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애굽 왕 바로의 꿈(창41:1-13)

관리자님 | 2023.03.04 20:28 | 조회 1032

109. 애굽 왕 바로의 꿈(41:1-13)

 

1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8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술관원장이 회복된 지 만 2년 후 이집트 왕 바로가 꿈을 꾸었다. 요셉은 술관원장이 회복된 후 2년이라는 세월을 옥에서 기다렸다. 요셉은 인내의 세월을 기다렸다. 드디어 2년 후 이집트의 왕 바로가 꿈을 꾸었다. 이 꿈은 하나님이 바로에게 주신 꿈이다. 하나님은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꿈을 꾸게 하신다. 이 꿈은 하나님의 계획을 이집트의 왕에게 알리는 꿈이었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사람은 육체이다. 육체의 사람은 육체의 생각이 그를 지배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의 생각이 그에게 들어갈 수 없다. 그 사람의 생각이 그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육체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넣어주는 한 방법이 있는데 곧 그가 잠을 잘 때, 즉 그의 육체의 생각이 활동하지 않을 때 꿈을 통한 방법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꿈은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이 있어야만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이 그 꿈을 사람에게 꾸게 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단지 그 꿈의 내용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집트 왕 바로가 꾼 꿈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 꿈은 너무 특이한 것이었다. 바로가 나일강에 서 있을 때 나일강 강가에서 처음에는 일곱 마리의 살진 소가 올라오고, 다음은 파리한 일곱 마리의 소가 올라와서 파리한 소가 살진 소를 먹는 꿈과 또 파리한 이삭이 충실한 이삭을 먹는 꿈이었다. 이는 매우 특이하여 꾼 자는 잊을 수 없는 꿈이다.

 

바로는 이 꿈이 너무 특이하여 이집트의 모든 술사에게 꿈을 해석하라고 하였지만, 해석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꿈이라면 해석할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해석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생각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만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집트 술사와 현자들은 일반적이 꿈은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생각의 표현이므로 여러 임상을 통한 해석법으로 해석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해석할 수 없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꿈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들만이 저절로 그 뜻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누구에게든지 꿈을 꾸게 할 수 있다. 꿈을 꾼 사람이 그 꿈을 해석하지는 못하지만, 꿈은 꾸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꿈의 해석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진 자만이 해석할 수 있다. 그 꿈은 하나님의 마음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술관원장과 떡관원장의 꿈도 요셉이 하나님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해석할 수 있었다. 그러면 어떤 자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자들인가? 바로 다윗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뛰노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고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뛰노는 사람이다. 그런 자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성령을 통해 알려지고,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이 꾸게 하신 꿈을 그냥 알아 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사람은 그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그 마음에 아름다움을 가득 채우면 세상을 아름답게 본다. 그래서 마음을 가꾸는 것이 사람에게는 가장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할 때를 생각해 보면, 사탄이 하와에게 말로 그의 생각을 집어넣었다. 그 생각이 들어오자 하와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그래서 그 실과를 먹었고, 그의 남편이 아담에게 주고 먹게 하였다. 생각은 말을 통해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래서 인간은 타락하게 되었고, 육체의 인간에게는 그 마귀의 생각이 떠나지 않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마치 마귀의 생각이 자기의 생각인 것처럼 되어버렸다. 마귀의 영의 사로잡혀 그 영이 주는 생각의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마귀의 영에 잡혀있는 자들을 성령이 그들 속에 침노하여 들어감으로써 그에게서 마귀의 영을 멸하시었다. 첫 사람 아담은 생령, 즉 사는 영으로 마귀의 영의 침범을 받았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는 살려 주는 영이 되어 사람에게 들어가 그 속에 있는 마귀의 영, 즉 마귀의 생각을 멸하였다. 그래서 히브리서 214절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혈과 육에 속하심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주려 하심이라고 하였다(2:14~15)” 이는 사람의 생각의 세계를 말하고 있다. 마귀가 처음 사람 아담에게 그의 생각을 주어 생령을 죽은 자로 만든 것처럼, 살려주는 영인 예수 그리스도는 마귀로 인해 죽은 자를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생령을 어떻게 살리시는가? 바로 그 죽은 자에게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갈 수 있는 생각의 문을 만들어 그 속으로 생명의 생각이 들어가도록 만드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바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생각이 들어갈 수 있는 생각을 만드신 것이고, 그 생각이 사람에게 들어가면, 그 생각은 바로 살려주는 영으로 그 사람이 살아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의 생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따라서 ㅇ예수 그리스도가 마귀를 멸하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살려주는 영을 들어가게 하여 그 사람의 생각에 살려주는 생각, 생명의 생각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생각으로 마귀의 종노릇을 하다가 그것을 따르지 않고 생명의 생각, 즉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도록 하였다는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자기 생각이 강한 자들에게 하나님이나 마귀가 그의 생각을 넣어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꿈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생각을 모를 때 그 생각을 전달하려고 꿈을 꾸게 하시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그에게 주어 해석하게 하신다. 그런 방법으로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전달하신다. 그러나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하여 들여다봄으로써 하나님의 생각을 받거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통해 들음으로써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그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그런 방식으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교통 하신다.

