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 야곱의 삶과 라반의 삶(창31:38-44)

관리자님 | 2022.08.25 20:01 | 조회 636

84. 야곱의 삶과 라반의 삶(31:38-44)

 

38내가 이 이십 년을 외삼촌과 함께 하였거니와 외삼촌의 암양들이나 암염소들이 낙태하지 아니하였고 또 외삼촌의 양 떼의 숫양을 내가 먹지 아니하였으며 39물려 찢긴 것은 내가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지 아니하고 낮에 도둑을 맞았든지 밤에 도둑을 맞았든지 외삼촌이 그것을 내 손에서 찾았으므로 내가 스스로 그것을 보충하였으며 40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와 밤에는 추위를 무릅쓰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냈나이다 41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42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43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야곱은 라반에게 지난 20년 동안 어떻게 자신이 그의 집에서 살았는지 말한다. 그가 양치기할 때 자기 외삼촌의 양과 염소는 낙태하지 않았고 숫양을 먹지 않았고, 물려 찢긴 것과 도둑 맞은 것은 모두 보충하였다고 하였다. 야곱은 라반의 집에서 딸들을 위해 14, 양 떼를 위해 6년을 봉사하였다. 그런데 라반은 품삯 약속을 열 번이나 바꾸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바꾸었다. 라반은 눈에 보이는 환경을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때그때 품삯에 대한 계약을 바꾸었다. 그런데 그 환경은 아홉 번이나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바뀌었다. 이는 야곱의 삶과 라반의 삶의 차이를 알려준다. 참의 세계에 들어간 야곱은 그의 환경을 스스로 바꿀 수 있는 존재이지만, 거짓의 세계에 있는 라반은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라반은 자신에게 유리한 야곱의 품삯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참의 세계와 거짓의 세계의 차이를 분명하게 알려준다. 아담이 죄를 범하면서부터 인류는 거짓의 세계 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거짓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자들은 땅이 엉겅퀴를 내므로 그 땅의 환경에 적응해야만 했다. 그런데 세상에서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약속의 기업을 가진 자들은 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자들이 되었다. 참의 세계 속으로 들어간 자들은 환경에 적응하여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환경을 만들어가는 자들이다. 세상의 모든 환경, 즉 빛, 궁창, 식물, 해와 달과 별, 동물은 모두 진리를 위해 진리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다. 따라서 참의 세계에 들어간 자들에게 모든 환경은 굴복하는 것이 질서이다. 그러므로 참의 세계에 들어간 야곱은 세상에서 그의 삶의 환경을 만들어 간 것이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야곱이 그 속에 있으면, 그 환경은 야곱을 돕는 환경으로 바뀌게 된다. 본래 그렇게 되는 것이 질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반은 거짓의 세계에 존재하는 자이기 때문에 환경에 스스로 적응을 해야만 했다. 힘든 삶이 그에게 펼쳐진 것이다. 어떤 수를 써도 야곱을 당할 수 없는 존재이다.

 

42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하나님이 내 고난과 내 손의 수고를 보시고 어제 밤에 외삼촌을 책망하셨나이다

 

라반은 모든 환경이 야곱의 편이라는 것을 알고, 야곱의 것을 탈취하려고 하였으나 그것을 탈취할 수도 없었다. 그가 야곱의 것을 취하려 할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는 참의 세계에 들어간 자들은 세상의 환경뿐만 아니라 사람도 참의 세계의 사람들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참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이 쉼 없이 감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짓된 세상이 속성은 스스로 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짓의 세상에 존재하는 자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참을 알지 못한다. 그들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거짓의 세상에 사는 자들이 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참이 거짓된 자들에게 알려줄 때이다. 따라서 세상의 어떤 학문이나 종교도 참을 알아낼 수 없다. 철학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잘못된 신이며, 거짓이 만들어낸 거짓된 신이 되는 것이다. 거짓된 신을 스스로 믿으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가리면서 사는 존재가 세상 사람들이다.

 

그리고 참이 거짓을 이기는 것이지, 거짓이 참을 이길 수는 없다. 본래 참에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거짓은 사망의 속성만 가진다. 본래 그들의 속성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거짓에 있는 자들은 사망으로 가는 것이다. 사망이 그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은 생명이다. 본래 그 참의 속성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령의 시대 참의 세계에 들어온 자들은 생명의 속성인 살려주는 영을 받은 자들이다. 그 살려주는 영은 그것을 받은 자들만 살릴 뿐만 아니라 그 주위에 그 영의 영역 안에 들어온 모든 존재물을 살리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참의 세계에 들어온 자들에게는 거짓의 세계에서 통용되었던 죄와 사망의 법이 죽었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살아서 작동한다. 생명의 성령의 법은 죄와 사망의 법을 삼키는 법이다. 성령의 시대 사람의 육체와 혼은 본래 죄사 사망의 법 속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죄와 사망의 법이 그에게서 죽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에게 적용된다. 이 생명의 성령의 법은 사람의 생각에 의하여 운영되는 그런 법이 아니다. 그것은 진리의 말씀에 의하여 운영되는 법이다. 진리의 말씀이 깨달아지면, 그에게서는 자동적으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운영되어 죄와 사망의 법을 삼켜버린다. 죄와 사망에 법에 묶여 있었던 그 모든 것들이 풀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지진이 난 것과 같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풀려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감옥에서 단지 기도와 찬송을 했을 뿐인데 지진이 나면서 옥문이 열렸다. 이는 죄사 사망의 법의 감옥을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삼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단지 하나님 말씀을 보고 그것을 깨닫고 기도했을 뿐인데 그를 묶고 있었던 모든 결박이 풀어지고, 생명의 역사가 그에게서 일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리로다(7:24)”라고 외쳤다. 이는 사람이 참의 세계로 들어가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운영되기 때문에 죄와 사망의 법이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육체와 혼이 있으므로 악이 함께 그 육체에 있지만, 그에게서 죄와 사망의 법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악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그에게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리로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에게 악이 있다 할지라도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악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것이 그에게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생명의 성령의 법 때문에 그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 진리의 말씀은 사람에게서 생명의 성령의 법을 작동시키는 근본 동력이기 때문이다. 나의 의지, 생각과 전혀 상관없이 사람이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면 영적으로 묶여 있던 것들이 풀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 세상 방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것이 진리의 세계에서 운영되는 법이다. 그러므로 귀신들린 자들은 그 귀신을 쫓아내려면 자기에게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작동되도록 하면 된다. 귀신은 사람의 생각에 의하여 쫓겨가지 않는다. 나의 의지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는 법은 없다. 사람에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작동될 때 저절로 귀신이 쫓겨가는 것이다. 그것이 영적 질서이기 때문이다.

 

43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참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야곱의 말을 듣고 라반은 완전히 바뀐다. 그래서 야곱의 아내와 아들들을 자기의 자식이요 양 떼도 자기 것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내가 나의 것을 해하겠느냐고 한다. 참의 세계는 세상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라반은 야곱을 통해 참의 세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해도 야곱에게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과 언약을 맺자고 한다. 이는 예전에 그랄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와 브엘세바 언약을 맺자고 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보여준 참의 세계가 아비멜렉과 라반에게 보였기 때문에 그들이 먼저 언약을 맺자고 청하는 것이다. 참의 세계는 세상에서 나타나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표출시키는 속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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