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 야곱 중심의 하나님의 통치(창33:1-11)

관리자님 | 2022.10.14 13:19 | 조회 454

89. 야곱 중심의 하나님 통치(33:1-11)

 

1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에서는 하나님의 기업을 받지 못했지만, 세상에서는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릴 정도로 번창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이 기업을 받지 못했다고 해서 육적으로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았다는 것은 영적인 세계,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실행하는 그 거대한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에서는 그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못했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번창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서는 세상에서 육적으로 강한 자였다. 반면에 야곱은 육적 관점에서 강한 자는 아니었다. 하나님께 관심이 많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였다.

 

야곱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 그 육적으로 강하게 성장한 그의 형 에서의 산을 넘어야 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면서 자기에게 축복하라고 하였다. 하늘의 것으로 에서를 이기게 해 달라는 처절한 부르짖음이었다. 이는 하늘의 것으로 세상의 강함을 이기게 해달라고 외치는 절규와 같은 것이었다. 야곱은 자신의 생명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와 아들과 딸들과 종들의 생명도 그에게 달려 있었다. 그런데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만 있다면, 세상의 강함을 이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얍복강 가에서 하늘의 사람을 만났을 때 축복을 달라고 씨름을 한 것이다. 그래서 야곱은 그 씨름에서 이기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이는 이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자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1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후 에서를 맞이한다. 그렇게 두려움에 떨고 답답해 했었던 야곱은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후 그 에서를 만나는 것이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야곱, 즉 이스라엘은 어디를 가든지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하는 자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사람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면, 하나님이 져주시고, 이 하늘의 것을 가지면, 하나님의 통치하에 들어갔다는 의미라고 앞에서 언급하였었다. 이런 자들은 세상에서 아무도 어찌하지 못하는 자가 된다.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담담하게 에서를 맞이한다. 이전에는 두려웠지만, 이스라엘이 된 후의 야곱은 더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로 두려움 없이 에서를 맞이하였다.

 

4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니, 그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역사가 야곱에게 나타났다. 야곱이 하늘의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니 말씀이 그를 통치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통치는 에서의 마음을 녹이고, 야곱을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울게 하였다. 이것이 하늘의 말씀이 세상의 사람들을 통치하는 방식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을 중심으로 그의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일어난다. 야곱이 가진 하나님의 말씀은 야곱을 중심으로 연결된 모든 사람, 모든 환경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통치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는 사람 차원의 수준에 맞추어 일어난다. 여기서는 에서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방식으로 일어났다. 에서가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출발할 때의 마음과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축복, 즉 말씀을 가졌을 때 야곱을 대하는 에서의 마음은 완전히 달랐다는 것이다.

 

이 야곱과 에서의 400 군대 이야기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그 말씀을 가진 자를 중심으로 사람을 포함한 그 환경이 어떻게 바뀌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이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그 말씀을 받은 사람을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에서는 그의 마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화되어 그의 동생 야곱을 끌어안았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렇게 사람 마음의 생각을 바꾸시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그 말씀을 받은 자를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그 주위 환경을 통치하는 것이다. 사사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보면, 열네 번이나 넘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 빠지지만, 영의 사람, 즉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가 나타나면 그를 중심으로 우상숭배의 환경이 완전히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바뀌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말씀이 임하여 그의 아버지 집에 있었던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어 그의 아버지의 칠 년된 수소를 잡아 찍은 아세라 상을 태우는 불로 번제를 드리라고 했을 때 기드온은 그것을 목숨 걸고 실행하였다. 그러자 그를 중심으로 한 환경이 완전히 바뀌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드온을 따르는 일이 일어나게 되어 결국 미디안의 손에서 백성들을 구원하였다. 말씀을 가진 자가 이스라엘에 나타났더니 그를 중심으로 그 말씀의 통치가 일어나게 되었다.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말씀이 임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 속으로 들어가고, 결국 기드온의 300 군대가 미디안의 수만 명의 군대를 물리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300명의 군대는 거의 1101의 경쟁을 뚫고 하나님의 군대로 선발이 된 사람들이다. 그 하나님의 군대로 선발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는 최고의 영광이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함께하여 미디안 군사와 전쟁하는 것을 현장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며, 그 승리를 그들의 영광으로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미디안의 군사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갔는지 알지도 못한 채 서로 아군을 적군으로 착각하여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하였다. 하나님은 이같이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씨름하는 기도를 통해 하늘의 축복인 말씀을 받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서 하나님의 통치가 그 사람에게 임하도록 하시어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신다. 하나님은 야곱과 같은 사람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늘의 것을 목숨 걸고 구하는 자들을 통해 그 하늘의 것, 즉 말씀을 주시고, 그 말씀을 통해 그와 그와 연결된 환경을 통치하심으로써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신다.

