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생명의 속성과 유다의 고백(창44:25-34)

관리자님 | 2023.06.24 13:24 | 조회 203

125. 생명의 속성과 유다의 고백(44:25-34)

 

25그 후에 우리 아버지가 다시 가서 곡물을 조금 사오라 하시기로 26우리가 이르되 우리가 내려갈 수 없나이다 우리 막내 아우가 함께 가면 내려가려니와 막내 아우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그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음이니이다 27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우리에게 이르되 너희도 알거니와 내 아내가 내게 두 아들을 낳았으나 28하나는 내게서 나갔으므로 내가 말하기를 틀림없이 찢겨 죽었다 하고 내가 지금까지 그를 보지 못하거늘 29너희가 이 아이도 내게서 데려 가려하니 만일 재해가 그 몸에 미치면 나의 흰 머리를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하리라 하니 30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거늘 이제 내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에 아이가 우리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31아버지가 아이의 없음을 보고 죽으리니 이같이 되면 종들이 주의 종 우리 아버지가 흰 머리로 슬퍼하며 스올로 내려가게 함이니이다

 

32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34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유다는 베냐민이 이스라엘에게는 어떤 아들인지 요셉에게 설명한다. 아버지 이스라엘의 생명과 아이 베냐민의 생명은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고 하였다. 이는 아버지의 생명과 하늘의 생명이 하나라는 것이다. 이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하나로 묶여 있는 생명의 끈은 바로 영적 세계, 즉 하늘나라에서의 생명의 속성을 예표한다. 하늘나라의 생명 속성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의 생명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하늘나라의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하나로 묶여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가 죽었어도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다시 살아나셨다. 하늘나라에서의 아버지와 아들의 생명은 하나로 묶여 있다.

 

하늘나라의 아버지 생명은 어떤 생명인가? 그것은 살려주는 영이시다. 하늘 아버지의 생명 속성은 살려주는 영으로 만물을 소성시키는 능력이다. 이 생명이 로고스의 말씀 안에 있고, 이 생명은 곧 사람들의 빛이라고 요한복음(1:4)에서 말한다. 이 생명이 있으면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다. 그 생명은 살리는 영이기 때문이다. 이 생명이 범죄한 죄인에게 들어오면 그 범죄한 죄인의 혼과 육체를 죽이고, 그 영을 살리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이 생명은 범죄한 사람들의 빛이 된다. 범죄한 사람들은 반드시 이 생명을 받아야만 살아난다. 이 생명은 그 범죄한 자의 모든 육적 속성을 죽이고, 영을 탄생시키고 그의 영 속에 함께 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때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바로 이런 속성 때문이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이 그에게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그의 육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만, 그의 영은 탄생한다. 그 영은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 되고, 그 영은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들에게는 세상에서 하늘의 생명력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죽어서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라라 외쳤을 때 그 외치는 그것은 로고스의 말씀이고, 그 말씀대로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걸어 나오는 것은 생명의 능력이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속성이 바로 생명의 속성이다. 이 생명의 속성은 이렇게 육체의 죽음도 살릴 수 있고, 영의 죽음도 살릴 수 있는 속성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생명의 표적이 나타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생명을 받았으므로 세상에서 만물을 소성시키는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것이 생명의 성령의 법이다. 이 생명을 가진 자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일이 일어나고, 황무지가 옥토로 바뀌고, 죽음의 분위기기 생명의 분위기로 바뀌는 것이, 이 생명 때문이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과 연결되어 세상에 그 생명이 나타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 겉으로는 다 같이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생명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분명하게 갈린다. 생명이 없는 자는 아무런 능력 있는 자의 삶이 나타나지 않지만, 생명 있는 자는 능력을 창조하는 삶을 살게 한다. 다 같은 사람이지만 그 생명을 가진 자들에게는 특이한 표적이 나타난다. 그들이 가진 그 생명은 살려주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꼭 죽은 자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무 생명에 생명이 들어가게 하는 속성이다.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나게 하는 그런 생명력이다. 그런 생명이 넘치는 자가 어떤 조직에 들어가면 그 조직에 생명력이 나타나고, 씨를 뿌리면 풍성한 수확을 하고, 가정에 생명력이 작동하면 가정이 회복되고, 관계에 생명력이 작동하면 관계가 회복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 그에게서 작동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죽은 나사로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한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말하면 그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나온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작동한 그 생명이 이 시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리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런 생명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로 하나님과 우리는 하나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삼위일체 속으로 들어간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 하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가 천국이며, 하나님이 나라이다.

