 

9그들이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네 아내 사라가 어디 있느냐 대답하되 장막에 있나이다 10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사람의 모양을 하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1년 후에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그 말씀을 알려주었습니다. 사람의 모양을 하고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1년 후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으로 모양으로 나타나시건, 그냥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시건 그 현현하시는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1년 후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그 메시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곧 말씀입니다.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나타나신 목적은 바로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1년 후에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그 말씀은 99세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셔서 이미 알려주셨던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반복하여 2번 알려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변경될 수 없도록 결정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계획을 사람들에게 알려주실 때 같은 것을 두 번 알려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그 계획이 확정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때 바로 왕이 꾼 두 개의 꿈은 같은 내용을 두 번 꾸게 한 것은 하나님이 꿈처럼 될 일을 정하였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41:32).

 

11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사라가 속으로 웃고 이르되 내가 노쇠하였고 내 주인도 늙었으니 내게 무슨 즐거움이 있으리요 13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14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사라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 사라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자신도 노쇠하고 주인도 늙었는데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여호와께는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고 합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생각과 관계없이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이삭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십니다.

 

이 시대 하나님의 능치 못함이 없는 속성은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믿고 행동하면, 무엇이든지 말씀대로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사라에게 임신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겸손과 교만에 대하여 종종 오해합니다. 하나님은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백성들의 속죄제 염소의 제물을 회막 앞에서 먹으라고 하자, 그것을 감히 먹을 수 없어서 제물을 불태우는 곳에서 불태웁니다. 어떻게 자신들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제물을 먹을 수 있느냐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보고 모세는 그들이 그곳에서 제물을 먹지 않은 것에 대하여 노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교만과 겸손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나의 처지를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감히 하나님 앞에서 먹지 못한 것이 겸손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먹지 않고 불태우는 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할 수 있다고 하시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은 자신을 절대 과소평가하면 안 됩니다. 그 속에 하나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깨달아지면, 그것을 믿음으로 행동하면 됩니다. 그러면, 믿음의 결과물들이 현상의 세계에서 결과물로 나타납니다.

 

현상의 세계는 사실상 허상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렇게 말씀합니다.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다고 말씀합니다. 영적 세계가 실체의 세계입니다. 현상의 세계 즉 허상에 세계에서 사람을 속이는 존재가 귀신입니다. 그래서 속지 않으려면, 그 귀신에 대한 성경적 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성령의 검입니다. 곧 말씀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검을 가진 존재들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귀신이 무서워하는 것은 말씀이 있는 사람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히, 금식기도를 하면, 사람을 묶고 있었던 흉악의 결박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귀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는 하나님의 말씀이 충만한 자가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 앞에서는 꼼짝 못 합니다. 바로 그들 앞에서는 죽음입니다.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깨끗하게 소제된 집니다. 귀신은 사람의 몸을 자기 집으로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원수 맺고, 싸우고, 헐뜻고, 중독에 사로잡혀 있고, 탐욕을 부리는 등 육적인 것이 충만한 사람 속에 들어가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귀신은 자신들과 속성이 맞는 사람들에게서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해 찾고 있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세상은 세속적인 것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영적 관점에서는 부정한 것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에 그리스도인들이 꼭 하여야 할 것이 발을 씻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귀신들이 달라붙지 못합니다. 발을 씻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씻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 있는 곳에 정규적으로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현명합니다. 육체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육체는 흘려 떠내려가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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