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야곱과 베냐민의 연결 끈(창44:14-24)

관리자님 | 2023.06.17 21:50 | 조회 291

124. 야곱과 베냐민의 연결 끈(44:14-24)

 

14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

 

18유다가 그에게 가까이 가서 이르되 내 주여 원하건대 당신의 종에게 내 주의 귀에 한 말씀을 아뢰게 하소서 주의 종에게 노하지 마소서 주는 바로와 같으심이니이다 19이전에 내 주께서 종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아버지가 있느냐 아우가 있느냐 하시기에 20우리가 내 주께 아뢰되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으니 노인이요 또 그가 노년에 얻은 아들 청년이 있으니 그의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가 남긴 것은 그뿐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그를 사랑하나이다 하였더니 21주께서 또 종들에게 이르시되 그를 내게로 데리고 내려와서 내가 그를 보게 하라 하시기로 22우리가 내 주께 말씀드리기를 그 아이는 그의 아버지를 떠나지 못할지니 떠나면 그의 아버지가 죽겠나이다 23주께서 또 주의 종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 막내 아우가 너희와 함께 내려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기로 24우리가 주의 종 우리 아버지에게로 도로 올라가서 내 주의 말씀을 그에게 아뢰었나이다

 

유다와 그의 형제들은 가나안으로 가다가 요셉의 집으로 다시 왔다. 그들의 곡식 자루에서 요셉의 은잔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요셉이 이에 대하여 그들에게 추궁하자 유다는 우리는 이 일에 정직하지만, 하나님이 자기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자신들은 모두 요셉의 노예가 되겠다고 하였다. 이에 요셉은 자루에서 잔이 발견된 자, 곧 베냐민만 종이 되고 나머지는 올라갈 것이라 하였다. 이는 베냐민이 애굽에 있고, 그들이 가면 곡식을 그들의 식구들이 곡식으로 얼마간 연명을 할 수 있고, 베냐민과 끈이 연결된 이스라엘이 애굽으로 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요셉의 생각이었다. 사실상, 하나님이 요셉에게 주신 지혜였다. 요셉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자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그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과 한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요셉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스라엘과 그가 연결된 끈을 만들려고 하였다. 하늘의 사람들 간 연결된 고리와 같은 것이다. 세상에는 이스라엘이라는 하늘나라가 시작되었다. 이 나라는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시작된 나라이다. 이 나라는 범죄한 사람의 육체를 입은 자들이 구성원이 되는 나라이다. 그 나라의 사람들을 우리는 약속의 자녀라 부른다. 하나님은 그 나라의 사람들에게만 함께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다. 그 나라가 세상에 나타나 애굽이라는 세상의 한복판에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다. 이 나라의 사람들 간에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 세상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끈이지만, 하늘나라 사람들 간에는 하나님이 연결하신 고리이다. 사랑의 고리, 즉 사랑으로 연결한 끈이다.

 

이는 하나님이 아니면 끊을 수 없는 끈이다. 이스라엘 나라는 이러한 끈으로 연결되어 운영되는 나라이다. 이후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기업을 나눌 때 아들은 아버지의 기업을 이어가는 자가 된다. 하나님의 기업을 물려받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단순한 세상 나라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 끈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하는 연결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율법에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다. 그 부모는 하나님이 그 자신과 부모를 연결하셨고, 그 부모가 가진 약속의 기업을 그 자녀가 물려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베냐민과의 관계의 끈은 하나님이 연결하신 끈이므로 세상의 어떤 존재도 끊을 수 없는 그런 영적인 끈, 즉 하늘의 끈이다. 그러므로 베냐민의 죽음은 이스라엘의 죽음과도 같다. 유다는 아버지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끈을 알았기 때문에 베냐민만 종이 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종이 되겠다고 한 것이다. 베냐민만 애굽에 홀로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관계는 세상에 나타난 하늘나라의 부모와 아들의 관계와 같다. 아들은 아버지의 하늘나라의 기업을 물려받을 자이다. 이스라엘의 하늘나라 기업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기업이다. 하늘나라는 약속의 기업을 물려받는 나라이다. 그 약속의 기업은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탄생시키기 위한 거대한 하나님이 역사이다. 이스라엘와 그 가족은 그 거룩한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끈이 끊어진다는 것은 기업이 끊어지는 것이며, 기업이 끊어진다는 것은 그들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복음의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인 그 아버지와 아들 간 하늘의 끈으로 연결된 존재들이다. 처음 시작되는 이스라엘 나라의 아버지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관계는 하늘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예표하는 것으로 결코 끊어질 수 없는 그런 속성이다. 세상의 어떤 존재도 그 끈을 끊을 수 없다. 이는 로마서에서는 나오는 말씀처럼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자들, 현재 일이나 장래 일, 능력, 높음, 깊음, 다른 어떤 피조물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다고 말씀한다(8:35~39). 복음의 시대 아버지와 아들들 간 연결된 끈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씀한다. 이 사랑의 끈은 어떤 존재도 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끈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음으로 나타난 신비한 사랑의 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나타난 사랑의 끈이라는 의미이다.

