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밧단아람으로 떠난 야곱(창28:1-9)

관리자님 | 2022.06.04 15:36 | 조회 859

72. 밧단아람으로 떠난 야곱(28:1-9)

 

1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또 야곱이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리브가는 에서가 야곱을 죽여 축복을 빼앗긴 한을 풀려 한다는 것을 알고 이삭에게 야곱의 아내는 가나안의 후손인 헷 족속에게서 말고 다른 족속에서 얻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야곱을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그곳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합니다. 이삭은 밧단아람으로 떠나는 야곱을 다시 축복합니다. 그 축복의 내용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신 땅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여인들은 이미 우상숭배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는 환경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들은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은 자의 돕는 배필이 될 자격이 있는 자들은 없었습니다. 가나안 족속이라는 출신 때문에 그들이 하나님의 기업을 도울 수 있는 자격자들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 족속 중에도 이후 라합과 같은 자들은 그리스도의 계보에 들어간 자도 있습니다. 당시 가나안 여인들은 우상숭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업이 야곱을 통해 현실에서 나타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돕는 배필로는 당시의 가나안 족속은 맞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상상 속에 존재하는 기업이 아닙니다. 어떤 형체가 없는 상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영적 기업이지만 그 영이 창조하는 기업이 항상 존재합니다. 그 영적 기업을 경영하는 자들이 육체를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육적 기업은 또한 언제나 영적 기업을 성취하는 역할을 하는 속성을 가집니다. 사실상, 눈에 보이는 육적 기업이지만 영적 기업에 속합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보는 육적 기업은 영적 기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 이후부터 영적 기업으로 존재했었던 그 하나님의 기업이 눈에 보이는 기업으로 나타내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가나안에 두지 않고 밧단아람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5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야곱이 밧단아람으로 왔습니다.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축복을 받았으면, 가나안에서 축복받는 삶이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냅니다. 그 보내는 과정은 죽음을 피해 도망하는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 축복을 받은 후 바로 뭔가 될 것 같은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큰 기적을 경험한 자들은 곧 자신에게 뭔가 하나님의 육적 축복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찾아온 것은 죽음을 피해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 속의 인물들을 보면 대부분 이런 삶이 펼쳐졌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도 사무엘에게 왕의 기름 부음을 받은 후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될 줄 알았지만, 20년간 도피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 갈라지는 큰 기적을 보고, 춤을 추면서 기뻐했지만, 곧 마라의 쓴 물을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업을 육체를 가진 자들에게 맡겨 운영하도록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면서 경영해 가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운영하십니다. 그런데 그 기업은 육체를 가진 자들을 통해 운영하십니다. 하나님의 기업은 육체를 가진 자들을 구원하는 것이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육체는 영을 탄생시키는 밭과 같습니다. 그 밭에 씨를 뿌리는 자는 육체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씨를 뿌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다음, 하나님의 영이 육체를 가진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적인 씨를 육체를 가진 사람 속에 두시고, 그 사람의 생각을 통해 그 육체가 행동하도록 하심으로써 사람의 육체에서 영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에게 맹세로 약속하신 그 하나님의 기업이 이 시대 성취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를 가진 야곱의 족속들을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야곱과 같은 축복받은 자들을 통해 성취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육체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소욕이 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소욕은 영을 거스르기 때문에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 육체가 영의 생각을 거침없이 따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육체의 소욕도 생각을 통해 오고, 영의 욕구도 생각을 통해 옵니다. 그 선택은 자유의지를 가진 자의 몫입니다. 그들이 영의 생각을 선택하여 가면 천국이 그들을 통해 창조되지만, 육체를 따르면 창조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의 몫입니다.

 

