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의 투옥(창39:11-23)

관리자님 | 2023.02.11 16:24 | 조회 891

106. 보디발의 아내와 요셉의 투옥(39:11-23)

 

11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을 취하려 하였다. 이는 요셉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자신의 정욕으로 소유하려고 한 것이다. 이는 세상 사람들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보디발의 아내는 정욕적 세상 사람들을 대표하는 자이다.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위로 하늘의 아름다움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고 하였다. 하늘의 아름다운 속성들은 세상의 정욕적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정욕적 사람들은 하늘의 아름다움의 결과물들은 취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그것의 근본은 취할 수 없다. 요셉의 통해 나타나는 집안의 번성과 같은 하늘나라의 결과물은 세상의 정욕적 사람들이 취할 수는 있으나 그 결과물을 창조해내는 근본인 요셉을 취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세상의 정욕적 사람들은 그 근본이 정욕적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것은 세상의 정욕적인 사람들이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의 것은 영적이기 때문이다.

 

요셉에게서 나타난 하늘의 아름다움은 하늘에 들어간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아름다움이다. 요셉은 그가 이스라엘이라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갔으므로 그에게서 하늘의 아름다움이 솟아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의 중심인 요셉을 취하려 하였지만 취할 수 없었다. 혹 요셉을 취했다 할지라도 그는 진정으로 요셉이 가지고 있었던 아름다움을 솟아나게 하는 그 근본은 소유할 수 없는 자이다. 그는 하늘나라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요셉과 같이 하늘의 아름다움을 솟아나게 하는 그 근본은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을 때 그 근본이 된다. 그 근본은 사람들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 근본은 말씀이기 때문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에 그에게서 하늘의 아름다움이 솟아난 것이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보여서 보디발의 아내는 그것을 취하려 하였던 것이다.

 

요셉과 같이 세상에 하늘의 아름다움을 나타나게 하는 자들은 이스라엘에 속한 자가 하늘의 말씀을 가질 때라고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 이스라엘이라는 하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번제단을 통과해야만 한다. 구약시대의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통과하였지만, 성령의 시대 번제단은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써 통과하게 된다. 번제단을 통과한 자들, 즉 하늘에 올라간 자들이 하늘의 말씀을 가지기 위해서는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대제사장을 통해서 그 말씀을 전달받았다. 그런데 신약시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든지 지성소 안에 들어가 하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것은 번제단을 통과하였고, 지성소까지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들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다음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은 지성소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어떻게 그것을 들을 수 있는가? 성령의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만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그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성령이 그것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에 의해 깨달았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어떤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은 그에게서만 성령이 그 말씀을 성취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셉이 열두 아들 중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요셉을 통해서만 그 말씀을 성취하는 것처럼 한 그리스도인이 하나의 말씀을 깨달았다면 깨달은 그 사람을 통해 그 말씀을 성령이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 말씀을 이루실 때 그 말씀을 깨달은 그 사람에게서는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가 세상에 나타나게 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는 신분상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만, 그 하나님의 아들의 영적 권세는 그에게 말씀이 왔을 때 나타난다. 말씀이 그를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과 혼과 육체가 그 말씀을 이루는데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졌을 때 이를 성령이 이루시는 것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그 사람의 육적 생각이다. 그 육적 생각은 그 말씀이 그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에 부정적이다. 하나님은 부정적인 생각, 즉 육적 생각이 나오는 그 혼과 육체를 훈련하신다. 그 혼과 육체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도록 훈련을 시키신다. 그리스도인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그는 신분상 하나님의 아들이다.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는 옛사람의 육체 가운데서 살아가므로 그 옛사람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그 옛사람은 그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때 이미 죽었다고 선포하는데 그것을 살아있는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훈련을 시키시는 것은 그런 옛사람의 생각에서 벗어나 그의 혼과 육체까지도 성령의 전,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것을 깨달으면 그것이 겸손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이 교만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의 혼과 육체까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육체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한 것이다.

 

이렇게 경건의 훈련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그것이 그래서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일어난다. 그러면 그를 통해 세상에 하늘의 아름다움이 표출된다. 그는 세상에서 하늘의 아름다움을 표출시키는 근본이며 중심이 된다. 그는 곧 하나님이 나라가 되는 것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보여준 것이 바로 그 하나님의 나라이다. 요셉은 곧 하늘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표출시키는 하나님의 나라였다. 이 나라는 정욕적인 세상 사람들이 결코 취할 수 없는 그런 나라이다. 어떤 명철한 철학자들도 취할 수 없는 그런 나라이다. 시대별로 수많은 철학자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자신의 한평생을 바쳤지만, 그것을 깨달을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하늘에 들어오지 못했고, 그래서 지성소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정욕적인 것에 머물러 있으면서 하늘의 것을 찾는 자들이었다. 이단들이 하늘에 들어오지 않은 채 성경의 말씀을 취하려는 것도 바로 보디발의 아내와 같은 것으로 그들이 취한 것 같지만 가짜를 가진 것에 불과하다.

 

20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에게는 그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이루는 영의 역사가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요셉은 그의 환경이 애굽으로 팔려가는 환경에 처하기도 하고, 보디발의 집의 종이 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환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말씀의 사람들은 세상의 어떤 안락한 환경에 정착하는 존재들이 아니라 세상이 환경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과 함께 이루는 자들이다. 성령이 그를 이끌어가서 그에게 주어진 말씀을 이루는 과정에서 환경이 이렇게 바뀌기도 하고, 저렇게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도 세상에서의 삶의 중심은 세상의 어떤 안락한 환경에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깨달은 말씀을 성령이 이루시는 삶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은 그들이 어떤 환경에 처해있던지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함께하는 자들이 된다.

 

요셉은 감옥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셨다. 그가 보디발의 가정 총무의 일을 할 때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였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도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 하였다. 그것은 요셉의 삶의 환경은 바뀌지만, 그 바뀌는 환경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에게 현재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느냐는 것이다. 성령이 그이 삶을 인도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성령이 함께하신다면 그의 환경은 말씀의 사람들에게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의 환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는 한 과정이다.

 

하나님 말씀의 사람들, 즉 하나님의 아들들은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들이다. 세상의 사람들은 권모술수에 능한 자들이다. 그런 자들은 보디발의 아내처럼 말씀의 사람들의 혼과 육은 건드릴 수 있다. 본래 마귀의 일은 말씀의 사람들의 혼과 육을 건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도 하였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사람들은 이런 세상의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런 권모술수를 펼치는 사람들과 같이 대항하여 싸울 필요가 없고, 인내하면 그의 환경이 서서히 그 자신의 편으로 바뀌게 된다. 요셉의 인내는 그의 감옥생활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는 계기가 되었다. 세상은 요셉과 같은 사람들을 압제할 수는 있으나 그에게서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막을 수는 없다. 여호와 하나님은 감옥에서도 요셉의 삶이 형통하게 하였고, 결국 그곳에서 애굽의 국무총리로 세우시는 일을 진행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가 결국은 세상도 통치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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