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 하나님의 정의와 드라빔(창31:30-37)

관리자님 | 2022.08.20 18:08 | 조회 478

83. 하나님의 정의와 드라빔(31:30-37)

 

30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31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생각하기를 외삼촌이 외삼촌의 딸들을 내게서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여 두려워하였음이니이다 32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33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36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라반은 야곱이 그의 가족을 데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한다. 그러나 야곱의 가족이 라반의 신을 도둑질하였다고 한다. 이에 야곱은 자신이 몰래 라반의 딸들을 데리고 나온 것은 그들을 빼앗길 것이 두려워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만약, 라반의 신을 우리 가족에게서 찾아보시고, 누구든지 그 드라빔을 가져왔으면 살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것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대답한 것이다. 이제 라반이 야곱의 가족들에게 드라빔을 찾아내면 그것을 훔친 라헬은 살지 못하게 되었다. 라헬은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된 것이다.

 

33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라반은 야곱 가족들의 장막에 들어가서 드라빔을 찾았다. 레아의 장막과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 찾았지만 찾지 못했다. 만약, 라반이 라헬이 가져간 것을 찾아내면 라엘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라헬은 드라빔을 훔친 것으로 인해 죽을 운명이었지만, 죽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라헬을 통해 또 하나의 아들인 베냐민을 낳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헬이 드라빔을 훔쳤다 할지라도 라헬을 죽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라반이 드라빔을 찾을 때 그것이 발견되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약속의 사람들을 살게 하시는 것은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 성취할 계획이 남아 있으면 결코, 그의 죽음을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라헬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남아 있었으므로 그는 죽을 수 없는 자였다. 그래서 드라빔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라헬은 드라빔을 가지면 자기 집안이 잘될 것으로 생각하는 우상숭배를 했지만, 그를 통해 베냐민을 출생시켜야 했으므로 그에게서 드라빔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이 하나라도 남아 있으면 그를 끝까지 세상에서 살게 하신다. 혹 그가 어떤 우상숭배에 빠지더라도 살려두신다는 것이다. 라헬의 사건은 그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세상의 정의와 하나님의 정의를 구분할 수 있다. 세상의 정의는 라헬이 드라빔을 훔쳤기 때문에 그것이 발각되고 라헬이 처벌을 받아 죽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드라빔을 훔친 것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라헬을 통해 베냐민을 출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어떤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의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의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사건을 통해 보여주었다. 세상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정의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담 이후의 세상은 사실상 거짓이기 때문이다.

 

아담이 범죄를 하면서 세상은 인간은 거짓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짓의 문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인간은 그때부터 거짓의 본성을 가지고 살게 되었다. 그래서 거짓된 본성을 가진 인간이 어떤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는 것을 정의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의 세상에서 정의를 따진다는 것이 모순이다. 사실상 타락한 인간은 거짓 속에서 사는 것이다. 그들이 거짓의 문을 열고 그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런 거짓인 사람에게 참이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사람을 참의 세계로 들어가게 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늘의 문을 통해 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의 문을 통해 들어간 곳이 참의 세계이다. 그래서 야곱의 행위는 참인 것이다. 그것이 세상 관점에서 거짓인 것처럼 보여도 야곱이 하는 행위는 참인 것이다. 야곱이 참의 세계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야곱이 양과 염소가 물을 먹으러 개울가로 올 때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 가지를 벗겨서 그것을 구유에 놓은 것은, 세상 관점에서 보면 라반을 속인 것 같이 보일 수 있으나 그것이 참인 것이다. 영적 분별력이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있는 영적 감각을 가지는 것이다.