기업의 경영권은 야곱이 그것을 상속받은 것처럼 이미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넘어왔습니다. 따라서 그 기업의 경영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믿음으로 응답만 하면 천국은 창조됩니다. 그 천국의 창조는 바로 그것을 경영하는 제자들에게 유익입니다. 따라서 믿음의 응답은 곧 응답한 그에게 영과 육에 유익이 됩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영적 기업과 육적 기업도 성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밧단아람에서의 삶은 도피 생활이지만 선을 이루는 삶이 됩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은 자의 삶은 그 삶 자체가 선을 이루는 삶입니다. 야곱의 밧단아람에서의 삶은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초를 세우는 삶이 됩니다. 야곱과 같이 축복받은 자의 삶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래서 축복받은 자들은 현실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면, 그 길이 현재는 도피의 삶을 사는 것 같지만, 그 삶이 영적 삶이 됩니다. 영적 생산적 삶이 됩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성취하는 삶이 됩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은 야곱의 축복과 같은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삶은 산자의 삶이 됩니다. 그들의 허물 된 삶은 없어지고, 산자의 삶은 영원히 보존됩니다. 야곱의 삶처럼 현실이 힘들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기업을 성취하는 생산적인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을 영적으로 산 자라고 합니다. 그 하는 일이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삶이 됩니다. 야곱은 20년간 속는 삶을 살았지만, 그 결국은 성공하는 삶이 됩니다. 산자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축복을 받은 자들은 곧 영적 축복의 삶이 시작됩니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그가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기업을 성취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이스라엘 12지파를 탄생시켰지만,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탄생시킨 것은 영적 관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를 통해 열두 제자를 세운 것과 같은 육적 이스라엘 나라의 기초를 놓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열두 제자를 선택하여 세움으로써 영적 이스라엘 나라의 기초를 세운 것 같이 야곱은 육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동서남북의 문에 야곱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들어가게 됩니다. 이는 이스라엘을 열두 지파가 사람들이 거룩한 성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문을 건설했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인도하신 이러한 산자의 역사를 알지 못한 채 그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도 이같이 성령이 자신을 통해 하시는 일을 모두 알지 못합니다. 그냥 시키는 대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산 자들입니다. 그들이 그와 같은 삶을 살았을 때 그들의 삶에 대한 평가는 엄청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세례를 받은 후의 삶이 어떻게 평가될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갈릴리에서 만난 다음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 153마리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를 제자로 부르실 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는 것을 물고기 153마리를 잡는 것을 통해 보여주었고, 그 후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그 성령이 베드로에게 들어가니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산 자입니다. 베드로는 산 자로 그 육체는 죽었지만, 오늘도 사람을 낚고 있습니다. 이것이 산 자들의 삶입니다. 죽은 자들의 삶은 육체가 죽으면 끝나지만, 산 자들의 삶은 육체가 죽어도 산 자의 삶을 살면서 생산 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은 산 자의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산 자들은 영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삼손에게 영이 역사할 때와 역사하지 않을 때를 보여 주었습니다. 삼손에게 영이 역사할 때는 신비한 힘이 솟아납니다. 밧줄을 불에 탄 밧줄 풀 듯이 풀고, 나귀 뼈로 블레셋 사람 300명을 이깁니다. 아무도 삼손을 당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에게 영이 역사하지 않을 때는 평범한 사람이 되어 블레셋에게 잡힙니다. 그런데 성령세례를 받은 자들이 항상 착각하는 것이 죽은 자와 산 자를 착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겉사람은 죽은 자인데 그 죽은 자를 자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산 자가 있는데, 그것이 자신인데 죽은 자를 자기로 생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나로 생각하기 때문에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산 자입니다. 두려움이 있을 수 없는 산 자입니다.

 

산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영적인 눈을 뜬 자들입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어서 눈을 뜬 사건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장님을 눈 뜨게 하였다고만 생각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눈을 저 실로암에서 눈을 씻어 눈을 뜨게 하시는 것처럼 영적 눈을 뜨게 하시는 분이라 생각하고, 베데스다 못의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을 오래된 병자를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안식일에 관한 생각의 틀을 부순 그것으로 생각하고, 수가성 여인을 만나 진정한 예배를 알려주신 것을 사마리아에 복음 전한 것으로만 생각지 않고 자신의 두려움을 피해 의지할 자가 남편이라고 생각하여 6번이나 결혼한 여인이 진정한 남편을 만난 사건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바로 죄에 빠져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산 자들은 세상과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육적인 데서 영적인 것으로 그 생각이 바뀝니다.

 

에서는 자기의 부인들이 아버지를 기쁘게 하지 못하는 줄로 알고, 또 이스마엘의 딸들로 부인을 맞이합니다. 축복받지 못한 자의 행동은 열심히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행동하지만 쓸모없는 행동이 됩니다. 죽은 자의 행동입니다. 그가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고 여러 가지 노력하지만 만족시키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항상 배고픈 삶이 그에게 펼쳐집니다. 허기진 삶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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