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참 하나님의 기업과 라헬을 만남(창29:1-9)

관리자님 | 2022.06.18 08:38 | 조회 465

74. 참 하나님의 기업과 라헬을 만남(29:1-9)

 

1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잘 때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육체를 가진 자 중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영적 관점에서 야곱은 세상에서 모든 하늘이 주시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기업이 상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위대한 하나님의 기업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제 그가 가는 곳은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의 사자가 함께하는 장소가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가는 곳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움직이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의 꿈을 통해 야곱의 진정한 영적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의식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처음으로 하란으로 갑니다. 양 떼가 있는 우물에 도착합니다. 먼 길을 걸어서 도착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의 하란에서의 삶을 즐겁게 해 줄 그의 아내가 될 사람, 라헬을 만납니다. 야곱은 자신이 라엘을 만나는 그 순간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른 채 그녀를 만납니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그곳에서 라헬을 만납니다. 그렇게 만난 라헬로 인해 네 명의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네명의 아내를 통해 야곱의 열두 아들이 탄생합니다.

 

야곱은 이삭의 축복을 받은 후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을 이삭을 통해 상속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그가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닥다리의 꿈을 통해 알려 주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여주신 것입니다. 이 야곱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인 자들은 세상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도 그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야곱의 축복을 받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하란에서의 야곱의 삶을 통해 그를 중심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십니다. 야곱이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난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기업 경영을 위해 돕는 배필을 붙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속자인 야곱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기업 경영을 위해 네 명의 돕는 배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중에서 라헬은 하나님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를 낳는데 최고로 고통 하였던 여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를 최고로 열망하는 어머니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우물가에서 야곱과 라헬은 하나님이 진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전혀 모른 채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은 모형의 하나님 기업의 상속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기업의 상속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형의 기업을 경영하면서 참 기업의 상속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참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실제 상속자로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이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이스라엘은 그를 애굽으로 쫓아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마태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아들을 위해 애곡하는 것이라(31:15, 2:18)”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참 기업의 상속자가 왔을 때 그 기업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애굽으로 쫓아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라헬은 기업을 이어갈 아들 낳기를 최고로 소망한 이스라엘 모든 여인의 대명사입니다.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나라의 상속자들인 어린 소년들을 보고 상속자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여인들을 슬퍼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이 말씀의 성취는 바로 이스라엘이 참 하나님 기업의 상속자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참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속자가 왔을 때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주류는 그분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 동참합니다. 상속자가 왔을 때 그 상속자를 죽이고, 그 나라를 자기 나라로 만들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생명이 있었으므로 주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하셔서

참 하나님 기업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기업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하신 그 하나님 기업의 실제적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가진 사람에게 직접 들어가셔서 그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업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속에서 참 하나님의 기업 상속자로 상속자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실 때 아름다운 이름, 예수를 기업으로 받았으므로 그 상속자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기업은 바로 예수라는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을 마귀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구원을 직접 우리 육체에 들어오셔서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속자의 삶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는 누구입니까? 바로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돕는 배필입니다. 라헬이 야곱의 돕는 배필로 하나님이 붙여 주셨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돕는 배필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이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참 하나님의 기업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 돕는 배필을 통해 성취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는 철저하게 돕는 배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옆에서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신부인 우리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세상 기업처럼 처음부터 아버지에게 소유하신 것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귀에게 잃어버린 것을 하나님의 이름, 즉 예수 이름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하나님 기업의 기초를 돕는 배필이 될 라헬과 함께 놓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이삭에게 그 하나님 기업을 상속받았으므로 그런 삶을 산 것입니다. 야곱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상속자인 야곱을 통해 수많은 하나님의 일들을 성취하였습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의 돕는 배필인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우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하나님의 일을 성취되고 있습니다. 돕는 배필인 신부가 할 일은 신랑의 뜻을 알고 우리 육체가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뜻을 알고, 우리 육체가 따라주는 것입니다. 신부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육체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신부는 신랑의 뜻을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 속에는 하늘에 속한 부분도 있고, 세상에 속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혼이라고도 하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감지하는 우리의 의식은 세상에 속하여 있는 존재입니다. 이 의식에 하늘의 생각이 들어가면 그 의식도 하늘 영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벧엘에서부터 야곱의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집니다. 야곱은 인제 그의 혼, 즉 그의 의식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막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그의 의식이 인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의식이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을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그의 하늘의 영역이 야곱의 의식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의식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그의 의식이 하늘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 의식은 그의 인격입니다. 따라서 그 의식이 무엇으로 채워지는가는 그가 어떤 인격을 가지는가를 좌우합니다.

 

한 사람이 의식이 학대와 같은 안 좋은 것으로 채워졌다면, 그의 인격은 학대받은 자의 인격이 형성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격은 그렇게 형성됩니다. 반대로 한 사람의 의식이 사랑으로 채워졌다면, 그의 인격은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형성되기 전 그 사람의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의식이 하나님의 영이 주는 그 생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인격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자가 될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그의 영이 새로 태어났고,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곧 하늘입니다. 그 하늘의 생각이 그의 혼, 즉 의식 속에 생각을 공급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의 의식이 하늘의 영의 생각을 이해하면, 즉 깨달으면, 그의 의식은 하늘의 것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식은 곧 하늘이 됩니다. 그 의식이 행동으로 옮겨 지면, 그의 육체까지 하늘 영역에 속하게 됩니다.