 

야곱과 에서의 이야기에서는 에서도 하나님의 통치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가 야곱을 맞이할 때 군대를 일으켰지만, 결국 그를 끌어안은 것은 그가 하나님의 통치 속에서 그의 마음이 녹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는 사실상 야곱에게서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가 에서에게까지 영향을 미친 그런 통치이다. 이때의 에서는 야곱의 환경과도 같은 것이다. 에서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통치는 야곱을 통해 나타나는 통치이다. 그런 통치는 자기 속에서 나오는 통치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통치가 아니라 자기의 배 속에서 생수가 흘러나듯이 나타나는 통치가 필요하다. 물론 에서가 받은 통치와도 같은 통치도 필요하다. 그래서 신약시대 교회로 모이라고 하신 것이다. 교회로 모이면 처음에는 에서가 받은 것과 같은 하나님의 통치를 경험하고, 그 자신도 서서히 야곱의 통치와 같은 통치가 자신에게서 일어날 수 있는 길로 들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시대에는 야곱의 통치와 같은 통치를 일으키는 사람 옆에서 그 통치를 받으면서 살면, 자신도 때가 되면 그 자신에게서 흘러나오는 그런 하나님의 통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6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에서를 만난 야곱은 그의 가족들을 에서에게 소개한다. 에서는 가족을 소개받은 후 곧 예물에 대하여 야곱에게 묻는다. 세상 사람들의 최고의 관심거리가 바로 재물이므로 그 재물에 대하여 질문한다. 종들이 말한 그 예물이 어떤 것이냐고 질문한 것이다. 이에 야곱은 그 예물을 받아달라고 에서에게 요청한다. 에서는 이를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야곱이 강권함으로 그것을 받는다. 야곱은 하나님의 통치로 그에게 두려움이 없어졌다고 하여 그가 주려고 했었던 예물을 거두지는 않았다. 에서에게 주려고 했었던 예물은 다시 자기의 것으로 거두지 않고, 에서에게 강권하여 가지게 한다. 이는 영적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전에 그 자신이 드리기로 했었던 예물을 철회하지 않은 것이다. 야곱은 강권하기까지 하면서 그것을 에서에게 준다. 이 예물은 에서의 생각을 변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물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동생 야곱을 받아주었다는 의미이다. 이는 가나안 땅에서의 야곱의 삶은 안전하게 보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에서의 400 군대는 인제 야곱을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할 것이다. 야곱의 예물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야곱을 해하겠다는 에서의 마음을 풀었고, 야곱은 예물을 통해 에서를 그의 편으로 만들었다. 야곱이 예물을 강권하면서까지 에서에게 예물을 줌으로써 중간에 에서의 생각이 바뀌지 않게 하였고, 그를 돕는 자로 만든 것이다. 약속의 사람들은 이런 지혜있는 행동이 본능적으로 되는 자들이다. 에서의 마음이 풀리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준다고 했었던 그의 예물을 철회하지 말라는 것이다. 야곱은 이제 이스라엘로 바뀐 이름을 가지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통치가 그를 통해 일어난다. 그런 자들은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통치로 인해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재물이 아까와서 이전에 했었던 약속을 철회하지 않는다. 약속의 자녀에게 재물은 하나님의 법대로만 하면 그를 따라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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