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요셉이 바로를 만남(창41:14-24)

관리자님 | 2023.03.11 17:50 | 조회 383

110. 요셉이 바로를 만남(41:14-24)

 

14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17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꿈에 나일 강 가에 서서 18보니 살지고 아름다운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19그 뒤에 또 약하고 심히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오니 그같이 흉한 것들은 애굽 땅에서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이라 20그 파리하고 흉한 소가 처음의 일곱 살진 소를 먹었으며 21먹었으나 먹은 듯 하지 아니하고 여전히 흉하더라 내가 곧 깨었다가 22다시 꿈에 보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23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더니 24그 가는 이삭이 좋은 일곱 이삭을 삼키더라 내가 그 꿈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내게 풀이해 주는 자가 없느니라

 

바로가 특이한 꿈을 꾼 것은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를 침범한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세상 나라의 침범은 생각 속에 침범하는 것이다. 당시의 세상의 왕인 바로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꿈으로 침범하였다. 바로의 생각을 사로잡는 것으로 침범한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씀의 나라이다. 말씀의 나라는 생각의 나라이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왕의 생각에 침범하였다. 바로는 이 꿈을 꾼 후 점술가에게 말하였으나 그것을 풀이해 주는 자가 없었다. 그 꿈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므로 오직 성령의 사람만이 풀이할 수 있는 꿈이다. 이 꿈은 어떤 꿈의 해석법으로 꿈을 풀이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 지식으로는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민에 빠지게 되었고, 술관원장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요셉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14이에 바로가 사람을 보내어 요셉을 부르매 그들이 급히 그를 옥에서 내 놓은지라 요셉이 곧 수염을 깎고 그의 옷을 갈아 입고 바로에게 들어가니

 

바로 왕은 사람을 보내 요셉을 불렀다. 왕이 요셉을 부르자 옥은 그 요셉을 내 놓았다. 요셉이 수염을 깍고, 그의 옷을 갈아입고 바로에게 들어갔다. 요셉의 삶이 옥의 삶에서 왕궁의 삶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가 꾼 꿈은 하나님이 바로가 잠잘 때 그에게 집어넣은 하나님의 생각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말씀을 바로는 해석할 수 없었다. 이집트의 어떤 지혜자도 그것을 해석할 수 없었다. 그것은 오직 요셉만이 해석할 수 있다. 그 하나님의 생각이 바로를 통해 요셉에게 전달되었다. 이는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신 것은 바로가 그 꿈을 요셉에게 전달하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은 바로를 통해 요셉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바로를 통해 요셉에게 주신 것이다.

 

15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한 꿈을 꾸었으나 그것을 해석하는 자가 없더니 들은즉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푼다 하더라 16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바로는 요셉을 만나 자신이 꾼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는데 너는 그 꿈을 능히 푼다고 들었다고 하자 요셉은 자신이 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대답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바로의 꿈을 해석할 것이라 대답한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는 성령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꿈에 대한 요셉의 생각은 곧 하나님이 생각이었다. 요셉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성령의 사람들은 그것을 스스로 안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임을 분별한다는 것이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자였고, 특히 꿈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구약시대 성령이 임한 자들은 그들의 혼, 즉 생각 가운데 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되었다. 그래서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이사야, 예레미야, 엘리야, 엘리사 등과 같은 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선지자들은 그것을 알았다. 요셉도 하나님의 영이 그의 혼에 함께하고 하나님을 대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요셉은 하나님이 대답하실 것이라고 말씀한 것이다. 그런데 구약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의 혼에 임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임하였다가 떠나갈 수 있다. 왕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이 바로 그런 자였다.

 

그러나 성령의 시대 사람들은 거듭나게 되면 영이 태어나고, 성령이 그의 영에 임하게 된다. 거듭나면 성령과 사람의 영이 하나가 된다. 거듭난 사람은 그 본체가 영이 되고 그의 혼과 육은 그 영의 집이 된다. 거듭난 사람은 그의 예전의 혼과 육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이제 그의 혼과 육은 영의 집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거듭난 사람은 근본적으로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예전에 아담의 범죄로 인해 끊어졌던 커뮤니케이션의 통로가 다시 열리게 된 것이다. 그 영이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돕는 자가 성령이시다. 성령의 생각은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하므로 그 성령이 우리 영속에 함께 살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알려주신다. 구체적으로 깨달음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은 거듭난 사람과 의사소통할 때는 반드시 깨달음의 말씀을 통해 교통하신다.