 

결국, 라반은 라헬에게서 드라빔을 찾지 못했다. 라헬은 그가 야곱의 하늘에 들어왔지만 육의 본능을 따르는 자였다. 그래서 누구나 그렇듯이 자기 가족의 안위를 위한 행위로 우상숭배를 한 것이다. 이는 아담 이후 범죄한 모든 사람의 본능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이런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상숭배는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그것으로 멸망한 것은 인간은 우상숭배의 본능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무지개 언약을 하신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인간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바로 이 우상숭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서이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사실상 그들이 우상숭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들의 육체의 본능이 육체를 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데 성령의 시대에는 사람이 우상숭배를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우상숭배를 하는 겉 사람을 죽이고 그 육체 속에 속사람인 영이 태어나게 하는 것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겉 사람을 죽이기 위해 오셨고, 성령님은 속사람인 영이 태어나게 하려고 우리에게 오신 것이다. 사람의 겉 사람은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새로 태어난 그 속사람인 영은 처음부터 우상숭배를 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 영은 본 속성이 살려주는 영으로 태생 자체가 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새로 태어난 속사람인 영이 육체 가운데서 산다는 것이다. 육체가 영의 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민한 것이 바로 이것 때문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리로다(7:24)”라고 고백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 육체가 죽었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선을 행하기를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하는 것을 볼 때 그 악은 죽은 존재라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죽은 나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악을 행하는 나는 죽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내가 악을 행할지라도 그것은 죽은 악이라는 것이다. 나를 악인으로 사로잡을 수 없는 악이라는 것이다. 힘이 없는 악이라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그것이 힘이 있어 나를 사로잡아 형벌을 받게 했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더는 그 악이 살아있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구약시대처럼 악을 행하면 형벌을 받고 저주를 받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7:25)”라고 고백한 것이다.

 

이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악에서부터 완전한 자유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악의 중독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거짓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그런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오는 자들에게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완전한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육체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는 언제나 우상숭배를 향해 달려간다. 라헬처럼 그가 야곱의 하늘에 들어왔지만, 드라빔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성령세례를 통해 하늘에 들어왔지만, 현대판 드라빔이 필요한 것이다. 그 현대판 드라빔은 바로 돈이다. 우리의 가족을 지켜줄 것이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기서 벗어나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것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다. 살려주는 영을 의지하는 것이다. 나라는 자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다시 태어난 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 생각을 따르는 것이다.

 

영의 생각은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 생명력이 육체에까지 흘러가게 한다. 영의 생각은 생명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세상에서 천국을 나타나게 하는 능력이 있다. 영을 따르면 영이 주는 생각으로 인해 믿음의 확신이 마음으로부터 올라온다. 그 확신의 마음은 세상의 법이 이길 수 없는 법이다. 이를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원리를 알면 능력의 삶 속에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완벽한 자유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자들은 세상의 감옥이 가둘 수 없는 자들이다. 육체의 감옥이 가둘 수 없는 자들이다. 바울과 그 일행이 빌립보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지진이 나면서 감옥문이 열린 것은 바로 바울과 같은 완전한 자유자들은 세상이 가둘 수 없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의 완벽한 자유는 그의 육체와 혼이 모두 영을 따라갔을 때 나타난 자유이다.

 

36야곱이 노하여 라반을 책망할새 야곱이 라반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 허물이 무엇이니이까 무슨 죄가 있기에 외삼촌께서 내 뒤를 급히 추격하나이까 37외삼촌께서 내 물건을 다 뒤져보셨으니 외삼촌의 집안 물건 중에서 무엇을 찾아내었나이까 여기 내 형제와 외삼촌의 형제 앞에 그것을 두고 우리 둘 사이에 판단하게 하소서

 

하나님은 야곱으로 하여금 라반을 책망하게 하신다. 그것은 야곱이 참 하늘에 들어간 자이기 때문이다. 라반의 드라빔을 야곱의 가족이 훔쳤지만, 야곱이 라반을 책망한다. 하나님의 정의가 야곱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야곱의 편이다. 야곱이 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상적 관점에서 야곱이 잘못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야곱의 편에서 일하신다. 그래서 라반을 책망하도록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늘에 들어간 자들의 특권인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하여 당당하라는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강하고 담대하라는 것이다. 세상은 거짓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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