 

33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유다는 요셉에게 이런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생명이 하나로 묶여 있다고 하면서 자신이 베나민의 담보가 되겠다고 한다. 유다가 유다가 된 거대한 결정이다. 유다의 이 고백은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생명을 하나로 묶은 그 생명의 끈을 형제들 간에도 적용되도록 확장하는 고백이다. 이스라엘 나라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 간 관계를 창조하는 고백이다. 이스라엘 나라에 속한 백성들 간 관계는 이 하늘나라의 생명의 끈으로 연결된 관계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이런 영적 환경이 펼쳐지는 나라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셉이 꿈을 꾸고 형들에게 말을 했을 때만 하더라도 형들은 꿈을 자랑하는 요셉을 죽이려고 했던 환경이었다. 이제 이스라엘 아들들 간의 그 환경은 형제를 서로 살리려는 환경으로 바뀌었다. 유다의 담보 고백으로 그런 환경을 창조하는 자가 된 것이다. 유다는 이 고백으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 장자 지파가 되고 자기 지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는 최고의 직분을 감당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성취하시기 위해 육체를 가진 사람들을 선택하셨다. 그렇게 선택된 자들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이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셨다. 야곱 이후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만 통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는데 이 열두 아들 중 하나님의 뜻을 최고로 성취하는 자는 유다와 같은 속성을 가진 자이다. 이스라엘이 열두 지파는 모두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지만, 그중에서도 크게 쓰임을 받는 자들도 있고, 작게 쓰임을 받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제 세상에서의 하늘나라 이스라엘 나라가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 나라에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자들이다. 그 일을 위해 선택된 자들이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 데 가장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바로 유다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유다는 이스라엘 나라의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최고의 영적 분위기를 형성하였다. 이스라엘 나라의 환경은 바로 이런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분위기는 생명의 환경이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연결된 환경이다. 유다와 같이 생명의 환경을 창조하는 자들이 하늘나라의 중심적 존재가 된다. 유다는 이스라엘와 베냐민의 생명이 하나로 묶여 있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한 것이다. 그것은 끊을 수 없는 것이므로 자신이 담보가 되어 그 생명의 끈을 지켜내려고 한 것이다. 이것이 이스라엘 나라의 형제간 사랑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환경은 바로 이런 환경이다. 사랑의 환경이다. 생명으로 연결된 환경이다.

 

복음의 시대에도 교회로 모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생명의 환경에서 살라는 것이다. 세상의 환경은 사망의 환경이다. 서로 죽이는 환경이다. 그런데 교회는 생명의 환경이다. 서로 살리는 환경이다. 그 교회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므로 그 생명의 끈으로 교회의 환경을 조성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이 교회의 생명의 환경을 조성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이 조성하신 그 나라에서 사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교회의 생명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자들은 유다와 같은 자가 된다. 내가 내 이웃의 선한 이웃이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내가 내 이웃에게 생명의 환경이 된다.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인 나는 세상 사람들의 환경이다. 생명의 환경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 환경에 들어오면 그들에게 생명이 들어가는 환경이다. 세상이 이런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진 생명의 환경으로 들어오면 그 생명을 환경을 경험하도록 하나님의 아들들은 최고의 환경을 창조하는 자들이다.

twitter facebook google+
목록으로
댓글 0 | 엮인글 0
1,009개 (3/51페이지)
번호
설교제목
설교자
동영상
다운로드
MP3
날짜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7.29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7.22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7.15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7.08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7.02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6.24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6.17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6.11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6.03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5.27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5.20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5.13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5.06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4.28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4.22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4.14
박기묵
동영상
다운로드
MP3
2023.04.08
박기묵
MP3
2023.04.01
박기묵
MP3
2023.03.25
박기묵
MP3
2023.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