 

그런데 마귀도 사람에게 꿈을 가져다 줄 수 있다. 마귀가 가져다 주는 꿈은 그 사람을 멸하기 위한 꿈이다. 마귀의 속성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준 것 같지만 그것이 멸망으로 이끄는 꿈이다. 그런 꿈은 미래를 창조하거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꿈은 아니다. 사람들을 멸망으로 가게 하는 꿈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꿈만 의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마귀도 그리스도인들에게 그의 생각을 꿈을 통해 넣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이 꾸어지면 그것이 말씀과 부합하는지 분별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시기도 하신다. 이는 사람은 자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이 뜻을 전달하지 못할 때 사람이 생각이 활동하지 못하는 잠자는 시간에 하나님의 생각을 꿈을 통해 전달하기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꿈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질 때만 해석이 된다. 성령님은 사람에게 들어오셔서 이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하신다. 그래서 성령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꿈은 결국 생각의 세계이다. 하나님의 생각을 꿈이나 환상을 통해 받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생각을 받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사람에게 꿈이나 계시를 줄 수 있는 하나님을 가장한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마귀도 이런 꿈이나 환상, 계시를 주는 방법으로 그의 생각을 사람에게 집어넣어 줄 수 있다. 많은 이단이나 신흥 종교가 이런 데서 나오고 있다. 영을 분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을 분별한다는 것이다.

 

12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술관원장은 결국 자신의 필요에 의해 요셉을 생각해 냈다. 당시 이집트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요셉이었다. 요셉만이 그 꿈을 해석할 수 있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고 요셉에게 해석하게 함으로써 이집트에 이스라엘의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요셉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지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세상을 통치하신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통치하지 않고, 언제나 이스라엘 중심이다. 세상의 중심에는 이스라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이스라엘을 이집트로 데려가셔야 하는가? 그것은 그들을 거대한 민족으로 성장시켜 그들의 정체성을 알려주시고, 그들에게 히브리 문자를 주시고, 그 문자 속에 하나님의 생각을 담기 위한 것이었다. 영들의 세계는 마귀의 영이 존재하므로 사람이 그 영에 미혹되기 쉽다.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자들도 미혹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 즉 하나님의 생각을 기록된 문자 속에 담는 거대한 계획을 세우셨다. 그래서 사람에게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의 정체성을 알려주고, 그 기록된 말씀을 성령을 통해 깨닫게 하심으로써 사람이면 누구든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길을 여실 계획을 이스라엘을 이집트로 불러 내리면서 계획하신 것이다. 문자를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전달하는 새로운 소통의 방법을 생각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런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사람에게 비밀스럽게 주시는 방법을 만드셨다. 그 생각은 살려주는 영으로 사람에게 들어오면 그에게서 마귀가 진멸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마귀를 진멸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은 곧 각 개인에게 생각으로 들어가서 그에게서 마귀를 멸하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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