 

그런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육체도 그의 의식 속에 육체의 생각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육체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영의 생각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한번 영의 생각을 따라서 육체로 행하고, 두 번 행하고, 매일 그것을 행하면, 그 육체는 체질화가 됩니다. 이것이 경건의 훈련입니다. 세상의 운동선수들도 그의 의식의 생각속에 있는 것을 육체로 나타나도록 열심히 훈련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같이 경건의 훈련으로 영의 생각이 체질화되면, 그의 육체는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업을 운영합니다.

 

사람의 육체를 가진 사람은 쓴 뿌리를 낼 수도 있고, 단 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쓴 뿌리가 나면, 옆의 사람들을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된다고 합니다(12:15). 그리스도인은 쓴 뿌리를 내는 자들이 아니라 단 뿌리는 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자가 아니라 깨끗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속에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늘이 그들의 의식에 단물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변화되기 전까지는 쓴 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는 단 뿌리로 바뀌어서 수많은 사람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쓴 뿌리가 아니고 단 뿌리입니다.

 

 

 

1야곱이 길을 떠나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러 2본즉 들에 우물이 있고 그 곁에 양 세 떼가 누워 있으니 이는 목자들이 그 우물에서 양 떼에게 물을 먹임이라 큰 돌로 우물 아귀를 덮었다가 3모든 떼가 모이면 그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그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는 우물 아귀 그 자리에 다시 그 돌을 덮더라 4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형제여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하란에서 왔노라 5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 그들이 이르되 아노라 6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가 평안하냐 이르되 평안하니라 그의 딸 라헬이 지금 양을 몰고 오느니라

 

7야곱이 이르되 해가 아직 높은즉 가축 모일 때가 아니니 양에게 물을 먹이고 가서 풀을 뜯게 하라 8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떼가 다 모이고 목자들이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겨야 우리가 양에게 물을 먹이느니라 9야곱이 그들과 말하는 동안에 라헬이 그의 아버지의 양과 함께 오니 그가 그의 양들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더라

 

야곱은 벧엘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잘 때 하늘과 연결된 사닥다리를 보았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육체를 가진 자 중 하나님은 야곱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역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영적 관점에서 야곱은 세상에서 모든 하늘이 주시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기업이 상속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통해 위대한 하나님의 기업이 성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제 그가 가는 곳은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의 사자가 함께하는 장소가 됩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야곱이 가는 곳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움직이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의 꿈을 통해 야곱의 진정한 영적 삶을 알려주었습니다.

 

야곱은 그의 의식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 처음으로 하란으로 갑니다. 양 떼가 있는 우물에 도착합니다. 먼 길을 걸어서 도착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의 하란에서의 삶을 즐겁게 해 줄 그의 아내가 될 사람, 라헬을 만납니다. 야곱은 자신이 라엘을 만나는 그 순간이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른 채 그녀를 만납니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하란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그곳에서 라헬을 만납니다. 그렇게 만난 라헬로 인해 네 명의 아내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 네명의 아내를 통해 야곱의 열두 아들이 탄생합니다.

 

야곱은 이삭의 축복을 받은 후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을 이삭을 통해 상속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벧엘에서 야곱에게 그가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사닥다리의 꿈을 통해 알려 주었습니다. 야곱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여주신 것입니다. 이 야곱과 같은 하나님의 나라인 자들은 세상에서 일상적인 삶을 살아도 그것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야곱의 축복을 받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하란에서의 야곱의 삶을 통해 그를 중심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십니다. 야곱이 우물가에서 라헬을 만난 것은, 하나님이 야곱에게 기업 경영을 위해 돕는 배필을 붙여 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속자인 야곱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기업 경영을 위해 네 명의 돕는 배필을 붙여 주었습니다. 그중에서 라헬은 하나님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를 낳는데 최고로 고통 하였던 여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 기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를 최고로 열망하는 어머니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양 떼에게 물을 먹이는 우물가에서 야곱과 라헬은 하나님이 진행하실 하나님의 역사를 전혀 모른 채 처음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야곱은 모형의 하나님 기업의 상속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기업의 상속자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형의 기업을 경영하면서 참 기업의 상속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때가 되어 하나님 나라의 참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실제 상속자로 이스라엘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의 참 아들이 이 세상에 처음 왔을 때 이스라엘은 그를 애굽으로 쫓아냈습니다. 이 사건을 두고 마태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아들을 위해 애곡하는 것이라(31:15, 2:18)”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참 기업의 상속자가 왔을 때 그 기업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애굽으로 쫓아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라헬은 기업을 이어갈 아들 낳기를 최고로 소망한 이스라엘 모든 여인의 대명사입니다.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가는 이스라엘 나라의 상속자들인 어린 소년들을 보고 상속자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여인들을 슬퍼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의 이 말씀의 성취는 바로 이스라엘이 참 하나님 기업의 상속자 자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본래 참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을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그 상속자가 왔을 때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주류는 그분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에 동참합니다. 상속자가 왔을 때 그 상속자를 죽이고, 그 나라를 자기 나라로 만들려고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에게 생명이 있었으므로 주검에 머물러 있지 않고 부활하셔서

