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할례와 여러 민족의 어머니 사라(창17:9-18)

관리자님 | 2021.10.09 22:07 | 조회 628

39. 할례와 여러 민족의 어머니 사라(17:9-18)

 

9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12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고 합니다. 그러기 그 언약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남자는 모두 할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으라가 언약입니다. 그 언약을 아브라함과 그 후손 대대로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지키는 그 행위, 즉 남자들의 포피를 베는 것을, 언약의 표징이라고 합니다. 이는 언약의 표징을 살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 후손들 사이에 있는 그 언약을 결코, 잊지 말라는 의미가 그 속에 담겨있습니다. 그 언약의 말씀은 너무 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할례를 하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나타난 그 배경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갈이 아브람의 집을 떠나 도망할 때, 나타나셔서 그 하갈의 고통을 알았다고 말씀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하갈의 고통은 종을 낳은 자의 고통이라고 하였었습니다. 그래서 하갈은 세상에서 죄인을 출산하는 모든 여인의 고통이라는 영적 관점의 해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바로 그 고통을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여인을 아브람의 집으로 다시 돌려보냅니다.

 

하나님은 그로부터 14여 년이 지난 다음,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고 그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여러 민족은 이스마엘과 같은 육적인 아들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나오는 약속의 아들들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탄생 방식으로 나오는 약속의 자녀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그 첫 번째의 언약이 바로 이 할례를 행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이 할례를 해석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가계에 있는 모든 사람은 이 모든 새로운 방식의 탄생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혹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종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의 집안에 들어왔으면 모두 그 새로운 탄생 방식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할례는 종을 탄생시키는 그런 탄생이 아닌 하늘로부터 나오는 약속의 자녀들을 탄생시키는 새로운 탄생을 이어가는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할례는 바로 이러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할례는 그 표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 표징은 하나님과 이 할례자의 그룹 사이에 언약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표징을 살에 두었습니다. 결코, 잊어버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할례자 그룹 사이에 둔 첫 번째 언약은 남자에게 할례를 하라는 것이었고, 그리고 그 이후부터 수많은 하나님의 언약들이 그 할례자 그룹에게 내려옵니다. 그래서 할례자 그룹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자들의 무리라 할 수 있고, 바로 세상에 존재하는 영적 하늘의 무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성장하여 이스라엘 나라가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는 할례자의 나라가 됩니다.

 

하나님은 할례를 하라는 언약과 함께 이삭을 탄생시킵니다. 이는 새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삭이 할례자 나라의 첫아들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자 집안의 이 첫아들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삭은 모리아 산의 제물이 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에서 제물로 바쳤을 때 하나님은 네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 알겠다고 하시면서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 말씀합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독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아브라함의 씨로 보내서 그를 제물 삼겠다는 그런 의미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겠다는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의 언약은 곧 종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세상에 그 종의 올무를 벗기겠다는 그 언약을 하신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독생자의 생명을 주시겠다는 그 언약입니다. 그 언약의 증표를 살에다 두고, 그것을 매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종으로부터의 해방의 날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의 언약은 곧 독생자를 보내주신다는 그 언약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를 통해 인간이 메고 있는 종의 멍에를 끊어 내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고통이 그 할례의 언약 속에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언약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할례의 언약은 곧 사랑의 언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랑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하셨던 그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친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 죽음이 그 할례 속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셨던 그 할례를 하라는 언약은 죽음의 언약이었습니다. 곧 사랑의 언약이었습니다. 최고의 언약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살에 두고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시대의 할례는 살에 있었지만, 성령의 시대 할례는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할례를 살과 마음에 두라는 언약의 표징은 바로 그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위대한 할례의 언약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적으로 생각하여 그것을 자신들의 특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할례를 특권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유대인 중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할례만을 포기하지 말자고 주장한 자들이 예루살렘교회의 할례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복음을 방해한 자들이 바로 이 할례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할례의 언약이 이런 뜻이 있었는지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의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그것이 특권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개별적입니다. 성경은 우리들에게 그 개별적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라고 말씀합니다.

 

15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16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꾸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라에게 복을 주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사라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할 것이고,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날 것이라 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라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4:26)” 사라는 하늘의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나라로 곧 우리의 어머니, 즉 그리스도인들을 낳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영의 사람들을 나게 한 하늘나라라는 의미입니다. 사라가 이삭을 낳은 것은 바로 그 하늘나라가 이삭을 낳은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자유자가 자유자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데에도 묶이지 않는 자유자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할례자의 나라는 바로 이 자유자의 나라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자유자들의 나라가 세상에 시작되는데, 그것이 처음에는 이스라엘 나라이고, 예수 그리스도 이후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 교회는 여러 민족이 되고, 여러 민족의 왕은 곧,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영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든지 왕의 권세를 가진 존재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그 나라는 여러 민족과 여러 왕이 나오는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고, 구십 세 된 여인이 어찌 출산하리요 합니다. 하나님은 영적 관점의 말씀을 하였는데 아브라함은 이를 알아듣지 못하고 육적 관점을 생각합니다. 경수가 끊어진 여인이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육적 세계의 법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될지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들어오는 그 육적인 의심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은 변경되지 않습니다. 이삭의 출생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아들의 탄생이 아닙니다. 그는 하늘의 계획 속에 탄생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그것을 믿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와 관계없이 이루어집니다.

 

이와 같은 의심은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풍랑을 보고 빠졌었던 베드로가 가진 의심과는 다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은 것은 그리스도의 말씀 능력으로 걸었던 것이고, 그가 풍랑을 쳐다보았을 때 두려움이 찾아와 그 능력을 지속시켜주던 말씀이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의 의심은 그가 풍랑을 쳐다보았을 때 그에게 찾아온 두려움 때문에 그에게 있었던 말씀의 능력이 없어졌다는 그런 차원의 의심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의심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진행 시키시겠다는 것이라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생각과는 무관한 것입니다. 이런 차이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겠다고 하는 일은 나의 그것이 될까하는 그런 의심과는 관계없이 하나님은 그 일을 진행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말씀의 능력 속에서 살다가 세상을 바라보면, 의심이 들어와 그 말씀의 능력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분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18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그를 통해 어떤 일을 하실지 전혀 모릅니다. 그래서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말씀을 합니다. 육적인 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그를 통해 나온 이삭이 하늘로부터 나오는 자로 이후 거대한 나라를 이루게 될 것을 몰랐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게 만족한 현실의 삶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이스마엘이 아닌 하늘로부터 아들이 새롭게 태어나게 하여 아브라함의 유업을 잇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개인의 생각과 관계없이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진행됩니다. 어느 누구도 그 하나님의 계획을 변경할 수도, 멈출 수도 없는 것입니다.

twitter facebook google+
1,009개 (8/51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다운로드
MP3
날짜
박기묵
MP3
2021.11.20
박기묵
MP3
2021.11.17
박기묵
MP3
2021.11.13
박기묵
MP3
2021.11.10
박기묵
MP3
2021.11.06
박기묵
MP3
2021.11.03
박기묵
MP3
2021.10.30
박기묵
MP3
2021.10.27
박기묵
MP3
2021.10.23
박기묵
MP3
2021.10.20
박기묵
MP3
2021.10.16
박기묵
MP3
2021.10.13
박기묵
MP3
2021.10.09
박기묵
MP3
2021.10.06
박기묵
MP3
2021.10.02
박기묵
MP3
2021.09.29
박기묵
MP3
2021.09.25
박기묵
MP3
2021.09.18
박기묵
MP3
2021.09.16
박기묵
MP3
2021.0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