 

복음의 시대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들과의 관계는 이런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그것을 알 수 없는 어떤 존재물, 피조물도 그것을 끊을 수 없다. 그들은 그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직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과 그 아버지의 아들들만이 알 수 있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모르는 어떤 피조물도 그것을 끊을 수 없다. 이 사랑의 끈은 그것을 아는 자들만 아는 그런 신비한 비밀의 끈이다. 이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그런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육체의 몸을 입고 세상 가운데 존재하는 자들이다. 매우 특이한 존재들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기업을 받고 그것을 사랑으로 경영하는 자들이다. 사랑으로 경영한다는 것은 하나님 사랑이 그 아들들을 통해 흘러나감으로써 그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이 없이는 하늘의 기업이 경영되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경영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하나님의 기업을 경영하는가? 하나님 아버지와 연결된 그 끈으로 경영한다. 사랑의 끈으로 경영한다. 그냥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아들들을 통해 나가도록 하기만 하면 된다. 육체를 가진 아들의 의지만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아들들의 의지가 안 들어가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혼을 하늘의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영, , 육을 가진 존재이다. 성경에서는 라는 존재를 표현할 때 혼을 말한다. 실상은 나의 영이 진정한 나이지만, 그 영은 나의 혼이 감지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므로 실상은 혼을 나로 이야기한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겠는가라고 고백했을 때의 는 바울의 혼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혼의 영역을 하나님 사랑으로 채우면 나의 의지가 들어가지 않고 그 하나님이 나를 통해 물리적인 세계로 표출되신다.

 

요한삼서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라고 했을 때 영혼이라는 단어는 프시케(soul)”이다. “프뉴마(spirit)”가 아니다. 이는 사람이 범사에 잘되는 것은 프시케(soul)”가 잘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혼의 영역이 안정되고 평안하고 만족하면 범사가 잘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형통하고 싶으면 혼의 영역이 잘되도록 하면 된다. 그런데 그 혼의 영역은 언제나 육체의 정욕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탐욕으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 그 탐욕의 채워진 혼은 언제나 올무에 걸릴 수 있는 존재이다. 사탄은 그 탐욕으로 채워진 혼의 사람들 앞에 올무를 놓아 사망으로 데려간다. 그것이 사탄의 일이다. 사람들은 그 혼, 즉 마음을 다스리기 위하여 수양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 잠시 다스려지는 것 같지만, 육체의 정욕이라는 본능을 제어한다는 것을 거의 불가능이다. 불교는 석가모니가 그것을 제어했다고 해서 열반의 반열에 들어갔다고 하지만 영적 관점에서 볼 때 타락한 인간은 타락의 근본 속성을 제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혼의 영역이 어떻게 잘되도록 할 수 있는가? 그것은 혼 속에 영의 생각을 채울 때이다. 혼 속에 영의 생각, 성령의 생각이 채워지면 그의 혼과 성령의 생각은 하나가 된다. 그러면 그의 혼, 즉 그는 성령과 한마음이 되고, 그가 하는 일에 형통함이 일어나고, 강건함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혼을 영의 생각으로 가득 채우면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채워져 그 혼이 만족함을 가진다. 그러면 부족함이 없으므로 현실적으로 가난해도 자족하는 삶을 살며, 탐욕의 속성이 나타나지 않아 세상의 올무에 빠지지도 않는다. 따라서 세상의 탐욕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없는 자가 되므로 그 육체도 평안하게 되어 육체의 질서도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이런 영과 혼과 육의 관계를 정확히 알면 영적 분별력이 생기고 그러면 세상에 형통함이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나의 혼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흘러가게 되고, 그러면 그들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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