 

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의 문제는 그 속에 성령이 있지만, 그 옛사람의 습관대로 산다는 것이다. 거듭난 그의 혼이 그 속의 성령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는 그 사람이 로고스의 말씀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령은 로고스의 말씀을 거듭난 사람의 혼이 알도록 밝혀주는 역할을 하신다. 그래서 누구든지 거듭난 사람들이 로고스의 말씀에 집중하기만 하면 그것을 알려준다. 그렇게 로고스의 말씀을 깨달을 때 그 말씀이 그의 혼과 하나가 된다. 예전에는 영이 하나가 되었으나 이제 혼과도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그 혼은 영의 집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로고스의 말씀을 깨달으면 그의 혼과 육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순종하면 그에게서 말씀의 결과물이 밖으로 표출된다. 그래서 신약시대 그리스도인들이 구약시대의 요셉, 모세, 다니엘과 같은 자가 되려면 말씀을 깨닫고 그의 혼과 육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하면 된다. 하지만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신분이 종이고, 육적 존재이지만, 신약시대 그리스도인들은 완벽한 하나님의 아들인 영적 존재이다.

 

이 시대 요셉과 같이 하나님이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실 것이라 말할 수 있는 자들은 바로 그의 혼에 성령의 역사가 미치는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믿음이 있는 자들이며, 믿음으로 산을 옮기는 자들이다. 하나님과 자신이 하나가 되는 자들이다. 결국, 말씀을 깨닫게 되면 그 말씀이 그의 혼, 즉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일치한다. 그렇게 될 때 요셉처럼 그가 꿈을 듣기도 전에 그 꿈의 해석을 하나님이 하실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가 된다.

 

드디어 바로가 요셉에게 그의 꿈을 이야기하였다. 그 꿈은 바로 하나님이 바로를 통해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셉은 그 꿈을 듣자 그것을 알았고,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해 주었고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발탁하였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요셉에게 전달되었고, 요셉이 그 말씀이 뜻을 알고 바로에게 말하자 옥의 삶에서 세상 통치자의 삶으로 들어갔다. 이는 바로를 통해 요셉에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 요셉을 통해 세상에 해석이 되자 그 말씀이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임명한 것이다. 요셉이 애굽이 국무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이 주신 그 말씀이 그 직분을 맡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나타나신다. 사람이 말씀을 깨달으면 그를 보내시는 방식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길 가다가 맹인을 만났을 때 그의 눈에 진흙을 이겨 발라주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다. 그 맹인이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자 눈이 떠졌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맹인을 통해 나타나셨다. 제자들이 이 맹인은 누구의 죄로 맹인이 되었느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질문하자 누구의 죄도 아니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함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맹인이 눈을 떨 때 나타나시고, 하나님이 나타나시면 그 눈을 떤 자는 보냄을 받는다.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실로암에서 눈을 뜨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그곳에서 나타났고, 보냄을 받은 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맹인이 눈을 뜬 것은, 곧 영적 맹인이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눈을 뜨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그에게 나타나신 것이며, 그는 곧 보냄을 받은 자가 된다.

 

요셉은 바로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그에게 나타났고, 곧 애굽의 국무총리로 보냄을 받았다. 무엇을 위해 국무총리로 보냄을 받았는가? 그것은 곧 애굽에 이스라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기초를 닦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애굽이라는 세상 한복판에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건설된다. 그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고 그 나라를 운영하는 법을 내려주시기 위해 히브리 문자를 준비하신다. 그 히브리 문자가 준비되고, 그 이스라엘 나라 백성의 숫자가 채워졌을 때 모세를 보내어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로고스의 말씀을 히브리 문자 속에 담을 신비한 계획을 세우셨고, 시내산에서 그 계획을 실행하셨다. 이제 세상에서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위해 만들어낸 문자 속에 로고스의 말씀을 담는 시대를 여신 것이다. 세상이 만든 것들 속에 로고스의 말씀을 담으신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글 속에 로고스의 말씀을 담은 것이, 한글 성경이다. 그 세상의 글 속에 로고의 말씀을 담아 놓고, 성령을 통해 그것을 알려주시면서 우리 각자의 영과 교통하신다. 신비한 비밀이다.

 

바로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었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았다. 요셉을 총리로 발탁하였고, 그에게 애굽의 통치를 맡겼다. 그런데 바로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은 그의 삶에 카운트되지 않는다. 오직 요셉의 삶만 카운트된다. 바로는 이스라엘에서 난 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막대기처럼 사용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은 이같이 사람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막대기처럼 사용하기도 하신다. 사람이 하늘나라에서 나오지 않았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는 있지만, 그에게는 구원이 없고 그의 행적은 보존되지 않고 없어진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7:21)”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들은 거저 막대기처럼 사용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사와 이적을 행한다고 해서 그들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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