참 하나님 기업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기업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하신 그 하나님 기업의 실제적 성취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시작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를 가진 사람에게 직접 들어가셔서 그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업을 성취하고 계십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제자들 속에서 참 하나님의 기업 상속자로 상속자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세상에 오실 때 아름다운 이름, 예수를 기업으로 받았으므로 그 상속자의 삶을 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 기업은 바로 예수라는 이름으로 세상 사람들을 마귀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구원을 직접 우리 육체에 들어오셔서 진행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상속자의 삶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는 누구입니까? 바로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돕는 배필입니다. 라헬이 야곱의 돕는 배필로 하나님이 붙여 주셨듯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돕는 배필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이셨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참 하나님의 기업을 예수 그리스도와 그 돕는 배필을 통해 성취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우리는 철저하게 돕는 배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옆에서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성취하도록 돕는 일을 하는 자들입니다. 신부인 우리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신랑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세상 기업처럼 처음부터 아버지에게 소유하신 것을 상속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귀에게 잃어버린 것을 하나님의 이름, 즉 예수 이름으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하나님 기업의 기초를 돕는 배필이 될 라헬과 함께 놓으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이삭에게 그 하나님 기업을 상속받았으므로 그런 삶을 산 것입니다. 야곱은 몰랐지만, 하나님은 상속자인 야곱을 통해 수많은 하나님의 일들을 성취하였습니다. 이 시대 그리스도의 돕는 배필인 우리도 우리가 모르는 가운데 우리를 중심으로 거대한 하나님의 일을 성취되고 있습니다. 돕는 배필인 신부가 할 일은 신랑의 뜻을 알고 우리 육체가 그분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부는 신랑의 뜻을 알고, 우리 육체가 따라주는 것입니다. 신부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육체이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신부는 신랑의 뜻을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육체 속에는 하늘에 속한 부분도 있고, 세상에 속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혼이라고도 하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감지하는 우리의 의식은 세상에 속하여 있는 존재입니다. 이 의식에 하늘의 생각이 들어가면 그 의식도 하늘 영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벧엘에서부터 야곱의 삶은 완전히 다른 삶이 펼쳐집니다. 야곱은 인제 그의 혼, 즉 그의 의식이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막연히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자였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그의 의식이 인식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의 의식이 하나님을 인식한다는 것을 큰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그의 하늘의 영역이 야곱의 의식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의식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은 그의 의식이 하늘로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그 의식은 그의 인격입니다. 따라서 그 의식이 무엇으로 채워지는가는 그가 어떤 인격을 가지는가를 좌우합니다.

 

한 사람이 의식이 학대와 같은 안 좋은 것으로 채워졌다면, 그의 인격은 학대받은 자의 인격이 형성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격은 그렇게 형성됩니다. 반대로 한 사람의 의식이 사랑으로 채워졌다면, 그의 인격은 사랑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인격이 형성되기 전 그 사람의 환경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의식이 하나님의 영이 주는 그 생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의 인격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자가 될 것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그의 영이 새로 태어났고, 하나님의 영이 그의 영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것은 곧 하늘입니다. 그 하늘의 생각이 그의 혼, 즉 의식 속에 생각을 공급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의 의식이 하늘의 영의 생각을 이해하면, 즉 깨달으면, 그의 의식은 하늘의 것으로 채워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식은 곧 하늘이 됩니다. 그 의식이 행동으로 옮겨 지면, 그의 육체까지 하늘 영역에 속하게 됩니다.

 

그런데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의 육체도 그의 의식 속에 육체의 생각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육체의 생각을 따르지 말고, 영의 생각을 따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한번 영의 생각을 따라서 육체로 행하고, 두 번 행하고, 매일 그것을 행하면, 그 육체는 체질화가 됩니다. 이것이 경건의 훈련입니다. 세상의 운동선수들도 그의 의식의 생각속에 있는 것을 육체로 나타나도록 열심히 훈련합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이같이 경건의 훈련으로 영의 생각이 체질화되면, 그의 육체는 완전히 하나님의 나라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기업을 운영합니다.

 

사람의 육체를 가진 사람은 쓴 뿌리를 낼 수도 있고, 단 뿌리를 낼 수도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서 쓴 뿌리가 나면, 옆의 사람들을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된다고 합니다(12:15). 그리스도인은 쓴 뿌리를 내는 자들이 아니라 단 뿌리를 내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을 더럽게 하는 자가 아니라 깨끗하게 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그들 속에 하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하늘이 그들의 의식에 단물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에서 변화되기 전까지는 쓴 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는 단 뿌리로 바뀌어서 수많은 사람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쓴 뿌리가 아니고 단 뿌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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