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이스마엘과 이삭, 그리고 할례(창17:19-27)

관리자님 | 2021.10.16 13:23 | 조회 1146

40. 이스마엘과 이삭, 그리고 할례(17:19-27)

 

19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20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매우 크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를 큰 나라가 되게 하려니와 21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22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그를 떠나 올라가셨더라

 

23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이 전에 있었던 내용은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고, 그에게 아들을 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이 말씀을 믿지 않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이삭과 언약을 세우시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삭과 세운 언약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에게 나온 자 이삭과 언약을 세우시겠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은 이삭과 언약을 세우겠다고 합니다. 이스마엘에게 육적인 복은 주겠지만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유업은 물려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유업은 오직 새로 나올 자 이삭에게 물려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차이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지 못한 자와 받을 자의 차이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뜻으로 난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마엘과는 언약을 맺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삭과 언약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집안의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집안의 모든 남자는 할례자입니다. 할례자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스마엘도 할례자입니다. 그도 아브라함의 집안에 속한 자이므로 약속을 가진 자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을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갈, 즉 종에게서 나온 자, 시내산에서 나온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은 오직 사라, 자유자, 즉 하늘의 예루살렘에서 나온 자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마엘과 이삭의 차이입니다.

 

그러면,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은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그가 아브라함의 집안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가진 집안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언약을 가진 집안에 속한 자들은 모두 그 언약을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기억하면서 그것을 수행하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아브라함이 맺은 언약을 수행자는 자입니다. 그 언약이 수행되도록 옆에서 돕는 자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처럼 언약의 주체가 된 자가 아니라 그가 아브라함 집안에 속했기 때문에 그 아브라함의 언약을 돕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언약의 주체는 될 수 없습니다.

 

이스마엘과 같은 존재는 하나님의 유업을 도울 수는 있으나, 그 유업을 이끌지는 못합니다. 하나님의 유업은 하나님에 의하여 이끌려지기 때문입니다. 그 유업이 하나님에 의하여 이끌려지려면, 그 유업을 현실적으로 이끌어가는 존재가 하나님과 그 마음이 같아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같아지려면, 하나님에게서 나온 자만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자들이 그 유업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마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는 태생의 한계, 즉 종의 한계를 가진 자입니다.

 

이스마엘은 이 시대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바로, 종으로 태어나 우리들의 육신 아닙니까? 이 우리의 육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우리 육신도 못 박은 것입니다. 우리 육신은 이스마엘처럼 하나님의 유업을 도울 수는 있지만, 그것을 물려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종으로 태어난 태생의 한계입니다.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들은 하나님과 그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최고의 자격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운영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운영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마엘과 같은 자들은 그 태생 상 하나님과 근본적으로 마음이 하나가 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은 하나님에 의하여 경영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그는 잠시 하나님의 주권에 동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육체를 따를 수도 있고, 말씀을 따를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가 풍랑을 쳐다볼 때 말씀을 따르는 삶이 없어졌고, 물에 빠지게 됩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 이후 말씀을 따르는 삶을 사는 자로 바뀝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듭난 자들이 이 말씀을 따르는 자들로 살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구약시대의 다윗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육체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유업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은 그 마음이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같아지는 경지에 도달하면, 그의 마음이 하나님 나라의 경영에 반영됩니다. 그때부터는 그가 하나님 나라의 경영에 동참하는 자가 됩니다. 이런 자들을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같아지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내 마음이 될 때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같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신 것입니다.

 

23이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이 날에 그 아들 이스마엘과 집에서 태어난 모든 자와 돈으로 산 모든 자 곧 아브라함의 집 사람 중 모든 남자를 데려다가 그 포피를 베었으니 24아브라함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구십구 세였고 25그의 아들 이스마엘이 그의 포피를 벤 때는 십삼 세였더라 26그 날에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았고 27그 집의 모든 남자 곧 집에서 태어난 자와 돈으로 이방 사람에게서 사온 자가 다 그와 함께 할례를 받았더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말씀하신 대로 모든 집안의 남자는 모두 포피를 베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브라함 가계의 모든 사람에게 이삭을 맞이할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나님이 시키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나온 자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세례요한을 먼저 세상에 보내셔서 물세례를 주시면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삭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은 하나님이 이삭과 맺을 새 언약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삭과 같은 약속의 사람은 하나님과 개별적 언약을 가진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언약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 세대 이삭과 같은 수많은 약속의 사람들과 언약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영하십니다. 즉 죽은 자를 살리는 그 위대한 경영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할례 언약이 나타난 이후부터 수많은 이삭과 같은 약속의 사람들이 나타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이 물리적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경영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할례라는 것은, 하나님의 새로운 언약을 환영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할례를 통해 사람의 육체를 가진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니, 이 새로운 언약을 보내주시라는 그 환영입니다. 그 새로운 약속을 열렬히 환영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 시대는 수많은 언약이 시시각각 내려오는 시대입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약속을 수행하는 시대입니다. 이 성령의 시대, 생명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성령님을 통해 무궁무진하게 내려오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대처럼 한 사람이 언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활동하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는 각자가 성령님을 환영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육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 육체의 생각을 따를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하나님 아들들의 한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육체를 가졌을 때 천사보다 잠깐 못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육체를 한계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 육체 때문에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는 것에 방해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과 한마음이 될 수 있는 태생적, 근본적 자격은 있지만, 그 육체 때문에 방해를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육체도 한마음에 동참하도록 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육체까지도 하나님과 한마음에 되는 데 동참하는 첫 번째 스텝은 성령님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시대는 성령님이 무궁무진한 하나님의 언약을 그 아들들에게 주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성령님을 환영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가계에 새로운 언약이 오는 것을 환영하도록 온 집안이 할례를 받은 것처럼 그분을 항상 환영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을 어떻게 환영할까요? 그분을 환영하는 방법은 다윗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궤가 다윗성, 즉 예루살렘성으로 들어올 때 그는 겉옷을 벗고 좋아서 춤을 춥니다. 그가 왕이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 궤를 환영하는 그것이 빠져있었습니다. 이 시대 우리들의 기도는 우리가 바로 다윗처럼 되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으로부터 그분을 환영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마음으로 좋아서 춤을 추는 것입니다. 언제나 성령님은 그분을 환영하는 자들에게서 밖으로 표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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